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왕 장보고


815년 8월, 서변의 주군현에 큰 기아가 있었다. 도적이 봉기하였음으로 군을 출동하여 이를 토벌하여 평정하였다.

816년 봄 정월, 흉작으로 백성이 굶주려 절동지방으로 가서 먹을 것을 구하는 자가 170명이나 되었다.

이러한 내용은 신라하대에 와서 많이 등장한다. 중앙조정이 무너지고 지방 세력이 발호함에 따라 통제가 되지 않아 착취가 늘어나고 흉작까지 겹쳐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려야 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절동지방은 중국 당나라를 말한다. 먹을 것을 찾아 중국과 일본으로 가는 유민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장보고는 청해진을 생산 기지화하여 부가 따라올 수 있도록 도자기 생산기지를 신라의 영토로 끌어들였다. 월주요청자의 주요거래항인 명주는 신라인들의 중요한 근거지였다. 유민 또는 노비로 끌려간 재중국 신라인은 1만 여명을 추정한다.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월주요가 있는 절강성으로 유입되었다. 도자기 제작은 하층계급이 맡아서 했다. 신라노비 가운데 도자기 제작에 종사한 도공들이 있었다. 그 뒤 당 정부는 해적들에 의해 신라에서 잡혀온 노비들을 해방시켜주었다. 자유인이 된 신라의 도공들을 장보고가 데려다 청해진과 인접해 있는 강진에 도자기 마마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는 첨단기술 보유국이 되었다. 장보고는 꿈의 생산물이었던 도자기 생산을 신라 내에 자체적으로 이루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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