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박연화 할머니 인터뷰

우리 아들 좀 만나게 해줄 수 있어요? 나 죽기 전에 소원 그거 하나에요.”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94세의 박연화 할머니는 눈물기 잔뜩 머금은 눈으로 애처롭게 말했다. 할머니의 마지막 말에 필자는 속절없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21차 남북 이산가족 1차 상봉 행사가 20일부터 22일까지 23일간 만남의 시간을 갖는다. 우리 측 상봉단은 89! 북쪽 이산가족 방문단(83명)이 남쪽 가족을 찾는 2차 행사는 24∼26일 열린다.  

최종 상봉단 명단에서 아쉽게 탈락한 박연화 할머니를 만나 그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대신 들어보았다.

 

 

박연화 할머니
황해도에서 이남한 박연화 할머니(왼쪽)와 시동생 가족. 북에 두고 온 큰 아들 영남(할머니 왼쪽) 씨와 헤어지기 찍은 마지막 사진. 

 

박연화 할머니는 북에 두고 온 큰 아들 영남이를 평생 가슴에 아리도록 품고 살았다. 황해도가 고향이자 시집이었던 할머니. 1.4 후퇴 직전 할머니는 6살 큰 아들을 데리고 오고 싶었지만 시어머니는 날도 추운데 아이 고생 시키지 말고 두고 가라 했다. 할머니를 잘 따랐던 아들은 할머니와 있겠다고 했다. 그렇게 모자는 영영 이별했다    

여동생 한 명을 빼고 부모님과 형제를 비롯해 가족 모두와 영영 그대로 헤어졌다. 상상조차 할 수도 없던 일이었다.  

박연화 할머니의 삶은 우리나라의 가슴 아픈 역사가 그대로 꿰뚫고 지나가 아픈 상처로 점철된 것과 다름없었다. 아버지는 독립운동사 연감에 이름을 남아 있는 독립운동가셨다. 김구 선생의 제자 중 한 명이었던 아버지는 해주 감옥에서 고문을 받고 겨우 목숨을 건진 채 살아남았다.  

아들과의 생이별 뒤에도 그의 아픔은 끝나지 않았다. 남편은 군인이었다. 육군 소위였던 남편은 6.25 전쟁에 참전해 행방불명됐다. 유해도 찾지 못하고 국군묘지에 이름만 남아 있다. 할머니는 딸과 함께 그렇게 둘이 남겨졌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할머니의 손을 잡으며 쉬이 나오지 않는 말을 건넸다. 그러나 할머니는 험한 일 하며 살진 않았어요라고 덤덤히 답하셨다   

 

박연화 할머니
황해도 과수원집 딸 박연화(왼쪽) 씨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겪어낸 후,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어느덧 94세의 노인이 되었다.

 

 

말은 그랬지만, 혈혈단신 할머니가 얼마나 힘든 세월을 견뎠을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저 딸 하나 공부시키겠단 일념으로 그렇게 모진 세월을 견뎌내며 94세의 노인이 되었다.  

6살 때 이별한 아들도 이제 73세의 노인이 되어있을 터. 할머니는 이산가족 상봉 소식이 있을 때마다 부지런히 신청했다. 평소 적십자에도 숱하게 문의했다.

 

 

박연화 할머니와 딸. 군인이었던 남편은 6.25때 전사하여 유해조차 찾지 못하고 딸과 함께 긴 세월을 견뎌
박연화 할머니(왼쪽)와 딸. 군인이었던 남편은 6.25 때 전사하여 유해조차 찾지 못하고 이후 할머니는 딸과 함께 긴 세월을 견뎌왔다.

 

할머니는 죽기 전 소원이 딱 하나 있다고 했다. “우리 아들 영남이 만나서 엄마가 너 혼자 버리고 와 정말 정말 미안하다고 그거 꼭 용서 빌고 죽고 싶어.

버리고 온 게 아닌데도 할머니 마음에서 68년의 세월 동안 아들을 버리고 온 것이나 다름없다고 얼마나 자책하며 사셨을지 듣는 이의 가슴에도 너무나 무거운 슬픔이 내려앉았다.

 

살이라곤 하나도 없이 앙상한 할머니는 그저 아들을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오늘 하루를 버틴다. 20일 오늘 TV를 보며 하염없이 더 아들을 그리워할 할머니가 못내 마음에 걸려 마음이 무겁다.  

 

 

박연화 할머니와 딸의 뒷모습. 68년 동안 아들을 그리워하며 살아온 할머니에겐 하루라도 빨리 북에 두고 온 아들을 만날 기회가 필요하다.
박연화 할머니와 딸의 뒷모습. 68년 동안 아들을 그리워하며 살아온 할머니에겐 하루라도 빨리 북에 두고 온 아들을 만날 기회가 필요하다.

 

오늘 이산가족 상봉이란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다시 만날 날, 그 기대로 버티고 또 버티고 온 이산가족이 여전히 많다박연화 할머니의 그 꿈도 하루빨리 이뤄지길 바란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진윤지 ardentmithr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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