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왕 장보고

역사적 진실은 가볍지 않으나 위대한 한 인물에 대한 기술로서는 턱 없이 허전하다. 이 차가운 기술에서 위대함을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장보고라는 한 인물에 대한 기록이 정말 몇 장에 불과한 현실에서도 기록의 내용을 분석하고 큰 그림으로 짜 맞혀 보면 그 얼개의 상황이 그려지는데 그 규모나 역사적인 의미로 봐서도 인류역사에서도 하나의 사건이었다.

먼저 큰 틀에서 장보고의 역할을 검토해보면 보면 역사의 방향이 시대상황과 힘의 역학관계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장보고 개인의 능력과 그가 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장보고라는 한 사람에게 나라의 존망과도 연결될 수 있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규모의 군사를 주었다는 것과 일정지역의 지배권을 인정했다는 것은 신라에서도 중대사였을 것이다. 이는 시국을 주도면밀하게 파악한 후에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어 장보고 자신이 계획한 원대한 방안을 받아들이도록 사전 포석을 깔아놓았을 것이다. 한 나라의 왕이 한 사람을 만날 때, 특히 나라의 운명과 간계될 수 있는 일을 시행할 때에는 많은 논의와 결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장보고에 대한 인간적인 면뿐만이 아니라 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까지를 포함했을 것이다. 신라에는 믿을 만한 장군이 없고, 군사가 없는 것이 아니었을 텐데 하필이면 신라의 신하로 공증되지 않은 장보고에게 중책을 맡겼을까.

국가간의 문제로 동북아 정세를 살펴보면 발해의 등장으로 인한 당과 신라의 연합관계가 더욱 공고해져야 신흥국인 발해를 견제할 수가 있었다. 발해의 남쪽 방어선을 신라가 담당해주기를 바랬다.

장보고의 직함에서 발견되는 대사大使라는 직함이다. 신라의 공식적인 관직체계에서는 없는 특별한 관직이다. 이는 장보고에게 특수임무를 맡기면서 내린 직함이었고, 왕 자신이 수행해야할 임무를 대행하게 한 것이 보이는 직함이다.

733년 신라 왕 중 성덕왕이 당의 현종으로부터 영해군사寧海軍使라는 관작을 수여받는다. 이후 신라의 아들이 계속해서 영해군사라는 직함을 부여받는데, 이는 발해의 당 침입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그 이전해인 732년에 발해의 왕, 대무예가 군사를 해로를 이용하여 산동반도의 등주로 파견하여 공략했다. 당의 입장으로서는 신라가 서해를 장악해서 당으로의 공격을 막아주기를 바랬을 것이다. 영해군사라는 관작은 성덕왕이 영해상의 해적을 소탕하고 발해를 견제하기 위한 임무를 황제가 신라왕에게 내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영해寧海라는 말은, 무령군의 영역인 바다를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결국 공동 방어선을 구축하자는 제안이었다. 이러한 동북아의 상황이 장보고에게 대사라는 직함이 주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영해군사 신라국왕의 산하에 황해해상지배권을 장악하는 <청해진대사 장보고>가 등장하는 국제적인 세력의 균형을 위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아쉽게도 장보고의 역량과 이 구도를 틀어쥐고 이끌어갈 인물이라는 실증을 찾아볼 수 없지만 이 역사적 흐름은 시대적 사명이기도 했고, 걸출한 장보고라는 사람이 탄생하게 되었다.

- 연재 소설입니다.  다음 편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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