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전북 진출 시기 앞당겨 질수도

▲ <무주 대차리 고분군 석곽묘(9-1, 9-2, 9-3호)> 사진=문화재청

6세기 초를 전후한 시기 전북지역에 신라의 진출과정과 가야와 신라의 역학관계를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는 신라계 무덤이 무주 대차리 고분군에서 쏟아져 나왔다.

이번 발굴은 신라의 전북 진출 시기를 6세기 중반으로 보는 학계의 견해보다 이른 시점에 서진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무주군청과 군산대 가야문화연구소는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 일원 고분군을 발굴조사한 결과, 5∼6세기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계와 가야계 석곽묘(石槨墓·돌덧널무덤) 11기를 찾아냈다고 27일 밝혔다.

▲ <무주 대차리 고분군 석곽묘 근경(1호)> 사진=문화재청

이 중 2기는 강돌(둥글둥글한 천석, 川石)로 벽체가 축조되고 바닥에 시신을 안치하기위한 시상대가 없는 반면, 나머지 9기는 깬돌(할석, 割石)로 벽체가 조성되었으며 바닥에 잔돌(소석, 小石)로 시상대를 깔았다. 이러한 조성 방법의 차이는 석곽묘를 조성한 집단이 서로 달랐음을 의미한다.

벽체가 강돌로 축조되고 시상대가 없는 석곽묘는 장수지역의 가야계 석곽묘와 유사하다. 깬돌로 축조되고 시상대가 있는 석곽묘는 옥천 금구리, 상주 헌신동, 상주 병성동, 남원 봉대리 등에서 확인되었는데 이들 유적과의 비교를 통해 신라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석곽묘에서는 굽달린목긴항아리(대부장경호), 목짧은항아리(단경호), 뚜껑(개), 굽달린접시(고배) 등의 신라 토기와 빼곡한 물결무늬(밀집파상문)가 장식된 가야토기, 쇠낫(철겸), 쇠손칼(철도자), 화살촉(철촉), 금동귀걸이 등 40점 이상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신라 토기가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현재까지 전북 지역에서 조사된 유적 중 가장 많은 수량의 신라 토기다.

▲ <무주 대차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금속 유물들> 사진=문화재청

금강이 흐르는 무주는 지리적 전략적 요충지였지만 고대에 어떤 세력이 점유했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번 조사 발굴로 신라와 가야를 비롯해 고대 국가의 역학관계가 밝혀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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