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왕 장보고


사나이들의 큰 그릇을 느낄 수 있다. 얼마나 큰 원한이면 만나면 죽일 만큼이었을까. 전장에서 죽을 고비를 맞았음에도 도와주지 않고 방관했다던가, 큰 고비를 맞은 장보고에게 뒤통수를 치는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죽음을 당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형과 아우 사이가 어느 날 무슨 일로 서로 만나면 죽일 정도까지 되었을까. 어디에도 이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가 없다. 살인까지 할 정도였다면 필시 큰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도 정년이 장보고에게 죽임을 당할 일이라면 정년이 잘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정년은 남아였다. <배고픔과 추위에 죽는 것이 싸워서 기꺼이 죽느니만 못하다. 하물며 고향에서 죽는 것이랴> 라고 답을 하고 있다. 사나이가 굶어 죽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전장에서 싸우다 죽거나, 당당하게 세상과 한 판 붙다가 죽어야 하는 것이다. 전장에서 두려울 것 없이 거칠게 살아온 정년은 성공한 장보고를 찾아간다. 남아다운 정년에게 싸우다 죽는 일은 있어도 굶어 죽는 일은 용납되지 않았다.

고향을 떠나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그는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신라를 떠나올 때 기댈 곳이 없었듯이 고향, 신라로 돌아가면서 정년은 의지할 곳이 없었다. 한때는 형과 아우로 지냈던 장보고에게 찾아가는 마음은 참담했다. 지금은 원수 같은 사이가 되어있었다. 자신을 만나면 죽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년은 장보고를 찾아갔다. 설령 장보고에게 죽음을 당하더라도 타향에서 굶어 죽는 것보다는 나았다. 마지막 소원이 고향에 묻히는 것이었다. 마지막 한 가닥 남은 장보고를 만나러 가는 정년의 마음은 참담했다. 이러한 긴박하고도 막막한 순간을 중국의 역사기록에는 아주 간단하게 적고 있다.

정년은 당나라를 떠나 장보고를 만났다. 장보고는 함께 술을 마시며, 마음껏 즐겼다.

사실적인 상황만을 적었다. <정년은 당나라를 떠나 장보고를 만났다> 참 단순 명쾌한 기록이다. 만나는 순간의 감정이나 상황에는 언급이 없다. 그리고는 <장보고는 함께 술을 마시며, 마음껏 즐겼다> 기록의 전부다. 서로 죽일지도 모르는 서먹하고 적의에 찬 사이였음에도 장보고는 정년을 맞아 술을 마시며 과거의 정을 확인했다. 마음 한 번 돌리니 세상이 달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마음 한 번 다르게 먹으면 용서 못할 일도 없다. 죽음의 계곡을 같이 넘나들던 시절이 떠올랐다. 장보고는 자신을 찾아온 정년을 끌어안았다. 장보고 자신은 성공했고, 정년은 실패로 좌절하고 있었다. 실패한 정년을 장보고는 받아주었다. 적의를 풀고 술을 함께 했다. 남자들의 세계에서 술은 상대방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말한다. 술을 함께 마셔봐야 친구가 될 수 있다. 술은 몸과 마음을 열어놓고 마실 수 있어야 취할 수 있다. 술은 사람을 완전 무장해제 시키기 때문이다.

적과 술을 마시면서 취할 수는 없다. 술에 취한다는 건 믿음을 전제로 한 한바탕 풀어헤침이다. 두 사람은 원망도 우정도 술에 부어 마셨다.

- 연재 소설입니다.  다음 편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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