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흥왕리 이궁서 고려 유적 발굴

조용진 기자l승인2018.12.03l수정2018.12.03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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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건국 1100주년을 맞이하여 hkbc가 취재 보도한 올 9월6일자 강화 흥왕리 이궁터 학술발굴조사에서 마침내 고려시대 건물지와 배수로, 석축 등의 시설물을 확인하였다.

고려는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며 몽고의 침략에 대항하였으나 아시아에서 가장 큰 황룡사지 9층목탑이 소실되는 등 수난을 겪다 개경으로 천도하며 몽골의 반식민지 상태가 되었다.

▲ <강화 흥왕리 이궁지 조사지역(동그라미 표시)> 사진=문화재청

강화는 전란의 위기 속에서 39년간 고려의 도읍지 역할을 했다. 산 속에 궁궐을 지으면 국가의 기업을 유지할 수 있다는 교서랑 경유의 진언에 따라 개경으로 천도하던 고종45년(1259) 강화도 마니산 남쪽에 이궁을 건립하였다. 2000년 선문대 고고연구소에 의해 한 차례 지표조사를 진행하여 축대와 건물지의 존재가 확인된 바 있다.

▲ <강화 흥왕리 이궁지 조사지역 내 유구 현황> 사진=문화재청

이번 조사는 흥왕리 이궁터의 첫 번째 학술발굴조사로서, 지표조사에서 확인된 바 있는 건물지의 동쪽 평탄대지를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그 결과, 조사 지역의 남쪽과 북쪽에 각각 시기를 달리하는 시설물이 조성되었음이 확인되었다.

13세기로 추정되는 시설물들이 분포하는 남쪽에는 동서방향의 석축(동서석축1)을 쌓아 한 단 가량 높은 공간을 조성하고 그 안쪽에 건물지(건물지1)와 배수로, 남북방향의 석축(남북석축1)을 평행하게 배치하였다.

▲ <조사지역 남쪽 유구 노출 모습> 사진=문화재청

건물지의 북쪽에서는 건물지 윗면에 동서방향의 석축(동서석축2)과 담장이 중복으로 조성되기도 하였다. 한편, 조사 지역의 북쪽에서는 고려 말~조선 초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지 2기(건물지2·3)와 배수로가 확인되었다.

▲ <강화 흥왕리 이궁지 출토유물> 사진=문화재청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시설물은 이궁의 중심권역은 아닌 것으로 추정되지만, 기록으로만 전하던 이궁의 존재를 고고학적 조사를 통해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13세기 이궁의 건립 이후 여말선초까지 그 구조와 배치, 성격에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자료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학술 가치가 크다.

조용진 기자  gm15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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