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왕 장보고


장보고의 청해진은 견제를 받았다. 그만큼 장보고의 존재는 신라조정에서는 두려운 존재이기도 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장보고의 청해진은 신라왕의 신하로서가 아니라 일정 부분 독립된 군사조직이었고, 무역을 위한 해상기지였다. 또한 국제적인 안보를 담담하고 있었다. 흥덕왕은 청해진의 설진을 허락하면서 바로 다음해인 829년에 당성진을 만든다. 지금의 남양만에 위치한 당성진은 신라 조정의 품계에 위한 담당관이 관리하는 곳이었다. 신라왕의 명령이 직접 전달되고 신라를 안보를 담담하기 위한 군사조직의 한 단위였다. 하지만 청해진은 여러 가지로 달랐다.

이러한 독립적이고도 독자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군사조직을 만드는 것에 허락을 받아내는 일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승자가 되는 조직의 설립이었기에 가능했다.

어느 누구도 손해 보는 사람이 없는 일이었다. 신라로서는 1만 명의 군사를 거느릴 수 있는 권한을 내어주고 장소를 제공해주면 나라의 숙원사업이었던 해적을 소탕할 수 있게 되었다. 당의 입장에서도 해적소탕은 신라와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 노력해야할 사항이었다. 당에 대해서 우호국가인 신라의 양민이 해적에게 잡혀와 자신의 나라로 팔려오는 것을 방치하기엔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장보고가 상황을 파악하고는 자신의 꿈의 해상왕국을 만드는 구상에 들어갔다. 모두를 승자로 만드는 구상이었다. 승자를 만들어주는 주는 대신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결판은 신라왕에게 달렸다. 군사 1만 명을 신라에서 줄 리는 없었다. 형식적으로는 신라의 신하였지만 신라조정의 어느 조직표에는 어디에도 대사라는 직함이 없었다. 대사라는 직함은 신라왕이 가진 직함이었다.

왕이 수행할 업무를 장보고에게 대신할 수 있는 책임과 권한을 넘겨주면서 장소와 군사보유권을 함께 주었다. 고도의 지략이 아니면 만들어내기 어려운 일이었다. 승자만이 있는 상황을 만들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청해진은 국제적인 감각과 시대적인 요청에 맞춰 절묘하게 제안한 내용이었다. 일종의 모험이었다.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는 신라왕의 선택이었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은 것은 장보고였다. 신라왕 앞에 내놓은 내용은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 거부하기에는 너무 확실한 이익이 그것에 있었다.

- 연재 소설입니다.  다음 편을 기대해주세요.-

저작권자 © HKBC환경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