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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12. 해상실크로드의 마지막 길- 세상에는 두 개의 길이 있다. 육로와 해로였다.바다의 마지막 길을 열다두려움의 실체는 두려움이 어디에서 오는지 모르는 데서 온다. 실체를 알면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 바다가 두려운 것은 바다를 모르기 때문이었다. 바다의 근원이 어디인지 어디에서 끝나는지를 몰랐다. 바닷가에서 태어난 장보고는 바다가 놀이터였다. 바다에서 아침을 맞고, 바다에서 저녁을 맞았다. 바다는 두려운 존재였다. 하지만 바다를 통해서 장보고는 꿈을 키웠다. 바다 건너를 동경했다. 장보고는 태어난 곳에서는 자신이 꿈꾸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4.29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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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장보고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인생은 하시도 눈을 팔 수 없었다. 더구나 도전을 하는 사람에게는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른다. 인생에 위기 아닌 적이 없었다. 삶은 늘 낭떠러지를 걷는 곡예사와 같다. 삶의 가까운 친구는 죽음이다. 죽음을 옆에 두고 사는 것이 인생이다.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이번 생에 간절히 하고 싶은 일이 있어 태어났다. 죽음은 어느 순간 찾아오지만 생은 또 다른 길을 가야한다. 태어난 것은 목표한 것이나 목적한 바가 있어 태어났기에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원 없이 해보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4.2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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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밝혀진 것만 해도 몇 곳이 된다. 그것도 신라만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까지 사찰을 세웠다. 방대하고 원대한 꿈의 표현이었다. 실은 이보다 더 여러 곳에 건립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장보고는 세계를 경영하고자 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장보고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어졌다. 세월이 많이 흘러갔다. 이미 천년이 넘은 세월 속에 남아있을 것이 거의 없다. 신라에서는 역적으로 몰려 죽었다. 있었던 자료도 불태워지거나 없애버렸을 것을 자연스레 추측할 수 있다.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순간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 이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4.12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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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문화로 이미지를 창조장보고는 자신의 이미지를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 멸시를 당할 소지가 있는 신라의 섬 출신이라는 것이나 군중소장은 무역에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었다. 청해진을 설진하기 전 이미 당나라 등주에 지은 법화원이 장보고의 이미지 개선과 개인적인 성공을 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장보고는 계속 해서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할 필요가 있었다. 무관이라는 신분은 국제무역에 있어서 저항을 받을 수 있는 소지가 다분했다. 장보고가 국제무역을 하면서 당나라와 일본에 입국을 하게 될 때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4.10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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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신라인들의 직업에 대한 기술은 의외로 많다. 엔닌일기에서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는 부분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우선 역어에 대한 내용이다. 역어는 통역과 번역 업무를 가진 사람이면서 관리적인 일을 병행하고 있다.838년 12월 18일 오후 2시경에 신라인 통역관 김정남은 견당사신의 귀국선박을 정하기 위하여 초주로 떠났다.839년 정월 8일, 신라사람 왕청이 찾아와 만났다. … 그는 일본어를 잘 하였다.외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청해진과 관계되어 일을 하고 있었다. 김정남은 당나라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4.04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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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청해진은 복합도시국가였다.전문가 집단을 만들다. 청해진은 우선 과제였던 해적을 퇴치시키고 나서 무역에 총력을 기울였다. 당시 동아시아에서 권력은 무력에어 나왔다. 왕의 권한은 무력의 기반 위에서 나왔다. 왕권은 신성시되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존재였다. 왕과 백성은 동렬이 아니었다. 근접할 수 없는 다른 사람이었다. 왕을 지키는 힘은 백성의 지지가 아닌 지존의 영역을 군사력에 있었다.군사력의 일부를 양도한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었다. 거기에다 독립적인 지역의 관할권을 일부 인정받은 장보고는 크게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3.29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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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고민은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는데 1만 명의 군사운영권을 주어야 하는 위험성에 있었다. 하지만 신라입장에서는 자체적인 군사력으로는 해적을 소탕할 방법이 없었다. 중앙조정의 힘이 약화되어 군사를 동원해 해적소탕에 충원할 입장도 아니었다. 해적소탕을 위해 여러 번 논의되고 시도도 해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신라조정의 이장이 궁색한 터에 장보고의 등장은 힘을 주었다. 해적을 소탕할 방법과 구상을 듣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장보고는 청해진의 설진을 요구했다. 청해진을 운영하는데 1만 명의 군사가 필요했다. 삼국사기에는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3.2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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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는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에게 꿈꾸도록 독려했다. 그 꿈이 자신 안에서 무르익었을 때 장보고는 그 꿈이 실현되도록 열정을 쏟았다. 땀을 흘리며 노력했다. 장보고에게 기회가 왔다. 인생에서 한 번 뿐일지도 모르는 기회였다. 장보고가 태어나고, 장보고가 돌아가고 싶은 신라에서 연락이 왔다. 지존의 왕, 흥덕왕이 만나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준비해온 날들이 떠올랐다.거칠고 황량한 세상을 살아온 장보고였다.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 없이 일어선 인생이었다. 숱한 위험과 역경이 있었지만 다시 일어서야 했던 삶이었다. 신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3.20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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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11. 세계전략의 꿈과 실현- 기회는 준비된 자의 몫이다. 기회가 왔을 때 준비하는 자는 이미 늦었다.기도 하는 사람의 손보다 기도를 이루려 땀 흘리는 사람이 아름답다간절히 원하는 것을 위해 기도한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원하는 것을 위하여 준비하고 땀 흘리는 사람에게 원하는 일이 이루어진다. 장보고는 현장으로 뛰어드는 삶을 선택했다. 거칠고 황량한 세상으로 스스로 달려 나갔다. 남들과 같아서는 남들보다 나아질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남과 다르게 살아야 다른 삶을 만들어낼 수 있다. 다른 사람이 흘린 땀만큼으로는 성공할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3.15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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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장보고가 당나라에서 무역을 시작하고 나서 신라에 들어와 청해진을 설진하고 바다를 정복해 나가기 시작했다. 바다는 장보고의 수중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장보고가 바다로 나아가자 바다를 어지럽히던 해적들이 사라졌고, 무역의 길이 열렸다. 무역으로 여린 길을 활기찼고 바다는 더욱 넓은 길이 되어주었다. 장보고에게 한반도는 좁았다.당시 신라의 국제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다. 북으로는 발해에 막혀 있었다. 고구려의 후예를 자처한 발해는 만주일대뿐만이 아니라 영역을 넓혀갔다. 발해와 신라는 적대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선조인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3.14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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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무역의 활로를 열기위해 직접 뛰었다.장보고는 완도를 축으로 해서 주변 육지의 일부뿐만이 아니라 흑산도와 제주도에까지 기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는 장보고 당시 신라땅이 아니었다. 신라에 조공을 바치기는 했지만 독립국이었다. 장보고는 실제로는 신라와 당나라 그리고 일본과 탐라국을 자신의 나라처럼 드나들며 무역을 했다. 이들 국가들이 거부반응을 별달리 보이지 않고 장보고를 받아들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황해를 중심으로 한 주변 국가들은 서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 서로 침공하기도 하고, 연합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3.13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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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장보고에 의해 들여온 이 도자기 생산기술은 장보고의 사망과 더불어 끊어진 것으로 보인다. 세월이 많이 흐른 고려 때에 강진 땅에서 다시 가마에 불이 지펴지지만 오랜 기간 그 기술은 사장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월주요에서 생산된 것과 강진 가마터에서 발견되는 도자기 파편이 같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곳이 바로 강진군의 대구면과 칠량면이다. 이곳은 한국 도자기의 성지가 된 곳이다. 장보고가 이룩해 놓은 첨단의 기술단지는 이렇게 남도의 강진에서 발화되었다. 신라가 경제부국으로 일어설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3.11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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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815년 8월, 서변의 주군현에 큰 기아가 있었다. 도적이 봉기하였음으로 군을 출동하여 이를 토벌하여 평정하였다.816년 봄 정월, 흉작으로 백성이 굶주려 절동지방으로 가서 먹을 것을 구하는 자가 170명이나 되었다.이러한 내용은 신라하대에 와서 많이 등장한다. 중앙조정이 무너지고 지방 세력이 발호함에 따라 통제가 되지 않아 착취가 늘어나고 흉작까지 겹쳐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려야 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절동지방은 중국 당나라를 말한다. 먹을 것을 찾아 중국과 일본으로 가는 유민들이 늘어나고 있었다.장보고는 청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3.0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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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내가 옛날 대재부강사 겸 축전국 강사로 있던 때, 신라인이 빈번하게 왕래해 왔다. 나중에 진언도장을 건립하기 위하여 그들로부터 많은 그릇과 접시를 샀다.일본의 혜운이 대재부 강사로 임명된 것은 833년이었다. 혜운은 10 년 가까이 대재부에 있었다. 위의 내용은 331년에 신라상인이 들어와 교역을 했다는 내용을 적은 것이다. 거래 품목에 많은 그릇과 접시를 샀다고 적고 있다.다량으로 수요를 충당하기에는 중국 당나라에서 청해진까지 운반해 오는 것은 여러 가지로 어려웠다. 무거운 도자기를 배에 싣고 항해하는 것도 만만치 않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3.06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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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장보고의 배는 장보고가 젊은 시절 전사로 달리던 당나라를 향하여 나아갔다. 그곳에서는 장보고와 호흡을 같이 하던 신라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탁월한 일꾼들이었다. 바다를 몸에 익힌 사람들이었고, 장사로 단련된 사람들이었다. 장보고와 당에 상주하는 신라인들의 만남은 한층 더 확장된 세계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해안선을 따라 거주하고 있는 신라인들은 해안뿐만이 아니라 내륙으로 연결을 했다. 바다에서 육지로 가는 길도 강을 이용한 수로를 이용했다. 신라인들의 활동범위는 광범위했다. 실핏줄처럼 당나라의 곳곳을 누볐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3.05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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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청해진을 생산기지화-강진을 도자기 생산기지화장보고는 황해에 나타나 신라의 양민들을 납치하던 해적을 제거하고, 보다 더 먼 바다를 바라보았다. 활동영역을 넓혀갔다. 행동반경은 커져갔다. 장보고는 동아시아 무역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었다. 변방 신라는 세상의 중심으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었다. 신라라는 나라가 서역의 기록에서도 나타난다. 그리고 당시의 외국인들이 신라의 경주 땅에 들어와 있음을 보여준다.신라는 중국의 맞은편에 있으며, 산이 많고, 금이 풍부하며, 기후와 환경이 좋아서 무슬림이 많이 정착하고 있다. 인산, 옷감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3.04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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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장보고 선단이 활발하게 일본을 드나든 내용을 기록한 것이 있다. 같은 해 관부에 신라상인들이 얼마나 자주 일본을 왕래하였는가를 보여주는 글이 있다.지금 신라상인의 왕래가 끊이질 않고 있다. 경계의 임무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바라옵기는 사생史生 한 명을 줄이고, 노사弩師를 두고자 태정관에게 요청합니다.신라상인의 왕래가 끊이지 않고 있음을 적고 있다. 이 기록은 잇키 도사島司가 신라상인의 왕래가 잦으니 경계를 강화하기 위하여 문관이 사생을 무관인 궁사로 대체하자고 요청한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신라상인이 대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2.26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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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많은 신라인들이 당의 국경을 넘나들었고, 당내에 무역거점을 마련하였다. 엔닌일기에 보이는 신라인들의 활동상을 보면 신라인들이 무역과 선박에 관련된 일들을 하는 광경들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중국에 지명으로 남아있는 신라소, 신라방과 신라서 그리고 신라산이란 것들이 신라인들의 활동근거지였음을 확인하게 한다. 신라서와 신라산에 대한 지명에 대한 유래가 전해내려오고 있다.신라서와 신라산이 있는데 이전에 신라상인이 선박을 정박하였는데 이용하였기에 이름 붙었다.이러한 기록에 의해서 신라인들이 근거지로 살았던 지점임을 확인할 수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2.2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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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장보고의 무역품바다를 통한 길이 열렸다. 장보고는 뛰어난 신라인들과 바다를 정복해갔다. 신라인들이 만든 배는 황해를 날렵하게 저어갔다. 갯벌에 잘 적응된 배였고, 거친 파도에 쉽게 침몰하지 않는 배였다. 황해에 가장 잘 적응된 배에 탄 사람들은 바다의 사나이들이었다. 신라인들은 바다에 강했고, 선박의 건조와 수리에 능했다. 뿐만 아니라 나라와 나라 사이에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것은 언어였는데 이를 통역해주는 사람들이 신라인이었다. 신라인은 황해를 기반으로 한 세계무역의 주역들이었다.신라인들은 배를 몰고 상품을 실어 날랐다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2.22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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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장보고는 무역에 눈뜬 사람이었다. 이들과의 소통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소통이 되지 않고 노략질을 하는 자들은 처단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군사와 상인으로 조직된 청해진이었다. 군사적인 역할과 상인의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선원들도 있었다. 청해진은 군사와 민간으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집단이었다. 군민합동단체였다.항해 중 해적이 나나나는 위난이 닥쳤을 때 대처할 수 있는 군사적인 역할을 누구나 수행할 수 있어야 했다. 장보고 선단은 전문적 고도의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항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2.20 2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