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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2 술 익는 소리가 요란하다몸살 앓는 소리를 낸다 술이 익어 가는 동안에도길은 아파했다 나무와 풀들은길 위에 씨를 뿌렸지만어느 것도 살아남지 못했다욕망으로 피가 뜨거운 사람이지나간 길은 독하다 사람은, 걸어 다니는 전쟁터
시와 차 한 잔
hkbc 문화부 작가
2019.01.02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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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1 하얀 등대가 빨간 등대를 위해 기도할 때빨간 등대가 하얀 등대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하얀 등대와 빨간 등대 사이에 걸터앉아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잔기도듣는 마음으로 한 잔내가 술을 마시는 동안등대를 오가는 불빛이 술렁인다누군가를 위로하기엔 술이 덜 익었다 나는 세상과 화해하기 위해 술을 마시고세상은 나를 위로하기 위해 술을 익힌다
시와 차 한 잔
hkbc 문화부 작가
2018.12.31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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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사람은지상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꿈이다 운명의 속살을 만져온혈의 온도가 뭉클 만져지는그곳에 봄꽃이 핀다사랑이다 가슴 시린 날에 살짝 훔쳐볼이쁜 죄 하나는 지어도 좋다
시와 차 한 잔
hkbc 문화부 작가
2018.12.28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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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2 보리이삭이 푸르다머리부터 발끝까지푸르다 이번 생엔 푸르고싶었다 벌판처럼 넓은 곳에서푸른 생이고 싶었다 지난 생엔 소복素服으로 살아이번 생엔푸른빛으로 살고 싶었다
시와 차 한 잔
hkbc 문화부 작가
2018.12.27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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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1 보리이삭이 일어선다머리부터 발끝까지 일어선다이번 생엔 일어서고싶었다 나 보란 듯이일어서고 싶었다 지난 생에 머슴으로 눈뜨고 죽어이번 생엔하고 싶은 것 하며허리 세우고 살고 싶었다
시와 차 한 잔
hkbc 문화부 작가
2018.12.26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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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부 처음 만나 부끄러워하며 닮아가더니함께 산 날이 짧지만은 않다며 닮아가고삶에서 기쁨과 슬픔은 절반정도로 비슷하다며 닮아가고반생을 함께했다며 마주보며 닮아가고남은 날이 많지 않다며 닮아가고 이내 오누이 같이 닮아서는오늘 하루 더 살았다고하루치만큼 더 닮아가고
시와 차 한 잔
hkbc 문화부 작가
2018.12.24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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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반복되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해길을 나선 여행에서 바람과 맞서 걷고시간의 모래밭에서 발목이 빠져 허우적거릴 때모든 것들은 고독이란 얼굴로 다가선다목이 탈수록 가슴속에 내려앉은 어둠을건져 올리게 된다투명한 눈물이 어둠에 젖고 눈물이마른 자리에 소금꽃이 하얗게 핀다원했던 고독이 뼈 시리다풀린 다리를 끌며 집으로 돌아와 누울 때탈출하려 애썼던 반복되는 일상이 주는안락행복평화 결국 여행의 목적지는떠나려 배낭을 싸던 자리다
시와 차 한 잔
hkbc 문화부 작가
2018.12.21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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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돈 천원은 가랑잎을 닮았다. 가을 가랑잎을 닮았다. 시를 한 편 쓰면, 어떤 때는 한 달에 한 편도 잘 나오지 않는 시를 한 편 쓰면, 그 시를 팔아 가랑잎을 닮은 천 원 짜리를 서른 장이나 받는다. 걸어가는 발자국마다 한 장씩 깔면 서른 발이나 깔 수 있다. 그만큼의 땅을 살 수는 없어도 술집에 가면 피 맑은 소주 열댓 병은 살 수 있다.그 소주로 안주 없이 며칠은 뜨거운 가슴일 수 있으니 시는 따뜻한 가슴을 가졌다.
시와 차 한 잔
hkbc 문화부 작가
2018.12.20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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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죄는 숨기고 오늘 내 체온은 얼마나 따뜻하기에 웃음을 낳았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한편에서는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또 어디에서는 굶주리는 인생이 있는데 웃을 수 있냐고 핏대 세우며 따져 물으면, 세상을 긍정으로 본 큰죄는 다 숨기고, 딴청부리듯 작은 죄 하나만 살짝 고백하련다.「희망 하나 가슴에 품은 죄밖에…」
시와 차 한 잔
hkbc 문화부 작가
2018.12.1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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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 사막에서 햇빛은 아름답지만 상처다 흙바람이 부는 사막에낙타는 일정한 속도로 걸어간다모래 바람이 거셀 때에도같은 보폭으로천천히 걸어간다 낙타는 태양의 상처로 만든 혹에우물을 만든다 비스듬하게 햇빛이 기운 시간에사르륵사르륵 모래가 쌓이고모래 언덕 깊은 곳으로 흘러들어상처를 어루만지던더운 눈물로 우물을 채운다 상처를같은 보폭으로 나누어 걷는낙타는 아름답다
시와 차 한 잔
hkbc 문화부 작가
2018.12.18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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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사랑은 일종의 병이다 초기증상은 목마름으로 시작된다점점 불면으로 이어지다보고싶어 동동거리다 부서지고,쿵쾅거리는 박동에 으스러지고,사막의 모래는 사랑앓이로밤을 지샌 몽유의 무덤이다 오아시스는 해갈을 위한단봉낙타의 혹처럼사막을 가로지르고 있다여전히 사막은 끝나지 않았다 사막엔 신기루가유행병처럼 돈다그리움은 사랑의 상처다
시와 차 한 잔
hkbc 문화부 작가
2018.12.17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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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누굴 위해 열매 맺어본 적 있느냐세상을 이해하는데이만한 일이 또 있으랴 하늘에서 내린 비를땅에다 가두면 괭이 들고 나가근면히 씨를 뿌리고내 땀과 정성스런 시간을 주면햇살 꼭꼭 쌓아물을 담뿍 담아바람 슬쩍 잡아열매 맺는 것이 아름답지 않으냐 내 몸의 등뼈도 한 해만큼 삭겠지만산만큼은 소모되는 것이리라
시와 차 한 잔
hkbc 문화부 작가
2018.12.14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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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꽃 악마를 핏속에 지니고도조용히 피는양귀비꽃은 휘발성이다 여자가 남자를 불사르는 건 무죄인가쉿,조용조용…악마를 숨겨라관능이 너무 붉다 양귀비꽃은 악마를 가져더 아름답다
시와 차 한 잔
hkbc 문화부 작가
2018.12.13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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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수 악수는 손금과 손금의 만남이다 운명의 성소에 한 사람이 걸어 들어와서로의 손금을 받아들이는 거룩한 의식이다내 손이 너만큼 따뜻하다고네 손이 나만큼 따뜻하다고그리하여 함께 걸어갈 수 있다고마주 잡은 손금 사이로비둘기 한 마리 날아오르더니어느새 웃음이 된다 마주 본 웃음이 따뜻하다마주 잡은 운명이 따뜻하다운명의 제전에 바치는36.5 ℃ 체온이 따뜻하다
시와 차 한 잔
hkbc 문화부 작가
2018.12.1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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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 아름다우면 노래가 된다 1.꽃 피우는 일밖에 모르는나무는 꽃을 피운다 꽃을 피우는 욕심을작년이나 금년이나마찬가지로 가지고 있다아주 오래 묵은그 욕심으로 나무는 서서 잔다 나무는 그 욕심 하나로이 땅에 해마다 꽃을 피운다 2.흐르는 일 외에 다른 일을모르는 강은 흐른다 강물은흐르는 욕심을 버리지 않는다눈을 뜨고 자는 물고기를기르는 재미를 들여서이다 흐르는 욕심 하나 지켜강은 마르지 않는다
시와 차 한 잔
hkbc 문화부 작가
2018.12.11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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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 등대는 자신의 고독으로 길을 안내한다 어둠으로 길을 잃으면새벽이 오기를 기다리지만목표가 없어서 길을 잃으면등대를 바라보아야 한다 고독은 자신의 전부를 슬쩍길에다 버리고 싶었던 전과가 있다바다에다 원망 하나 슬쩍 버리고길에다 눈물 하나 슬쩍 버리고바람밭에선 고독을 우뚝 세운다고독은 가슴을 아삭아삭 태운다목숨도 태우고 싶어한다그 마른 고독으로 길을 안내한다
시와 차 한 잔
hkbc 문화부 작가
2018.12.10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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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있었다 옛날 어렸을 적에 술을 담그고 남은술지거미를 사다가 물을 조금 넣고 끓여 먹으면감주처럼 달짝지근한 맛과 함께어린 나이에도 그 묘한 술맛이 느껴진다많이 먹으면 취한다배고파 먹은 것으로 취하는 그 기분을 아는가우리들의 어린 시절은 그렇게 술을 배웠다삶도 그렇게 배웠다 삶이 실수투성이인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시와 차 한 잔
hkbc 문화부 작가
2018.12.07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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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원래 소주가 아니라 쏘주다술집 주모에게 물어보라 이번에는 내 말이 맞다노동판에 가보라 그곳에선 쐬주다 쏘주의 쓴맛이 인생을 닮았다내 인생만큼 소박한 쏘주는맹물처럼 맑다 내 인생은 세상을 향해큰소리친 적 한 번 없는 맹물이다세상의 풀들을 키우는, 세상의나무들을 키우는 것도 맹물이더라지상에 터전을 마련한 것 중흔들리지 않는 영혼이 어디 있느냐너는 쏘주처럼 뜨겁게언 몸을 안아 준 적이 있느냐 쏘주병이 빌 때마다 세상은 따뜻해진다
시와 차 한 잔
hkbc 문화부 작가
2018.12.06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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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목 눈물로도 위로되지 않는 삶을주저앉을 때마다 일으켜 세운다 땅 밑으로 흐르는 물로 목숨을길어 나르는 나무는 낮은 곳의 소리로잎을 틔우고 가지를 치더니이내 서서 죽었다산식구들의 눈물도 함께 서 있다 하늘의 별들이 화르르 떨어져뼈와 살에 박힌다알몸 가득 빛나는 별로홀로 선 나무가 희다 나무는 죽음도 산에 세워 놓았다
시와 차 한 잔
hkbc 문화부 작가
2018.12.05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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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온도는 몇 도일까? 여자가 엄마가 되려면 가슴의 온도가몇 도가 되면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그래, 그래세상의 생명들은 모두가 엄마가 있지세상의 온도 중에서 아기를 기르고해도 달도 품는 온도는 엄마의 온도야따뜻한 엄마가 낳아 따뜻한 아이를 낳지엄마의 마음을 닮아서 웃음이 따뜻한 게지 세상살이 허망하다면서도 나만 보면힘이 난다는 울엄마의 온도는 몇 도일까
시와 차 한 잔
hkbc 문화부 작가
2018.12.04 1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