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철 통일연구원 원장
김연철 통일연구원 원장

‘한편의 부조리극’. 오래전 <양철북>의 작가 귄터 그라스는 판문점을 돌아보고 그렇게 말했다. ‘목가적인 풍경’과 ‘냉전의 현장’이 너무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보다리의 두 정상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도 마찬가지다. 이제 부조리극을 끝낼 때다. 1953년 7월27일 전쟁의 기계음이 멈추고 풀벌레 소리가 울려 퍼질 때, 전쟁은 끝나야 했다. 휴전상태로 65년이 흘렀다. 그리고 때가 왔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전쟁은 끝났다’.

 

판문점 선언, 순서의 의미를 이해해야

두 정상이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새로움’이다. 과거와 뭐가 다른가? 첫째는 이행의 중요성이다. 두 정상 모두 합의만큼 이행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믿을 수 있냐고? 신뢰는 일방적이 아니라 상호적이고, 협상의 전제가 아니라 만들어야 할 결과다. 남과 북, 모두 이행의 의지가 높다. 이행의 과정이 신뢰를 쌓을 것이다.

둘째, 대화의 지속성이다. 장밋빛이라고? 누구도 앞날을 낙관하지 않았다. 두 정상 모두 가야 할 길이 멀고,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인정했다. 다만 자주 만나고 솔직하게 대화해서 불신의 늪에 빠지지 말자고 약속했다. 앞으로 자주 만날 것이다. 정상회담과 분야별 실무회담 그리고 정상회담이 쉼 없이 열릴 것이다. 중간중간 막힐 때마다 정상 간에 통화를 할 것이다. 합의가 추상적이라고? 이제 시작일 뿐이다. 대화의 불씨는 꺼지지 않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쟁점들이 하나씩 구체화될 것이다.

셋째는 신속성이다. 늘어지면 언제든지 불신이 끼어든다. 정부가 바뀌면 정책이 달라지고 합의가 깨졌던,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잃어버린 10년’의 교훈이 역설적으로 속도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 남과 북, 모두 공멸의 문턱까지 가 봤던 경험도 반전의 동력으로 작용했다.

“판문점선언에 왜 남북관계 발전이 맨 먼저 나오는가? 분단의 선이 협력을 위한 접경으로 전환하면, 한반도의 위상과 역할도 달라진다. 남북관계가 변하면 동아시아 질서도 변한다”

판문점 선언은 먼저 순서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왜 남북관계 발전이 제일 처음으로 나오는가? 남북관계가 달라지면 많은 문제가 풀리기 때문이다. 남북이 합의한 ‘자주’의 의미를 전통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달라진 상황을 반영하여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몇 년 전부터 ‘지정학적 숙명론’을 ‘지정학적 행운’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륙과 해양을 잇는 지정학과 지경학의 다리는 우리의 오랜 전략과제였다. 한반도를 강대국의 대결 공간이 아니라, 협력의 공간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인식의 일치가 일어났다. 새로운 변화다.

그동안 판문점을 관통하는 분계선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세계를 갈랐다. 대 분단의 선이 협력을 위한 접경으로 전환하면, 한반도의 위상과 역할도 달라진다. 한반도는 세계적 냉전의 현장이었기에 남북관계가 변하면 동아시아의 질서도 변한다. ‘지정학적 행운’을 위해서는 평화가 필요하다. 평화의 땅에서 번영의 꽃이 필 것이다.

남북관계의 상황 관리 역할도 중요하다.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한-미, 북-미 정상회담이 잇달아 열린다. 남·북·미 삼각 정상회담이 연이어 열리면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로 가는 길이 실체를 드러낼 것이다. 동시에 북-중, 북-러, 북-일 정상회담도 가능하다. 한반도 질서의 급변에서 남북관계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샛길로 빠지지 않도록 길잡이를 하고, 속도가 떨어지지 않도록 동력을 제공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 선언문’에 서명한 뒤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 선언문’에 서명한 뒤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법적인 평화가 아니라 사실상의 평화가 중요

 평화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져야 한다. ‘전쟁이 끝났다’는 종전은 법적인 문제에 앞서 관계의 성격 변화를 의미한다. 국제적으로 북한과 미국, 북한과 일본의 관계 정상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남북관계의 성격도 적대에서 협력으로 전환해야 한다. 우리 내부적으로도 전쟁의 상처를 치유할 때다. 전쟁이 남긴 증오를 해소하고 서로 화해하고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이산가족처럼 오랜 세월 방치했던 상처를 이제는 치유할 때다. 교류와 협력을 평화 앞에 적은 이유도 치유의 중요성 때문이다. 오고 가고 접촉을 해야 화해가 이루어진다. 종전에 관한 인문학적 성찰이 필요하다.

법제도적인 측면에서 ‘종전’은 정전과 평화 사이의 징검다리다. 당장에 평화협정을 맺을 수 없기에 ‘잠정협정’으로 종전선언을 추진하자는 의도다. 종전선언은 남·북·미 3자 또는 중국을 포함한 4자 어떤 방식도 가능하다.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모두 전쟁 당사자였던 중국을 배제할 필요가 없다. 다만 현재 한반도에 군대를 주둔하고 있는 남·북·미 3자 사이의 협의가 중요하고, 편의에 따라 종전선언을 3자 선언으로 추진할 수 있다. 평화협정은 4자의 포괄적 참여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중국이 섭섭해할 필요가 없다.

“‘법적인 평화’의 약속이 아니라, ‘사실상의 평화’의 이행 수준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되돌릴 수 없는 평화’의 수준이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의 수준을 결정한다”

평화협정에 대한 올바른 이해도 필요하다. 평화협정은 평화체제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평화는 약속 그 자체가 아니라 약속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북아일랜드의 사례를 보면, 평화는 평화협정을 맺고도 아주 오랫동안 길을 잃고 헤맸다. 중동의 사례처럼 평화협정의 잉크가 마르기 전에 전쟁이 일어난 경우도 있다. 평화협정을 언제 어떤 수준으로 맺을 것이냐의 문제는 나름의 장단점이 있다. 그렇게 보면 종전선언조차도 매우 초보적인 평화협정으로 분류할 수 있다. 평화협정은 얼마든지 관계의 수준을 반영해 여러 번 맺을 수 있다. 종전의 정치적 선언에 이어 곧바로 일정 수준의 평화협정을 맺을 가능성도 열어 놓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법적인 평화’가 아니라 ‘사실상의 평화’다. 남북은 일체의 적대행위를 중단하고,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고, 충돌의 바다 서해를 평화수역으로 만들기로 했다. 어떤 부분은 남북기본합의서의 일부고, 또 어떤 부분은 2007년 10·4 정상선언의 내용이다. 단지 과거 합의의 반복이라고? 앞으로 지켜보면 알겠지만, 약속은 문서 밖으로 걸어 나와 현실에서 실체를 드러낼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된 비무장지대를 말 그대로 비무장지대로 만들고, 서해가 평화와 번영의 바다로 변할 것이다.

‘사실상의 평화’ 수준은 비핵화의 속도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판문점에서 출발한 세기의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비핵화의 ‘되돌릴 수 없는 수준’을 얼마나 빨리 달성하느냐다. 북한은 상응조처가 마련되면 신속성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북한이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수준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법적인 평화’의 약속이 아니라, ‘사실상의 평화’의 이행 수준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되돌릴 수 없는 평화’의 수준이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의 수준을 결정한다.

남북한은 ‘완전한 비핵화’와 ‘핵 없는 한반도’ 실현을 약속했다. 비핵화라는 개념은 북한, 미국, 한국이 똑같다. 일부에서는 북한의 ‘비핵지대화’ 주장을 수용한 것으로 오해하지만 그렇지 않다. ‘비핵화’는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1992년 2월19일 발효)의 그 ‘비핵화’가 맞다. 국제사회의 우려와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 ‘완전한’이라는 단어를 집어넣은 협상 팀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비핵화가 왜 세 번째 순서냐고? 핵문제를 바라보는 철학이 다르기 때문이다. 핵문제는 한반도 냉전체제의 산물이다. 남북관계의 발전과 평화정착으로 냉전체제가 허물어지면, 그만큼 비핵화의 속도도 빨라진다. 핵무기를 단지 무기 그 자체로 보았던 과거의 접근법은 실패했다. 이제는 다시 관계로 접근해야 한다. 적대관계가 사라지면 핵무기도 사라진다.

“남과 북은 다시는 다리를 끊지 말자고, 서로 오고 가며 더 많은 다리를 놓자고, 그래서 적대의 바다를 메우고 평화의 땅을 일구자고 다짐했다. 우리는 다시 먼 길을 향해 출발했다”

판문점의 다리를 넘어서

4월27일 역사적인 만찬에 참석했다. 2층 창가에 서서 두 정상이 판문점 선언을 낭독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의미를 담은 눈물이 흘렀다. 비무장지대는 그동안 적대의 바다였고, 판문점은 그중에서도 냉전의 한복판이었다. 4월27일 두 정상은 증오의 바다, 불신의 바다에 작은 다리를 놓았다. 이제는 눈물도 말라버린 늙은 이산가족들이 다리를 건너 헤어진 가족을 만날 것이다. 개성공단의 김 사장도 금강산의 이 과장도 다시 다리를 건너기를 바란다. 군인과 공무원도 다리를 오고 가며, 평화를 만들 것이다. 때로는 파도가 치고 바람이 불 것이다. 판문점에서 남과 북은 다시는 다리를 끊지 말자고, 서로 오고 가며 더 많은 다리를 놓자고, 그래서 적대의 바다를 메우고 평화의 땅을 일구자고 다짐했다. 우리는 다시 먼 길을 향해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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