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여 관북리 유적 대형전각 건물터(2004~2006년 조사)>

백제 성왕은 538년 협소한 웅진(熊津)을 버리고 넓은 들이 있는 곳에 보다 큰 도읍을 건설하기 위해 천도하였다.

이 성은 부소산을 감싸고 있고 양쪽 머리가 낮게 둘러져 백마강을 향해 초승달의 형태를 보이고 있어 반월성(半月城)이라고도 했다. 조선시대의 기록에는 성터의 길이가 13,000여척이나 되며, 치소가 성 안에 있었다고 한다.

문화재청은 12일부터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주관으로 ‘백제왕도 핵심유적 보존‧관리사업’의 하나인 백제 사비시대 왕궁터 ‘부여 관북리 유적’(사적 제428호) 발굴(시굴)조사를 시작한다.

‘부여 관북리 유적’은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였던 부여의 사비시대 왕궁터로, 북쪽으로 부소산성을 등지고 남쪽으로 부여읍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며, 서쪽으로 백마강이 굽이쳐 흐르고 있다.

▲ <부여 관북리 유적 조사지역 전경>

문화재청은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유적의 체계적인 보존‧관리를 위하여 백제왕도 핵심유적 사업을 추진 중이다. 또한,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사비 왕궁터 관련 지역에 대한 체계적인 중장기 학술조사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부여 관북리 유적 조사는 1982년부터 2014년까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를 포함한 충남대학교박물관, 한국문화재재단, 백제고도문화재단 등 10개의 조사 기관에서 시굴‧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조사 결과, 대형건물터‧지하창고시설‧연못‧도로‧공방터, 수로시설 등이 발견되었다. 성질이 다른 흙을 서로 번갈아 가면서 쌓아올리는 성토(盛土) 기술로 쌓은 층에서 나온 것들로, 같은 방향으로 배치되어 일정한 규칙성도 있다. 이는 백제가 도시계획에 따라 도성을 조성하였음을 보여주고 있어 왕궁터로서의 가치를 뒷받침하고 있다.

▲ <우물에서 나온 인면묵서토기(2001~2003년 조사)>

이번 발굴조사는 백제 사비시대 왕궁터에 대한 학술조사의 하나로,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지난 5일부터 발굴조사 사전 준비 작업을 거쳐 12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번 조사는 기존 조사지역의 남쪽에서 하게 되는데, 바로 인접한 지역에서 도로, 목곽고(木槨庫), 배수로 등이 과거 확인된 바 있어서 추가 조사를 하게 되면 사비시대 왕궁터와 관련된 주요 시설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4호 목곽고에서 나온 호자(2004~2006년 조사)>

문화재청은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백제 도성 체계를 규명하고, 부여지역 핵심유적에 대한 사비 왕도의 역사성을 회복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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