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왕 장보고


장보고는 신라조정에 알려진 인물이었고, 영향력이 있음을 인정받았다. 신라 조정에서는 확실한 신분과 성향을 알지 못하는 장보고에게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1만 명이라는 군사 운영권을 내어주는 일은 모험이었다. 당연히 신분사회인 신라에서는 반대도 있었을 것이다. 대사라는 직함은 앞서 언급했듯이 당나라와 신라의 협력관계를 상징하는 직함이다. 신라왕의 직함과 별 다르지 않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 용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뜻에서 앞서 언급한 내용을 다시 한 번 환기시켜보고자 한다.

 

대사천장원년도일본국, 회시부선각귀당국

大使天長元年到日本國, 廻時付船却歸唐國

장대사는 천장 원년(824년)에 일본국에 도착했다. 돌아갈 때 함께 배를 탔다가 당으로 와버렸다.

 

여기에서 관심을 가질 내용은 각귀당국却歸唐國이라는 부분이었다고 앞서 언급했다. 각却자는 ‘그러나’ 또는 ‘당초의 의도와는 반대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글자다. 문장 후반부를 직역해서 번역하면 ‘돌아가는 배에 올랐으나 당나라로 왔다’가 된다. 장대사의 목적지가 당나라가 아니라 다른 곳이었는데, 당나라로 돌아왔다면 장대사가 갈 곳은 자연스럽게 신라가 될 수밖에 없다. 왜 장보고는 신라로 가지 못하고 당나라로 왔을까. 자신이 계획했던 것과 맞지 않아서 항로를 변경했을 것이다. 추측컨대 장보고가 신라조정에 알려진 인물이고, 영향력이 있음을 인정받았다고 해도 확실한 신분과 성향을 알지 못하는 장보고에게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1만 명이라는 군사를 내어주는 일은 모험이다. 장보고의 예를 들며 사병을 드러내놓고 만들 수도 있다. 반대할 명분을 잃어버릴 수가 있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신라왕의 사람이 아닌 제 3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장보고에게 청해진 설진 허가를 내어주는 것은 국가적인 모험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짊어지는 것이었다. 위험을 동반했지만 당장 해결해야할 중대 사안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신라왕은 신라가 해결할 수 없는 사안들을 일시에 해결할 장보고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청해진의 설진은 역사기록에 적혀있는 대로 신라왕 흥덕왕이 장보고에게 군사 1만 명을 내어주어 해적을 소탕하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역사책은 언제고 강자의 편에서 써졌다. 산국사기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어떤 학자는 삼국사기의 존재는 역사에서 존재해야 할 이유보다 존재하지 않았어야 할 이유가 더 많다고 술회한 것에서도 그렇다.

장보고는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청해진 설진 허가를 신라왕에게서 얻어냈다. 장보고에게 가장 큰 희열과 가쁨을 안겨준 날이었을 것이다. 그토록 바라던 신라로의 환국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당에서의 성공은 언제 물거품이 될지 모르는 성공이었다. 아무래도 낯설고 마음을 주기에는 신라 땅이 그리웠다. 조국을 위해 해적을 소탕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진 자신이 조국을 위해 헌신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리고 자신이 구상해온 해상왕국이 현실로 다가오는 첫 단초였다. 청해진은 자신의 모든 젊음과 자신의 인생을 쏟아 부은 결정체였다. 꿈을 현실로 바꿀 수 있는 장보고의 터전이었다.

- 연재 소설입니다.  다음 편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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