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회 해상왕 장보고

신명 작가l승인2019.03.06l수정2019.03.0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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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


내가 옛날 대재부강사 겸 축전국 강사로 있던 때, 신라인이 빈번하게 왕래해 왔다. 나중에 진언도장을 건립하기 위하여 그들로부터 많은 그릇과 접시를 샀다.

일본의 혜운이 대재부 강사로 임명된 것은 833년이었다. 혜운은 10 년 가까이 대재부에 있었다. 위의 내용은 331년에 신라상인이 들어와 교역을 했다는 내용을 적은 것이다. 거래 품목에 많은 그릇과 접시를 샀다고 적고 있다.

다량으로 수요를 충당하기에는 중국 당나라에서 청해진까지 운반해 오는 것은 여러 가지로 어려웠다. 무거운 도자기를 배에 싣고 항해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당과 신라는 멀었다. 다에서 신라로의 상품 수송은 모함에 가까웠다. 당에서 운반해 온 도자기를 일본까지 나르는 일도 대단한 노력과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장보고는 배가 자유롭게 들어가고 태토도 적당한 강진에 도자기 생산기지를 마련했다. 강진은 청해진의 완도와 바로 인접하고 있었다. 오고 가는 길목이었다. 여러 가지로 도자기 생산기지로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최근에 밝혀진 내용이다. 한반도에 도자기 기술이 장보고에 의하여 들여왔을 가능성을 제고한 논문이 연달아 나오고 있고, 일부는 상당히 신빙성 있는 내용이 보고되었다. 장보고는 청해진을 보다 확고한 생산기지로 만들려고 시도했다. 월주요청자越州窯靑磁의 수출항이던 명주 근처의 도공을 그의 근거지 청해진 근처인 강진에 초빙했다. 당대의 세계최고의 기술이며 수출품이었던 도자기를 직접 생산하기 위한 구상이었다. 이는 신라사회 전체를 부와 질적 향상을 이룰 수 있는 기회였다. 사람만을 초빙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도자기를 만드는 재료인 흙과 첨단기술이었던 가마를 만들어야 했다. 이를 성공시키면 도자기 수출국이 될 수 있었다. 당시에 도자기는 중국 외에는 어디에서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어디든 가져만 가면 최고의 대우를 받는 도자기였다. 당시에 도자기를 만들려면 불의 온도를 1300 ℃ 이상으로 올려야 하는 첨단기술이었다. 가마를 만들어 불을 아무리 때도 1000 ℃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온도를 높이려면 이중연소를 시켜야 하는 기술을 깨우쳐야 하는데 이 기술은 중국만이 가지고 있었다. 장보고는 도자기 사업을 가난에 허덕이는 백성들을 살릴 수 있는 기반으로 생각했다. 그러려면 중국에서 도자기 장인을 데려와야 한다. 중국의 도자기 사업은 국가적인 사업이었다.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장인의 해외이동을 막았을 것이다. 중국의 도자기 생산지는 신라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곳 중의 하나였다. 추정컨대 도자기 제작 기술을 가진 신라인 도공을 청해진으로 데려왔을 가능성이 높다. 신라는 당시 거듭되는 흉작으로 먹을 것이 없어 떠도는 유민들이 늘어가고 있었다. 삼국사기의 내용을 통해 이러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 연재 소설입니다.  다음 편을 기대해주세요.-

신명 작가  yung2656@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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