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주머니에는 동전이 가득했다. ‘용돈’이라며 받은 100원 짜리 다섯 개는 일상의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릴 즈음 어김없이 학교 앞 문구점으로 달려가 아이스크림 한 개를 집었다. 당시 가격은 200원. 무더위를 말끔히 씻어냈고, 입가에는 흡족한 미소가 번졌으니 동전의 위력은 대단했다.

디지털 기기가 세상을 점령하고 있는 요즘은 동전 보기가 어려워졌다. ‘일상의 여유’를 준다는 자판기 커피도 모바일이나 체크카드로 결제하는 마당이니 동전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음식점에서도 메뉴 가격을 천 원 단위로 산정하다보니 고객 입장에선 지갑에서 동전을 꺼낼 이유가 없어졌다. 

주머니에서 사라진 동전

한국은행이 지난해 4월 19일 발표한
한국은행이 지난해 4월 19일 발표한 ‘동전 없는 사회’ 시범사업 실시 매장 안내표.(출처=한국은행)

 

동전이 사라지는 이유로 정부 정책이 한몫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4월부터 ‘동전 없는 사회’ 시범사업을 벌였다. 올해로 1년을 맞았다.

불편한 동전 사용을 줄여보자는 의미로 추진된 이 사업은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 현금으로 물건을 산 후 잔돈을 교통카드, 사이버 머니 등에 적립해주는 서비스다. 현재 CU와 세븐일레븐, 이마트24, GS25, 이마트, 롯데마트 등 6개의 마트와 편의점 3만6,500여개 매장에서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적립된 금액은 물품 구매나 대중교통 이용 등 현금처럼 쓸 수 있다.

이용방법은 간단하다. 매장에서 현금으로 물건을 구매한 후 카드결제 단말기나 바코드 인식 기계를 통해 잔돈을 적립할 수 있다. 플라스틱 교통카드(T-머니·캐시비)나 휴대폰 속 모바일 카드 중 선택하면 된다.

현금 사용으로 생긴 잔돈을 일종의 ‘선불카드’에 미리 모아두는 방식이다. 1만 원 이상 적립하면 편의점이나 제휴은행 자동입출금기에서 현금으로 인출도 할 수 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듯 잔돈으로 목돈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열린 셈이다.  

필자는 거스름돈 대신 ‘사이버 머니’를 적립했다.
필자는 거스름돈 대신 ‘사이버 머니’를 적립했다.

 

실제로 필자는 서울 중구의 한 편의점에 들러 이 서비스를 이용해 봤다. 이곳에서 음료수 한 개를 구입한 후, 현금으로 2천 원을 낸 다음 거스름돈으로 700원을 받아야 했지만 평소 즐겨 쓰던 사이버 머니로 남은 돈을 적립하기로 했다.

매장 점원에게 모바일에 저장된 바코드를 보여 줬더니 기계 인식 후 바로 거스름돈이 들어왔다. 동전 대신 포인트가 쌓인 것이다. 주머니는 한결 가벼워졌고, 동전을 어디에 써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됐다.

동전 생산 비용 줄일 듯

이 사업은 단순히 ‘동전 사용을 줄이자’는 취지로 보이지만 크게 보면 효과는 상당하다. 무엇보다 동전 생산 비용을 크게 줄일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유통되고 있는 10원과 50원, 100원, 500원 동전에는 구리, 니켈, 알루미늄, 아연 등의 원재료가 들어간다. 제조비용은 대외비로 분류돼 정확한 금액은 알 수 없지만 10원짜리 동전의 경우 30~40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더 무겁고 큰 100원과 500원 동전의 제조비용은 훨씬 비쌀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동전 발행액은 495억4,000만원, 환수액은 373억8,700만원(환수율 75.5%)으로 나타났다. 동전 발행액이 급감하고 환수액이 급증했던 1998년 IMF(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라고 한다. ‘동전 없는 사회’ 사업이 추진되면서 장롱 속에서 잠자던 동전이 은행으로 대폭 회수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사업이 원활히 추진되면, 동전 생산량이 줄어 생산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론적으로 환수액인 370억 이상 경제적 효과가 발생한다.

국민들의 기대도 크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발표한 ‘2016년 지급결제보고서’를 보면, 전국 성인 남녀 2,5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0.8%가 ‘동전 없는 사회’ 추진에 찬성했다. 반대는 23.7%였다.

대부분 ‘갖고 다니기 불편해서(62.7%)’라는 이유로 동전 사용을 꺼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내년 3월까지 비트코인 등 디지털 통화 사용의 구체적인 제도를 마련할 예정이어서 ‘동전 없는 사회’는 더욱 빠르게 진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집에 보관 중인 다니는 동전들
집에 굴러다니는 동전들.

 

물론 기대만큼 개선해야 할 부분도 있다. 아직 사업 인지도가 낮아 홍보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서울 중구의 편의점 점주 김익수(42) 씨는 “이 사업은 사람들이 동전을 덜 쓰는 방향으로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며 “매장에 적립 시스템을 구축한 만큼 정부가 홍보 활동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모바일과 신용카드(직불카드)로 어디서든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면서 동전 사용 빈도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시대 흐름에 맞게 화폐 이용도 달리지는 건 당연하다.

이에 발맞춰 한국은행은 대상 업종과 적립 수단을 늘리는 등 2020년까지 ‘동전 없는 사회’ 구현을 목표로 사업을 계속 추진해 나간다고 한다. 2단계 사업으로 계좌입금 서비스 도입도 준비 중이다. 현금 계산 후 잔돈을 선불카드가 아니라 개인 은행계좌로 직접 받을 수 있게 돼 실질적인 ‘동전 없는 사회’가 기대된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최종환 jhlove24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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