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왕 장보고


모두를 승자로 만드는 고도의 구상이 청해진이었다.

장보고가 등장하기 직전인 9세기 초에는 황해해상무역은 공무역이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공무역에 의존해 필요한 물품을 공급받았다. 신라도 마찬가지로 공무역으로 필요한 물품들을 제공받았다. 공무역은 무역 외에 외교적인 관계를 튼실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백성들은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사무역을 통제한 결과였다. 당연히 밀무역에 의존했다.

중국은 지방 세력의 강화되자 중앙조정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축소되었다. 조공무역체제는 무너져갔다. 신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신라조정에서는 왕권을 가지고 치열하게 경쟁했고, 지방 세력은 더욱 힘을 강화시켜 나갔다. 중앙정부의 통제가 약해지자 해상을 통한 밀무역이 급속하게 늘어났다. 밀무역의 성행과 더불어 해적의 활동이 늘어났다. 해적활동은 지방 세력의 비정상적인 권력행사와 도덕해이와 연관이 있었다. 지방 세력들의 재정조달방법의 하나로 사무역을 용인해 거래량과 거래품목도 늘어났다. 이러한 불법적인 교역품 중 하나가 신라의 양민을 잡아다가 당나라에 파는 노예무역이었다. 농사짓고 고기를 잡아먹고 사는 양민을 잡아다가 파는 일이 수시로 벌어졌다. 패륜이 대낮에 내놓고 벌어지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해적의 출현과 더불어 공무역과 사무역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지역적인 산물은 생산지에선 넘쳐났으나 다른 지역에선 구할 수가 없었다. 한쪽에선 썩어가도 팔 곳이 없었다. 공무역은 무너지고 사무역은 금지되었을 뿐 아니라 해적으로 인한 물자이동이 막혀버렸다.

장보고는 이러한 상황을 정확하게 읽었다. 해적소탕이라는 신라와 당이 짊어져야 할 짐을 장보고가 짊어졌다. 신라와 당 사이에 묵인되어진 양해사항이었다. 그 전제 조건이 무역활동의 양성화였을 것이라 예견된다. 장보고가 이미 당나라에서 성공한 무역상이었고 그것을 기반으로 해 해상을 어지럽히고 있는 해적을 소탕하는 것이었다. 군사를 보유할 수 있는 권한을 일부 이양함으로써 얻어지는 효과가 양국 간의 외교적인 현안이었던 해적소탕을 해결할 수 있었기에 그를 빌미로 청해진의 설진은 가능했으리라 보인다. 시대를 읽고, 상황을 파악한 후에 장보고는 해결방안을 양국에 내놓았고 담판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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