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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장보고의 꿈은 미래를 향했다-장보고가 선물한 해적소탕과 장보고가 선물 받은 청해진의 실현 국가가 해결해야 할 어려운 문제를 장보고가 해결해주는 대가는 청해진이었다. 청해진은 어려움을 딛고 출항했다. 청해진은 장보고의 꿈의 기지였다. 장보고의 꿈은 청해진에서 출발했고, 청해진에서 마무리되었다. 세계로 가는 전지기지였고, 기항지였다. 한민족에게 세계로 가는 관문을 열어준 최초의 큰 사건이었다. 어느 누구도 엄두내기 힘든 일을 장보고는 만들어가고 있었다.당시에 국가에서 통제하는 무역은 존재했으나, 개인이 독립적인 지역을 배타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2.1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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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장보고는 신라조정에 알려진 인물이었고, 영향력이 있음을 인정받았다. 신라 조정에서는 확실한 신분과 성향을 알지 못하는 장보고에게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1만 명이라는 군사 운영권을 내어주는 일은 모험이었다. 당연히 신분사회인 신라에서는 반대도 있었을 것이다. 대사라는 직함은 앞서 언급했듯이 당나라와 신라의 협력관계를 상징하는 직함이다. 신라왕의 직함과 별 다르지 않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 용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뜻에서 앞서 언급한 내용을 다시 한 번 환기시켜보고자 한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2.15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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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당나라 입장에서는 발해의 견제가 더 중요한 사안이었다. 당나라의 영토를 공격해 오는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신라의 입장에서는 발해도 두려운 존재였지만 더 급한 일이 있었다. 국가의 중대 현안이었던 해적소탕을 하지 못하는 있었다. 원망을 백성들로부터 듣고서 군대를 파견했지만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신라의 군대는 이미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지휘계통은 무너지고 있었다. 지방 호족들이 들고 일어나는 반란을 해결하기에 급했다. 방치할 수 없는 상태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신라의 입장에서는 발해견제와 해적소탕이라는 두 가지 문제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2.14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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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장보고의 청해진은 견제를 받았다. 그만큼 장보고의 존재는 신라조정에서는 두려운 존재이기도 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장보고의 청해진은 신라왕의 신하로서가 아니라 일정 부분 독립된 군사조직이었고, 무역을 위한 해상기지였다. 또한 국제적인 안보를 담담하고 있었다. 흥덕왕은 청해진의 설진을 허락하면서 바로 다음해인 829년에 당성진을 만든다. 지금의 남양만에 위치한 당성진은 신라 조정의 품계에 위한 담당관이 관리하는 곳이었다. 신라왕의 명령이 직접 전달되고 신라를 안보를 담담하기 위한 군사조직의 한 단위였다. 하지만 청해진은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2.1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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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모두를 승자로 만드는 고도의 구상이 청해진이었다.장보고가 등장하기 직전인 9세기 초에는 황해해상무역은 공무역이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공무역에 의존해 필요한 물품을 공급받았다. 신라도 마찬가지로 공무역으로 필요한 물품들을 제공받았다. 공무역은 무역 외에 외교적인 관계를 튼실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백성들은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사무역을 통제한 결과였다. 당연히 밀무역에 의존했다.중국은 지방 세력의 강화되자 중앙조정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축소되었다. 조공무역체제는 무너져갔다. 신라의 경우도 마찬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2.12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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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장보고는 자신의 이음으로 공물을 바친 것을 보면 신라조정과는 무관하게 독자적인 활동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는 아직 장보고를 독자적인 세력을 가진 독립국 형태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장보고는 신라조정과 일정거리를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장보고를 국가로 인정하게 되면 신라와는 관계는 더욱 소원하게 된다. 사무역이 드물었던 시대인 장보고가 일본 입장에서는 그리 반가운 존재만은 아니었을 엇이다. 그러한 사정은 가지고 온 상품의 거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속내를 알 수 있다. 필요하지만 국가적으로 공식적으로 인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2.11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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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우선 장도 주변은 신지도, 고금도, 약산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마치 울타리처럼 둘러쳐져 있어서 천혜의 요새인 데다 중국과 일본을 잇는 해상요충지로서 일본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장보고가 섬 출신이고, 그가 완도 출신으로 지형지물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완도를 청해진으로 삼았다는 견해도 있다. 청해진의 중요 유적인 장도를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루 두 번 열리고 닫히는 물길을 알아야 한다. 외성문과 내성문, 고대 등의 건물들과 장도 전체를 두른 토성의 흔적이 복원되었다.외성문은 장좌마을에서 짧은 바닷길을 건너면 만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2.0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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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장보고의 활동과 유적을 찾기 위한 발굴 작업은 아주 초기 단계에 있다. 장도와 법화사지에 대한 발굴이 이제 겨우 이루어졌다. 법화사지에서 출토된 주름무늬병은 청해진 시대의 것으로 확실시 되고 있는 장도유적에서 출토된 것과 기형과 문양이 동일하다. 해무리굽 청자 역시 그러하다. 중국의 월주요에서 생산한 것으로 여기지는 해무리굽 청자는 중국에서 7세기경부터 시작하여 9세기 전반기까지 생산했다. 법화사지의 창건은 통일신라시대 청해진 운용시기와 일치한다.장도에서 출토된 것과 역사기록에서도 일치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장도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2.07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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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 10. 청해진 왕국을 꿈꾸다 - 살아있음은 축제다. 그 축제에 참가한 이상 생을 즐겨라.장보고의 꿈, 청해진 왕국청해진은 장보고의 이상 국가였다. 장보고가 개척한 바다는 광장이었다. 무역을 위한 상품이 모이고 다시 분산되었다. 해적에 의해 닫혔던 바닷길이 다시 열렸다. 장보고의 꿈이 청해진에서 이루어졌을 때, 나당일 삼국은 다시 꿈꾸게 되었고, 바다를 통해 하나로 열린 광장에서 장이 서고 길이 열렸다. 삼국은 필요한 물품들이 구할 수 있게 되었고, 가고 싶은 곳을 항해할 수 있게 되었다. 청해진을 통해서 바다는 열렸고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2.0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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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사나이들의 큰 그릇을 느낄 수 있다. 얼마나 큰 원한이면 만나면 죽일 만큼이었을까. 전장에서 죽을 고비를 맞았음에도 도와주지 않고 방관했다던가, 큰 고비를 맞은 장보고에게 뒤통수를 치는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죽음을 당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형과 아우 사이가 어느 날 무슨 일로 서로 만나면 죽일 정도까지 되었을까. 어디에도 이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가 없다. 살인까지 할 정도였다면 필시 큰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도 정년이 장보고에게 죽임을 당할 일이라면 정년이 잘못했을 가능성이 높다.정년은 남아였다.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1.3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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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경쟁심이 강한 장보고, 우정을 받아들인 장보고-장보고와 정년의 경쟁과 우정장보고에 대한 역사기록 중에 우정을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정년이 있다. 장보고와 정년은 당에서 활동하던 시기에는 경쟁 상대였다. 나이는 장보고가 많았다. 그럼에도 장보고는 정년을 경쟁상대로 봤다. 그만큼 장보고는 야망과 투지를 가진 사내였다. 정년도 야망과 투지는 장보고에 뒤지려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경쟁관계 속에서 성장했다. 같이 군중소장이란 직책을 가졌다. 우정과 경쟁은 계속 되었다.장보고의 나이는 30이고 정년의 나이는 열 살이 젊어 20살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1.29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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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장보고는 어려서부터 사람은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음을 알았다. 혼자 일어서야 하고 혼자 개척해 나가야 하는 것이 인생임을 알았다. 세상은 지식으로 열리는 것이 아니었다. 지식은 행동을 위한 보조 자료다. 사람이 사는 지상에서는 직접 육체적인 행동이 따르지 않고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이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은 장보고였다. 가진 것 없고, 든든한 후원자가 없는 맨몸으로 출발한 장보고로서는 몸이 재산이었다. 직접 현장을 누비며 인맥을 만들고 남보다 한발 더 뛰어 현장파악을 정확히 해야 했다. 현장의 말단에 있는 사람의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1.28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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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장보고는 지역마다 그 지역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과 친분을 맺었다. 그리고 지역의 지배권을 가진 관리들과 개인적으로 친분을 맺었다. 그것도 직접 찾아갔다. 그들을 통해 무역을 했다.고향을 떠나올 때 엎드려 축전 태수의 서신 한 통을 기탁 받아 대사께 전해 올리려 했습니다. 그런데 홀연히 배가 얕은 바다에 가라앉아 물건들은 떠내려가고 기탁 받은 서찰도 물결 따라 흘러가 가라앉고 말았습니다.당나라를 방문 중에 편의를 제공 받은 것에 대한 고마움을 엔닌이 장보고에게 편지에 담은 내용이다. 엔닌이 일본에서 당으로 건너갈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1.25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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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장보고는 행동으로 세상과 부딪쳤다. -지역책임자에게 권한이양장보고는 현장을 발로 뛰는 지도자였다. 신라에서 당으로 건너갈 때의 마음으로 살았다. 적진을 향해 말을 달리던 기세로 세상과 대적했다. 직접 몸으로 부딪쳐 해결을 했다. 전장에서는 누구의 도움으로 살아남기보다 자신의 힘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모든 해결은 자신의 손에서 나온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한 사람이었다. 장보고는 무인이었다. 무인으로 다져진 패기로 세상을 만났다. 현장에서 모든 일은 결정하고 판단해야 하는 자세로 세상과 만났다. 장보고는 무령군 군중소장이 되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1.24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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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청해진은 신라조정보다도 어떤 면에서는 훨씬 앞선 정보를 수집할 수가 있었다. 정보가 집합하는 곳으로 사람이 모이고, 세상의 상품들이 모이는 곳으로 부가 쌓여가는 것은 당연한 원리다. 정보와 부가 쌓이면 힘이 생긴다. 삼국을 통한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장보고는 더욱 활력을 얻어 청해진을 키워갔다. 청해진이 설진 이후 신라사회가 부로 넘쳐난 것을 보게 된다. 이는 청해진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았으리라 믿어진다.청해진은 나․당․일 삼국을 왕래하는 상선들은 직접 만들고 소유하고, 운영했다. 그리고 황해를 중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1.23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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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한국인으로서 최초의 세계인, 장보고 - 거대한 해상왕국을 세우고, 국제무역을 실시했다.이때까지 사무역은 인정되지 않았다. 나라와 나라의 거래인 공무역만이 이루어지던 때였다. 한 나라의 모든 땅과 생산물이 제왕의 것이었던 때였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제왕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감사해야 하는 시대였다. 공물만이 정당한 거래였다. 천황과 왕은 국가를 소유하고 주무르던 시대였다. 이 같은 시대에 배타적인 완도를 중심으로 국제무역을 실행한 장보고는 여러 가지로 시대를 앞선 사람이었다. 일본의 경우는 이러한 장보고에 대해 인정하지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1.22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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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청해진은 동아시아 최초의 무력을 가진 국제 감시기구였다. 청해진은 신라와 당 그리고 일본 모두에 바다를 방어하기 위한 수군이 있었다. 그들의 역할은 자국의 바다를 지키고, 배의 입출항과 사람의 입출을 통제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당성진의 설명에서와 같이 전형적인 군사적인 업무와 연안관리와 관리에 중점을 두었다.하지만 청해진은 달랐다. 신라관제를 따르지도 않았고 국가의 지원 없이 독자적으로 운영을 했고, 반대로 세금을 거두지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독립적인 지위를 부여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분명하게 밝혀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1.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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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 9. 청해진의 정치 경제적 관계와 지정학적 위치 -장애물 경기에서 장애물은 넘으라고 있다.청해진은 왜 섬에 설진했을까과연 장보고란 존재는 누구인가. 그가 한 역할을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사무역이 가능했을까. 대사라는 직함에서 신라조정이나 당으로부터 특별한 존재였음을 이야기 했지만 그가 진정 해적을 소탕하기 위해서 나당 간에 합의로 완도에 청해진을 설진하게 되었는가.발해를 견제하기 위한 나당연합 성격의 청해진 설치라면 왜 신라인인 장보고에게 그 이무를 맡겼을까. 당시의 세력분포로 볼 때 당의 기득권이 우선이었을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1.18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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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838년 6월 23일, 동북충이 불고 밤이 되어 어둠 속으로 나아가면서 두 배는 불빛으로 서로 연락하였다.어둠 속에서 항해를 하면서 교신을 불빛으로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불빛만으로 의사를 전달하고 지시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한 수준의 항해사임을 알 수 있다. 선원들 간에 이미 양해된 신호체계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대선단을 거느린 청해진은 이미 숙련되고 안정된 체계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838년 7월 3일, 물길을 앞세워 굴항정으로 나아갔다.물길을 제대로 만나지 못하면 몇 배로 힘이 들고, 갯벌에 갇히거나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1.17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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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신라인의 항해기술과 배 건조기술신라배는 중국의 배처럼 크지 않았다. 한반도의 바다가 가진 특성 때문에 큰 배는 운용하기는 불편했다. 반면 바닥이 편평하고 거대한 배가 아니라 바다와 강을 동시에 오고 살 수 있었다. 내륙 깊숙이까지 배를 타고 들어갈 수 있었다. 간편하고 날렵하면서도 지형에 적정한 배를 만들었다. 신라인은 신라땅에 맞는 배를 만들었다. 신라인의 몸에 맞는 배를 만들었다. 그리고 신라인들은 몸에 달라붙는 배를 타고 운행하면서 바다를 신라인의 바다로 만들었다. 바다는 신라인에게 친숙해졌다. 신라인은 적응을 배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1.16 1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