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상징, 해치.그 모델이 된 것은 광화문 앞 해치상이다.광화문 해치상은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같이 세워졌다.궁궐문 앞에 해치상을 세운 것은 유례없는 일.그런데 흥선대원군이 처음 해치상을 세웠던 자리는 이곳이 아니었다.흥선대원군이 해치를 세운 이유는 무엇일까?왜 굳이 궁궐문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 해치를 세웠을까?조선의 아픈 역사와 함께 했던 수문장, 해치의 이야기를 만나본다.
백범김구기념관.이곳에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아주 작은 물건이 있다.바로 회중시계 2개.하나는 보물로, 하나는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유물.과연 어떤 사연이 숨어 있는 것일까.
조선시대 궁중건물 중 대표적인 유럽풍의 석조 건축물로 영국인 "하딩"이 설계하였고, 1900년 기공되어 1910년에 준공되었다. 엄격한 비례와 좌우대칭이 돋보이는 신고전주의양식으로 내부에는 접견실과 대식당, 침실, 서재 등을 갖춘 근대 건축물로서 고종(高宗)은 석조전을 고관대신과 외국 사절들을 만나는 용도로 사용하였다.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기 이전까지는 현대미술품을 진열하였으며 1946년 미·소 공동위원회 회의장, 1955년 이후 국립중앙박물관, 궁중유물전시관 등으로 사용되면서 원형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문화재청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그 속에서 의문의 흔적 하나가 발견됐다.낙서인 듯 아닌 듯 흥미로운 이 흔적은 자세히 보면 익숙한 글자가 보이기도 하는데...알고 보니 그것은 이순신 장군이 사인을 연습한 흔적이었다.우리가 흔히 봤던 고문서 속의 도장뿐 아니라조선시대 사람들도 사인, 즉 수결을 사용했다는데...양반과 평민, 그리고 남자와 여자.그 각기 개성이 담겨있던 조선의 사인 문화 속으로 들어가 본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별서원림으로 손꼽히는 소쇄원.한적한 곳에서 은둔하거나 풍류를 즐기기 위해 지은 집이었던 당대의 조선시대 별서들과 달리 소쇄원은 조금 특별한 목적이 담긴 별서원림이다.바로 양산보의 ‘누군가를 향한 기다림’이 담긴 정원인 것이다.양산보가 기다리던 귀한 손님은 학식이 높은 학자나 예술가, 또는 오랜 벗이었다.그들과 함께 너른 숲에 위치한 소쇄원에서 학문을 논하고 대자연의 법도와 자연의 운치를 노래하였던 것이다.이처럼 소쇄원은 한 선비의 탁월한 구상과 섬세한 배려로 조선시대 최고의 별서원림이 되었다.
1971년 7월 8일, 충남 공주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쏟아져 나오는 국보급 유물들, 게다가 삼국시대 왕릉 중 최초로 무덤의 주인까지 밝혀졌다. 백제 25대 임금 무령왕과 왕비가 잠든 무령왕릉. 1500여 년 간 잠들어 있던 백제의 찬란한 문화가 깨어나는 순간이었다.특히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금속공예품들의 정교함과 조형감은 1500여 년 전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세련미와 우아미를 자랑한다. 마치 종이 다루듯 금속을 자유자재로 다루었던 백제 장인들, 백제의 빼어난 과학성과 예술혼이 살아 숨 쉬는 무령왕릉을 찾아가본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소장 소재구)는 지난 6월 착수한 대부도 2호선 발굴조사를 완료했다고 13일 밝혔다. 대부도 2호선은 지난해 11월 안산 대부도 방아머리 해수욕장 인근 해역에서 낙지잡이를 하던 어민에 의해 발견됐다.대부도 2호선은 선체 내부에서 수습된 도자기로 보아, 12세기 중·후반경의 고려 시대 선박으로 추정된다. 특히 선박의 바닥면을 이루는 저판(底板·밑널)은 지금까지 발견된 사례가 없는 4열 구조이며, 저판 중앙부 2개의 열에 각각 하나씩 돛대 구멍이 있다. 길이는 약 9.2m, 최대폭은 2.9m가량으로 기존에 발견된 고
경상북도 청도군, 이곳에는 독특한 고택이 하나 자리하고 있다.‘청도임당리김씨고택’ 조선시대 내시가 살았던 집이다.조선사회에서 남다른 신분으로 살았던 내시, 그들의 집은 일반적인 양반가옥과는 다른 특징들이 있는데...고택 판벽에 뚫려있는 하트 모양의 구멍, 그 구멍을 통해 내시였던 집주인이 본 것은 무엇일까?그리고 안채는 왜 채광에 좋은 남향이 아니라 서북향으로 자리했을까?내시였던 집주인의 의도가 건축적으로 표현된 청도 임당리 내시고택을 들여다본다.
무등산 북녘의 기슭에 위치한 1400여 평의 너른 숲 속. 그 곳에는 시작과 끝도 짐작하기 힘든 거대한 정원이 있다. 자연이 빚어놓은 것인지, 인간이 만든 것인지 그 경계를 알 수 없는 오묘하고 아름다운 정원. 바로 소쇄원이다.낙향한 선비 양산보를 시작으로 아들 양자징과 손자 양천운에 이르기까지...3대에 걸쳐 약 70년간 1400여 평의 부지에 세운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원, 소쇄원.자연 전체를 뜰로 삼아 10여 채의 정자들을 자연스럽게 배치한 이 거대 정원은 조선시대 한 선비 집안의 3대에 걸친 오랜 염원이 담겨있다.
문화재청은 지난 13일 전통 부채를 만드는 장인인 선자장을 중요무형문화재 제128호로 신규 지정하고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0호 선자장 보유자인 김동식 씨(72)를 첫 보유자로 인정했다.대를 이어 약 140년간 선자장을 유지하는 그는 주로 합죽선(合竹扇)을 만든다. 접고 펼 수 있게 대나무의 겉대를 붙인 부채다. 조선시대 전라감영은 선자청을 두고 소속된 장인으로 하여금 합죽선을 제작했다고 알려졌다. 정교함과 세련미가 일품이라는 평을 받는다. 이번 결정은 높은 가치에 비해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전통 부채와 부채장인에 대한 인식변화를
돌담길을 따라 걸어보겠습니다.
습지는 농업 용수를 공급하고 장마철 홍수를 예방하는데요.동영상을 통해 습지 보전의 중요성에 대해 알아봅니다.
아름다운 바다. 이국적인 식생. 맑고 투명한 대기. 아름다운 섬 제주도에는 예로부터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360여개에 이르는 수많은 오름들과 영실기암의 괴이한 바위 500나한. 성산리 앞바다의 섬 우도부터 한라산 꼭대기까지. 제주도 모든 풍경 속에는 반드시 등장하는 설문대할망의 이야기!120만년 전 한반도 남해에서 일어난 거대한 화산폭발과 지각변동은 제주도의 기이한 절경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제주 사람들은 그곳에 이야기를 붙였지요.설문대할망의 이야기를 통해 화산섬 제주의 독특한 절경들을 만나봅니다.
지난 1998년, 안동대학교 발굴팀은 독특한 유물 하나를 발견했다.관 속에서 발견된 미투리 한 켤레.더 놀라운 것은 그것이 머리카락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다.머리카락 미투리의 주인은 누구일까.도대체 무슨 사연으로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신을 삼은 것일까.망자의 가슴 위에 놓여있던 한 장의 편지, 그 속에서 400년을 넘은 사랑 이야기가 깨어난다.
국민과 함께하는 DMZ 세계생태평화공원 UCC 공모전일반부 우수상 이은정(팀) - 철책 너머 푸른 꿈!
첨성대에서 정말 천문을 관측했을까?별의 관측이 목적이었다면 왜 산위에 첨성대를 짓지 않았을까?여기에 대해 시원한 해답은 이 시대에는 아직 없는 것 같다.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라는 설도 있고, 선덕여왕의 정치적 입지를 높이기 위한 장치라는 설도 있다.하지만, 이런 논쟁 속에서도 첨성대가 가지는 역사적 가치는 대단하다.삼국유사에 따르면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7세기 중반)에 지어져 지금까지 단 한 번의 보수나 개축 없이 그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우리시대의 유일한 고대건축물이다.지반의 약화로 북동쪽으로 약간 기울어졌을 뿐,
도동서원에는 곳곳에 이상한 시설들이 놓여 있다. 석등, 등잔불을 올리던 정료대 등 한밤중에 조명을 켜기 위한 시설들이 설치돼 있다. 강학을 위한 공간, 서원에서 대체 깊은 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일까?조선중기를 지나면서 서원의 역할은 교육만이 아니었다. 매년 봄가을마다 치러지는 석전제와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치러지는 분향례 역시 서원의 커다란 역할 중 하나였다. 제사가 서원의 중요한 역할이 되어갈수록 건축역시 제사를 위한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과연 도동서원에서는 제사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제사를 위해 가장 치
1998년 10월 17일 천연기념물 제394호로 지정되었다. 이 화석군 및 퇴적층군은 해남읍에서 서쪽 방향으로 20㎞ 정도 떨어진 금호방조제 가장자리를 따라 약 5㎞에 걸쳐 분포하고 있는데, 이곳은 과거에 해남만의 남쪽에 위치한 바닷가였다.1996년부터 1998년까지 수행된 발굴 및 연구에 의해 다양한 공룡발자국 화석 514점, 익룡류발자국화석 443점, 새발자국 화석 천여 점, 규화목 및 탄화목 화석 수십점, 개형충 미화석 수만점, 생흔화석 수십점 및 새로운 발굴이 요구된 익룡 및 공룡뼈 화석 수십 점 등이 발견 및 발굴되었다.
도동서원은 도학의 대종이라 불리는 한훤당 김굉필을 모신 공간이다.김굉필은 연산군 때 억울하게 사형을 받았던 선비다.하지만 그의 제자 조광조는 스승의 뜻을 이어받아 이 땅에 사림의 시대를 열었고 김굉필은 명실상부 이 땅에 도의 시대를 연 선구자로 칭송 받았다.김굉필을 모신 서원 역시 김굉필이 추구했던 정신과 김굉필이 꿈꿨던 삶을 담아 만들어졌다.조선선비들이 꿈꾸는 이상향을 현실의 건물로 구현한 공간, 도동서원. 과연 수 백년 전 이 땅에 살았던 선비들이 꿈꾸던 바는 무엇이었을까?선비들의 세상을 만나본다.
일본 근대산업시설 세계유산 등재 관련, 조태열 2차관의 정부 대표 발언 영상을 전해드립니다.이번 결정이 희생자들의 아픔과 고통을 기억하고 역사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며, 불행했던 과거의 역사적 진실또한 객관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을 재확인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발걸음이 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