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계훈 미술평론가

국가가 다양한 사회 분야에서 운영동력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재정과 인력 등을 투입하는 행위를 정책(policy)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소수의 정책결정자들은 효율적인 정책 지원을 모색하는데, 이들이 효율성을 추구하는 까닭은 인력과 재원 등의 자원(resource)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정책에 관한 효율성의 척도는 목표와 연관된다. 따라서 국가정책의 대상인 박물관도 “왜 국가가 박물관에 대해 지원과 배려를 하는가?”에 대해 박물관의 입장에서 명확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19세기 유럽을 기준으로 박물관은 국민계몽과 문화유산 보존, 그리고 더 나아가 국가 간의 문화적 자부심 함양을 위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점차 정규 학교들과 오락 및 레저를 위한 공간들이 생겨나면서 박물관의 역할은 이전보다 축소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박물관의 고유 기능만으로 이들 기관들과 관람객의 만족도를 놓고 경쟁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며, 정부에서도 이러한 상황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박물관이 제공하는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증가해오고 있고, 문화컨텐츠가 국가자산으로 인정받고 있다. 문화예술의 중요성은 오래 전부터 국가적 차원에서 인식되어 박물관을 포함한 여러 형태의 문화예술 기관들이 정부의 직, 간접적인 지원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박물관들은 사립이거나 국공립이거나를 구분할 필요 없이 국가의 공공 기제로서 국가정책의 큰 틀 안에서 국민들을 위한 기관으로서 기능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기능을 바탕으로 정부는 여러 가지 사회적 기여에 대한 박물관의 긍정적인 역할에 주목하여 박물관이 활성화될 수 있게 지원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국민들의 국가에 대한 요구가 다양해지고, 복지, 보건의료, 주택, 안전 등의 문제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서 박물관에 대한 정부지원은 확대되기가 쉽지 않은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물관의 입장에서는 정부의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 지원의 규모나 우선순위가 이전보다 더 확대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박물관 정책에 있어서 정부의 지원은 양날의 칼과 같아서 지원과 동시에 간섭과 통제가 따르는 양면적인 성격을 가진다. 그러나 박물관이라는 기관은 비영리적으로 대중에게 봉사해 온 기관이기 때문에 정책의 중심에는 대중이 있어야 하고, 비영리에 따르는 정책의존에 대한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 더 나아가 박물관이라는 기관은 정부의 행정기관이 아니라 문화 분야의 전문적인 콘텐츠를 기반으로 국가와 국민이 소통하는 매개의 기관이므로 이러한 기관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하여 지나치게 간섭받거나 종소되는 일이 없어야 하며, 박물관 자체의 전문적인 맨파워를 중심으로 효과적으로 작동되도록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박물관의 경우 시대가 변한다 할지라도 소장품의 수집과 보존, 연구와 해석, 그리고 대중을 향한 교육과 여가의 제공 등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여기에 새로운 사회 현상에 따르는 몇 가지 임무가 부가될 수 있을 텐데, 우선 이제까지 박물관이 맡아온 사회 교육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좀 더 세분화 전문화하여 정규 교육의 보조적 역할로서의 교육 기능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평생 교육 기능으로서의 박물관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최근 새롭게 요구되는 박물관의 역할 가운데 하나는 보다 편안한 휴식의 장소로서의 박물관에 대한 요구다. 점차 늘어가는 관람객의 숫자가 초래하는 공중위생의 문제 등에도 새롭게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또한 디지털을 통한 가상공간 및 네트워킹 활용의 문제를 연구해야 한다. 이 변화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박물관 근무자들의 환경이 새롭게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박물관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심한 국가의 경우 박물관 관련 법률이나 규정 등이 오래 전에 제정되어 최근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박물관을 둘러싼 사회 환경이 급속하게 변화하는 만큼 박물관을 지배하는 원리와 철학 역시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적절하게 변화하여야 한다.

박물관은 연구·전시를 담당하는 비영리적인 전문기관임과 동시에 기본적인 행정업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따라서 박물관 안에서는 일반적 행정활동과 학문적 연구 활동이라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업무가 이루어지게 된다. 따라서 박물관 업무는 행정적인 것과 학예적인 것이 양립되는 특성이 있음을 이해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 등의 경우에는 사립 및 국공립 박물관에도 대부분 이사회를 구성하여 실제적인 의사결정 기관으로의 권한을 부여한다. 반면 프랑스나 일본, 우리나라 등은 국공립 박물관에 이사회가 구성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며 전문성보다는 행정적 편의주의에 비중을 두고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전문성을 요구하는 학예연구 분야의 인력도 행정적 평가기준에 의해 평가되고 박물관의 조직도 비교적 경직된 수직적 구조를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행정위주의 박물관 경영에서 오는 폐단으로는 가시적 결과물을 위한 행정, 규정에 입각한 제반 운영에서 오는 경직성과 연구자의 자율성 침해, 그리고 이로 인한 전문성의 저하 등을 들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모든 일 처리에 있어서 행정적인 절차를 위주로 하다보면 결국은 운영의 효율성도 떨어질 뿐 아니라 그 기관의 정체성을 제대로 찾지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행정위주, 가시적 성과 위주로 박물관이 운영되게 된 배경에는 현실적으로 재정적인 문제가 그 핵심을 이루고 있다.

초기의 박물관과 달리 박물관의 유지관리 및 운영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고 박물관을 대체하는 유사 기관들이 많아지면서 박물관의 활동이 어려워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눈에 보이지 않는 학예연구의 가치를 행정가들에게 설득시키기란 어려운 일이여서 두 집단 사이에 신뢰가 구축되기엔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학적인 박물관 운영과 효과적인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 박물관의 설립목표가 분명하도록 해야 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수단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박물관의 성과에 대한 평가는 그 목표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다가가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평가하여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박물관들이 추구하는 목표는 국민들의 문화향수 기회 확대와 문화를 통한 지식의 증대와 생활의 향상 등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을 해줄 수 있는 중심적인 인물은 누구이며 이를 위해서 구성해야 하는 조직과 업무절차는 어떠하여야 하는가를 자문해본다면 해답은 자연스럽게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박물관에 관한 이러한 원론적인 주장은 현실적으로 점점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의 박물관 전문 인력들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혹은 그 밖의 재정지원 주체로부터의 박물관에 대한 지원이 가치 있는 것임을 입증하기 위하여 관람객의 만족감이라는 목표를 추구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자연스럽게 박물관 운영에 있어서의 기업적 경영기법과 마케팅 활동의 도입을 초래하게 되었지만 때로는 이 부분이 지나치게 강조됨으로써 많은 학예직원들은 이러한 변화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따라서 박물관 경영에 있어서 마케팅과 같은 기업적 경영기법의 현실적인 필요성은 인정하되 보다 본질적이고 중요한 박물관의 기능을 손상시켜 가면서 지나치게 이 부분이 강조되는 것은 경계하여야 한다.

우리나라는 초기에 박물관이 설립되는 단계에서 전문가들의 의견이 개입되기보다는 행정 관료들의 기획에 의하여 우선 건물이라는 가시적 실체가 세워지고 일반 행정과 유사한 운영방식으로 박물관이 운영되어도 될 것으로 생각해온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외국처럼 박물관의 특수성을 감안한 경영이나 재정 운영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저 일반 행정계통상의 한 부분으로서의 지위를 부여받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박물관의 관장과 학예연구 직원들의 위상이 마치 지방자치단체의 수도사업소나 폐기물 사업소의 소장이나 그 부하직원과 같은 하나의 일반 행정단위의 인력에 그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보직이 순환되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는 현재까지도 이러한 오류가 가져다주는 폐단을 수없이 목격하고 있으며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을 때 이어지는 잘못이 계속되는 것처럼 후속으로 탄생하는 박물관들이 잘못된 사례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것을 보아왔다.

결론적으로 한 나라의 박물관은 국가의 중요 문화자산이며 그렇기 때문에 정책적 지원과 배려가 따라야 한다. 다만 이러한 정책적 배려와 지원이 박물관의 문화적 특성을 고려한 비정치적이고 시장원리에 예속되지 않는 것이어야 하며 전문성과 자율성을 최대한으로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의 정책 방향이 이렇게 정해진다면 박물관의 입장에서는 그 정체성이 사립이건 국공립이건 간에 박물관이 태생적으로 갖게 되는 공익적 성격을 자각하여 국가문화의 보존과 활용에서 첨병 역할을 하는 기관으로서의 책임감과 국민에 대한 사명의식을 바탕으로 그 기관이 운영되도록 조직과 그 밖의 제반 조건을 최적화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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