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아름다운 별을 여행 중이다
지금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별을 여행 중이다
지구는 초록별이다. 초록과 청색으로 빚어진 눈부시게 아름다운 별이다. 다른 어느 별보다도 아름답고 물과 나무가 지구 표면을 감싸고 있어 환상적으로 아름답다. 아름다운 별은 먼 곳에 있지 않고 내가 지금 몸의 일부를 기대고 있는 지구다. 농구공처럼 원구형태로 만들어진 지구라는 초록별에 물이 찰랑찰랑 넘치는 현상을 상상해 보면 눈물이 날만큼 신비롭다. 둥근 원구에 바다가 있어 물이 찰랑거리는 지구에는 거대한 숲이 있다. 생명이 살아있는 숲. 숲 속의 나무와 나무 사이를 바람이 불고 꽃이 피고 진다. 지구별은 아름다운 별이다. 우리는 지금 지구별을 여행 중이다.
같은 동네에 살았던 이형준 사진작가는 여러 권의 책을 냈다. 얼마 전 『시골여행』이라는 책을 발간해서 내게 선물을 했다. 우리나라의 시골이 아니라 세계 각지의 시골을 취재해서 낸 책이다. 맨발로 걸어서 사진을 찍고 느낀 것을 글로 엮어낸 책이다. 무엇보다 사진이 예술이다. 사진작가가 낸 책답다. 술을 안 해 만나면 차만 마시며 이야기를 하게 되어 술에 익숙한 나는 어색하지만 잊어버리지 않을 만큼 드문드문 만난다. 「여는 글」에 이렇게 적고 있다.
어떤 이는 일상으로부터 탈출을 위해 어떤 사람은 보다 넓은 세상을 둘러보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나의 첫 여행도 엄청난 계획이나 목적보다 내가 태어난 지구라는 별을 한 바퀴 둘러보기 위해서 시작했다.
이형준 사진작가가 해외여행을 시작한 이래 14년 동안 130여 개국, 2500곳이 넘는 도시와 시골을 둘러보았다고 한다. 사진작가이기 이전에 대단한 여행가다. 얼마 전에는 『유럽의 동화마을』을 펴내기도 했었다. 작은 키에 조용조용한 말을 하는 사람이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는가 싶을 만큼 여행에 있어서는 정력가다. 내가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많은 여행을 한 사람이다. 인생이 한 바탕 여행이라며 멋진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느 별에선가 착하게 산 상품으로 지구여행티켓을 한 장씩 받았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상품권을 가진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나는 우긴다. 착하게 산 사람들만이 상품권을 받을 수 있었다. 지구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모두 착한 사람이다. 아기 때의 배냇웃음은 상품권을 받았을 때에 가졌던 착한 웃음이다.
지구여행티켓은 선행의 여행상품권이다. 우리가 퀴즈나 열심히 일한 대가로 여행권을 선물 받듯이 지구여행티켓을 받고 흥분된 마음으로 찾아온 곳이 지구별이다. 지구별은 더 없이 아름답고 가슴 벅찬 놀라움이 가득 찬 곳이지만 어느 곳보다도 힘이 들고 여행하기에 어려움이 많은 곳이다. 앞서 말한 대로 모두 처음으로 가보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구를 찾아올 때는 안내자가 필요하다. 그것이 부모다. 지구여행을 먼저 온 두 사람이 새로운 여행자들을 안내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지구여행 안내자이다.
아버지는 힘으로, 어머니는 마음으로 길을 안내해준다. 아버지는 나무를 하고, 사냥을 하고, 밭을 갈고, 추수를 한다. 육체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담당한다. 말없이 행동으로 보여준다. 어머니는 가까운 곳에서 열매를 따고, 집에서 밥을 짓고, 바느질을 하고, 젖을 먹이며 마음으로 따뜻하게 감싼다. 어머니는 아이를 품에 안고 아이에게 세상의 말을 가르쳐준다.
지구여행 중에는 몇 가지 기본 법칙이 적용된다. 지구를 찾아올 때와 돌아갈 때의 세 가지 수칙이다. 첫째 과거를 잃어버리게 되어있다. 태어나기 전에 살았던 별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한다. 둘째 지구를 찾아올 때도 아무 것도 가져 올 수 없고 지구를 떠날 때에도 아무 것도 가져갈 수 없다. 지구에 있던 물건이나 산과 들, 물, 바람까지도 가져갈 수가 없다. 모두가 평등하게 빈손으로 시작하고 여행이 끝나서는 모두가 빈손으로 가야 한다. 셋째 육체는 빌려 입고 살다가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 육체 임대기간은 죽음 직전까지이다. 죽음은 영혼이 육체를 벗어놓고 돌아가는 순간을 말한다.
생명현상은 오묘하고 신비한 현상이다. 육체에 담긴 생명을 느끼고 산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그릇에 담긴 물처럼 투명하면서도 모양을 갖지 않고 색도 없다. 경이로운 생명현상을 내 몸 안에 지니고 지구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찰랑찰랑 넘칠 듯 말 듯한 생명을 몸 안에 가지고 느끼는 세상은 절묘하다. 생각만 하고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해 보라. 육체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장애이기도 하지만 축복인 것을 깨달아야 한다.
말랑말랑한 찰흙의 느낌, 차를 타고 달리며 손을 내밀어 손가락을 움직여보면 만져지는 바람의 감촉, 바람이 얼마나 부드럽고 매끄러운 살을 가졌는가를 알게 된다. 사물에 대한 감촉도 기가 막히지만 사람이 사람의 피부를 만질 때의 느낌은 절정이다. 아기의 피부보다 더 가슴 뛰게 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피부 감촉, 살아있음이 순간 달다. 달빛과 별빛의 색감과 시골 문풍지를 찾아온 살가운 바람, 살아있음이 반갑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만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육체를 가지게 되면서 직접 행할 수 있게 되었다. 암벽을 깎아 작품을 만들고, 내가 살 집을 내 손으로 만드는 기쁨도 지구여행 중에 느낄 수 없는 소중한 기회이다.
신광철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