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 ‘강진 백운동 원림’ 명승 지정

이치영 기자l승인2019.03.07l수정2019.03.07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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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출산 아래의 명승 제115호 강진 백운동 원림 > 사진=문화재청

호남의 3대 정원인 ‘강진 백운동 원림’은 역사적·경관적·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15호로 지정되었다.

월출산 옥판봉 남쪽 경사지에 위치한 「강진 백운동 원림」은 고려 시대에 백운암이라는 사찰이 있었던 곳이며, 계곡 옆에 ‘백운동(白雲洞)’ 글자가 새겨진 바위가 남아있어 ’백운동‘이라 일컫는다.

강진 백운동 원림의 안뜰에는 시냇물을 끌어 마당을 돌아나가는 ‘유상곡수’의 유구가 남아 있고, 꽃계단에는 선비의 덕목을 담은 소나무, 대나무, 연, 매화, 국화, 난초가 자라는 등 조선 최고의 원림문화를 대표하고 있다.

원림을 조영한 이담로(李聃老, 1627~1701)는 호를 백운동은(白雲洞隱)이라고 지을 정도로 이 정원을 사랑하였다.

그는 손자 이언길에게 유언으로 "후대에 이 평천(平泉)을 파는 자는 내 자손이 아니며, 나무 한 그루와 돌 하나라도 남에게 주는 자는 훌륭한 자제가 아니다."라는 ‘평천장(平泉莊)’의 경계를 남겨 후손들에게 전함으로써 이 원림이 지금까지 보존되게 하였다.

별장으로 사용하던 백운동 원림은 이후 증손자 이의권(1704~1759)이 가족과 함께 살며 주거형 별서로 변모하였고, 이덕휘(1759~1828)와 이시헌(1803~1860) 등 여러 후손들의 손을 거치며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 <가을 깊은 강진 백운동 원림 > 사진=문화재청

「강진 백운동 원림」은 후손들과 명사들이 남긴 문학작품의 무대로도 자주 등장한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은 백운동에 묵으며 그 경치에 반해 제자 초의선사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하고 12곳의 아름다운 경승을 칭송하는 시를 남겼다. 「백운첩」에 담긴 이 그림과 시는 지금의 모습과 비교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다산의 제자이기도 한 이시헌은 선대의 문집, 행록(行錄, 언행을 기록한 글)과 필묵을 「백운세수첩(白雲世手帖)」으로 묶었으며, 조선 후기 문인 김창흡, 김창집, 신명규, 임영 등이 남긴 다양한 백운동 시문들과 함께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또한, 이곳은 조선 시대 선비들이 문화를 교류하며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다산 정약용, 초의선사, 이시헌 등이 차를 만들고(製茶) 전해주며 즐겨온 기록이 있는 등 우리나라 차 문화의 산실이 되어온 가치까지 더하고 있다.

이치영 기자  yung2656@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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