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왕 장보고

 

현재로서는 정확한 내용을 확인할 수 없지만 장보고는 군사 1천명을 거느리는 장수였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장보고는 1천명을 거느리는 장수가 되었다. 신라에서 발붙일 곳이 없어 떠났던 젊은 장보고는 당에서 성공했다.

장보고는 말단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전장에서 장보고는 싸움을 잘 하고 창을 교묘하게 잘 써 공을 세웠고 진급했을 것이다. 그러한 언급이 없다. 사실 장보고에 대한 중국측의 기록에는 뚜렷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장보고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왜 기록에 남겨졌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중국의 명재상인 주공과 소공과 비교하여 충의지심에 대하여 적었는가 하는 점이다. 역사적 진실이 감춰져있다고 봐야 한다. 행간에 숨어있는 커다란 공을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아쉬움이 있다.

전사로서 가장 큰 덕목은 잘 싸우는 것이다. 싸워서 이기는 것만이 유일하게 인정받는 것이 전사다. 장보고는 싸움도 잘 하고 창도 잘 썼기 때문에 인정받는 장교였을 것이다. 후일 청해진을 완도에 설치하게 된 것으로 보아 그는 군중소장시절 요직에서 국가간의 무역과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곳에서 활동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으로 보면 본대에서 활동했을 것이다. 그의 소장이라는 직급은 무령군에서 활동했던 마지막 직급 또는 직책이었을 것이다.

장보고는 이미 30세였다. 젊음은 정점을 지나가고 있었고, 경륜은 쌓여갈 나이다. 다시 시작해야 할 나이였다. 육체로 얻을 수 있는 것은 한계점을 넘었고, 세상을 읽는 혜안으로 세상을 열어가야 할 나이였다. 전장에서 이미 혈기왕성한 열정으로 이미 오랜 기간을 보냈고 장보고는 보다 크고 성숙된 활로를 찾아야 했을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온 용병에게 진급은 한계가 있었을 것이고, 당나라 토착인들에 비해 여러 가지로 불이익이 있을 것이란 추정은 자연스럽다. 남아로 태어나 큰 세상과 만나 꿈을 이룰 발판을 마련해야 했다. 그가 활동했던 중국의 산동반도와 절강성 일대의 지리적 상황을 익혔다. 생사를 오가는 전사에게 주변상황의 숙지와 변화를 읽어내는 것은 필수요소다. 살아남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기도 하고, 이를 긴장을 완화하고 긴장을 강화하는 일이 외교다. 더욱 긴장을 조장하여 전의를 살리기도 하지만, 상호 평화를 맺기 위한 관계개선을 이루어야 하는 것도 동시에 이루어지는 곳이 본대의 역할이다. 그곳에서 장보고는 국가간의 관계와 재정을 마련하기 위한 상업 활동을 했을 것이다. 무령군의 역할은 신라에서 파견한 견당사 일행을 접수하고 장안까지 안내하는 것도 하나의 임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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