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왕 장보고


838년 6월 23일, 동북충이 불고 밤이 되어 어둠 속으로 나아가면서 두 배는 불빛으로 서로 연락하였다.

어둠 속에서 항해를 하면서 교신을 불빛으로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불빛만으로 의사를 전달하고 지시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한 수준의 항해사임을 알 수 있다. 선원들 간에 이미 양해된 신호체계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대선단을 거느린 청해진은 이미 숙련되고 안정된 체계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838년 7월 3일, 물길을 앞세워 굴항정으로 나아갔다.

물길을 제대로 만나지 못하면 몇 배로 힘이 들고, 갯벌에 갇히거나 항로를 제대로 유지할 수가 없었다. 물길을 익히기는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신라와 당의 거리는 멀다. 한 두 번의 항해로 물길을 익힌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오랜 숙련이 필요한 능력이다. 오랜 기간 같은 항로를 다녀본 사람만이 물길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많은 아쉬움이 있다. 장보고의 행적과 신라인들에 대한 기록이 중국과 일본의 기록에 의하다 보니 우호적인 글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엔닌일기는 그래도 상당히 객관적인 입장에서 기록하고 있다. 자신의 감정을 담지 않고 사실에 충실하게 기록하고 있다.

839년 1월 4일, 신라인 통역 김정남의 청으로 구입한 배를 수리하기 위하여 도장, 번장 성공, 단공 등 36명을 초주로 떠나게 하였다.

배를 구입해준 것도 신라인 통역 김정남이었다. <김정남의 청으로>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것은 김정남이 직접 배를 만들어 팔았을 가능성도 있다. 남의 배를 구입해 주었을 수도 있지만 자신이 아는 배를 사달라고 부탁을 받지 않은 바에야 부탁하면서까지 구입을 종용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장보고의 청해진에서는 적어도 배를 만들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있다.

장대사는 지난 해 겨울부터 배를 만들기 시작하여 금년 2월에 이르러 일을 마쳤다.

장대사는 장영을 말한다. 역시 엔닌일기에 적산의 법화원을 관리하고 있는 신라압아 장영을 말한다. 그는 장보고가 임명해 적산 법화원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다. 장보고의 수하에서 일하고 있는 장영이 배를 만들었다고 하면 본진이 있는 완도의 청해진에서는 상시 배를 만들고 수리를 담당하는 곳이 있었을 것이다. 신라․당․일본을 아우르는 바다를 오가는 대선단을 거느린 청해진이었다. 당에서 배를 만들 수 있는 정도라면 청해진은 보다 크고 상시적인 관리전담기구가 있었을 것이다.

얼마만한 규모의 배였다거나 어떤 형태의 배라는 언급이 없어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공해선상을 오갈 수 있는 배라면 상당한 크기의 배였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내용에 엔닌 일행을 태운 9척의 배에 <신라인으로 바다를 잘 아는 60여명을 고용하여 선마다 7명 혹은 6명, 5명을 배치하였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당시의 배에는 신라인들이 중심이 되어 운행되고 있었다.

바람은 바뀌지 않았으나 제 1선의 신라인 선원과 키잡이가 배를 내린 뒤 아직 돌아오지 않아 여러 배들은 억류되어 출발할 수가 없었다.

제 1선이 선두로 지휘와 항로를 열러가는 배였음을 알 수 있다. 이곳에 탄 <신라인 선원과 키잡이>라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신라인이 배의 항로를 책임지거나 배의 운행을 주도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배를 만들고 수리하는 일부터 배의운행에 대한 전반적인 일을 신라인들이 하고 있었다. 당시의 황해를 중심으로 한 무역이나 운송 그리고 여행은 신라인들이 주도하고 있었다. 청해진을 중심으로 해서 신라인과 신라의 배는 바다를 장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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