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왕 장보고


우선 장도 주변은 신지도, 고금도, 약산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마치 울타리처럼 둘러쳐져 있어서 천혜의 요새인 데다 중국과 일본을 잇는 해상요충지로서 일본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장보고가 섬 출신이고, 그가 완도 출신으로 지형지물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완도를 청해진으로 삼았다는 견해도 있다. 청해진의 중요 유적인 장도를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루 두 번 열리고 닫히는 물길을 알아야 한다. 외성문과 내성문, 고대 등의 건물들과 장도 전체를 두른 토성의 흔적이 복원되었다.

외성문은 장좌마을에서 짧은 바닷길을 건너면 만나는 첫 번째 관문이다. 섬인 지리적 여건과 함께 동남북 면은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외성문은 성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다. 만약의 사태로 외성문이 무너질 경우 2차적인 방어벽이자 지휘를 할 수 있는 내성문과 성벽의 모서리나 돌출 부분에 세워 먼 곳을 관측하고 지휘에 용이한 곳에 설치한 누각인 고대 가 있다. 고대에서는 신지도와 거금도, 그 사이에 있는 약산도가 보인다.

청해진은 완도에 설진되었다. 장도는 완도의 부속섬이라고 할 수 있다. 섬 안에 섬을 청해진의 중심으로 삼아 그 곳에서 장보고는 세상을 읽었다. 그리고 삼국을 오가는 사람과 선박을 통제했다. 장보고는 청해진을 모든 세상과 통하는 곳으로 만들려는 야망이 있었다. 신라와는 별개의 독립국을 가지려한 흔적이 보인다. 무역으로 세상과 만나려는 도시국가인 셈이었다. 정복국가시대에 무역으로 세상과 만나고 나라와 나라를 연결하는 꿈의 국가를 만들려했다. 속일본후기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을 먼저 본다.

840년 12월 초하루 기사 … 대재부에서 말하기를 “번국 신라의 신하 장보고가 사신을 보내어 토산물을 바쳤는데, 곧 진의 서쪽에서 쫓아버렸습니다. 신하된 자로써 바깥나라와 교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신라의 신하 장보고가 사신을 보냈다는 내용이 무얼 의미하고 있는가를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신라의 신하 자격으로서가 아니라 장보고 자신의 이름으로 사람을 보내고 공물을 보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신하된 자로써 바깥나라와 교류할 수 없기 때문에 쫓아버렸다고 했다. 청해진이 설진되는 과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청해진은 신라조정과는 별개의 특별조직이었다. 형식적으로는 신라의 신하였지만 독립적인 운영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장보고는 적극적인 활동을 했음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찾아가는 외교와 무역을 했다. 비슷한 기록이 하나 더 있다.

841년 2월 무진 태정관이 대배부에 명을 내려 “신라인 장보고가 작년 12월에 말안장 등을 바쳤는데, 장보고는 다른 나라의 신하로 감히 문득 공물을 바치니 옛 규범을 상고해 보면 정당한 물건이 아니다.”

- 연재 소설입니다.  다음 편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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