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건국 1100주년을 맞이하여 hkbc가 취재 보도한 올 9월6일자 강화 흥왕리 이궁터 학술발굴조사에서 마침내 고려시대 건물지와 배수로, 석축 등의 시설물을 확인하였다.
고려는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며 몽고의 침략에 대항하였으나 아시아에서 가장 큰 황룡사지 9층목탑이 소실되는 등 수난을 겪다 개경으로 천도하며 몽골의 반식민지 상태가 되었다.
강화는 전란의 위기 속에서 39년간 고려의 도읍지 역할을 했다. 산 속에 궁궐을 지으면 국가의 기업을 유지할 수 있다는 교서랑 경유의 진언에 따라 개경으로 천도하던 고종45년(1259) 강화도 마니산 남쪽에 이궁을 건립하였다. 2000년 선문대 고고연구소에 의해 한 차례 지표조사를 진행하여 축대와 건물지의 존재가 확인된 바 있다.
이번 조사는 흥왕리 이궁터의 첫 번째 학술발굴조사로서, 지표조사에서 확인된 바 있는 건물지의 동쪽 평탄대지를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그 결과, 조사 지역의 남쪽과 북쪽에 각각 시기를 달리하는 시설물이 조성되었음이 확인되었다.
13세기로 추정되는 시설물들이 분포하는 남쪽에는 동서방향의 석축(동서석축1)을 쌓아 한 단 가량 높은 공간을 조성하고 그 안쪽에 건물지(건물지1)와 배수로, 남북방향의 석축(남북석축1)을 평행하게 배치하였다.
건물지의 북쪽에서는 건물지 윗면에 동서방향의 석축(동서석축2)과 담장이 중복으로 조성되기도 하였다. 한편, 조사 지역의 북쪽에서는 고려 말~조선 초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지 2기(건물지2·3)와 배수로가 확인되었다.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시설물은 이궁의 중심권역은 아닌 것으로 추정되지만, 기록으로만 전하던 이궁의 존재를 고고학적 조사를 통해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13세기 이궁의 건립 이후 여말선초까지 그 구조와 배치, 성격에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자료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학술 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