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왕 장보고


청해진을 생산기지화

-강진을 도자기 생산기지화


장보고는 황해에 나타나 신라의 양민들을 납치하던 해적을 제거하고, 보다 더 먼 바다를 바라보았다. 활동영역을 넓혀갔다. 행동반경은 커져갔다. 장보고는 동아시아 무역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었다. 변방 신라는 세상의 중심으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었다. 신라라는 나라가 서역의 기록에서도 나타난다. 그리고 당시의 외국인들이 신라의 경주 땅에 들어와 있음을 보여준다.

신라는 중국의 맞은편에 있으며, 산이 많고, 금이 풍부하며, 기후와 환경이 좋아서 무슬림이 많이 정착하고 있다. 인산, 옷감, 안장, 토기, 칼 등이 많이 산출된다.

중국 상인은 물론 아라비아 상인까지 신라의 경주에 들어와 살면서 상품을 거래하였다. 신라는 개방된 나라였다. 외국인들이 신라의 경주에 와서 거주를 할 만큼 국제적인 도시였다. 열린 마음과 열린 개방적인 정치가 신라를 고립으로부터 탈출하게 하였고, 신라에 번영을 안겨 주었다. 중동지방의 아라비아에서 동남아시아지역의 산물을 수입했다. 그리고 그곳까지 동아시아지역의 물건을 거래했다. 공작꼬리, 비취모는 동남아시아 지역에 살고 있는 새의 깃털이다. 비취모는 지금의 파키스탄에 살고 있는 새의 깃털에서 생산되는 물품이다.

장보고의 무역대상은 제한 없이 다양하게 취급했다. 슬슬이 에메랄드이며 지금의 중동지방에서 나는 보석이다. 특히 신라는 새로운 문화에 관심을 가졌다. 통일 전까지 새로운 문화에 목말라했던 신라였다. 당시 문화의 중심지인 당나라는 고구려와 백제로 막혀있었고, 바닷길은 멀고 험했다. 백제를 거쳐야 도달할 수 있는 곳이었다. 통일이 되면서 문화와 과학적인 지식을 구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은 계속 되었다. 사절단의 일행인 사절단원과 유학생이 서적을 구입한 비용을 국고에서 지급했다. 그만큼 신라는 외국에 대해 개방적이었고, 문화 수입에 적극적이었다. 고립으로부터 탈출과 번영을 위한 신라조정의 노력은 컸다. 고구려와 백제가 주변국으로 있을 때의 고립을 뼈저리게 체감한 신라였다. 신라는 새로운 문화와 과학적이나 진보를 꿈꾸고 있었다. 거기다가 지방호족들이 힘을 불리며 일어서고, 신라조정의 힘이 반대로 와해되어가는 과정에서 왕권의 강화를 위한 방법으로 해상에서 출발한 지방 세력의 성장에 진압이 필요했다. 해적의 소탕과 함께 해상을 장악하려는 욕망 또한 컸다.

장보고는 이러한 시대적 요청을 파고들었다. 장보고는 국제적인 감각이 있었다. 시대를 읽는 감각 또한 있었다. 보다 멀리, 보다 넓은 세상을 지향한 장보고의 상거래는 거친 파도를 넘었다. 먼 바다를 항해하게 하였다. 바다는 열렸고, 상품은 자유롭게 오고 갔다.

장보고는 애초부터 크게 구상하고 실천적인 역량을 키워갔다. 조국을 위해 신라의 왕권으로도 해결하지 못한, 당의 황제가 칙령을 내려 노예 거래 금지를 명령했음에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해적 소탕을 일거에 해결한 장보고였다. 해적이 사라진 바다에 상품들이 오고 갔다. 그 범위는 신라사회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신라의 남단 청해진에서 출발한 배들은 신라의 해역과 당나라를 오고 갔다. 국제무역의 활로를 열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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