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중요한 것은 세상의 정보를 모두 내 안에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제자 감이 스승 고진도사에게 물었다.

“스승님. 스승님은 누구에게서 세상의 이치에 대하여 배우셨습니까?”

“처음에는 산과 물, 바람과 나무에게서 배웠다.”

“산이 무얼 알려주지 않고, 물이 무얼 말해주지 않는데 어떻게 배웁니까?”

제자 감이 따지듯이 말했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마음으로 나눌 뿐이다.”

“저는 스승님께 배우러 왔는데요?”

“저도요.”

고진도사의 말에 제자 감과 래가 한통속이 되어 말했다.

“그야, 너희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만 가르쳐줄 것이 없다.”

“그럼 저희에게 아무 것도 알려줄 것이 없단 말씀이십니까?”

제자 감이 불만스럽게 말했다.

“한 가지만은 알려 줄 수 있다.”

“무엇이지요?”

감과 래가 동시에 물었다.

“네 안에서 스승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스승이 제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고요?”

“그렇다. 너희들의 마음 안에 스승이 너희들을 스승으로 모시려고 기다리고 있다.”

감은 멍하니 스승의 얼굴만 바라보고 래는 생각에 잠겼다.

고진대사는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첫 공부는 남에게서 배우지만 진정한 공부는 자신 안에서 찾아야 한다. 진주 목걸이를 만들 때 진주알은 지식이다. 이것을 하나의 줄에 꿰어야 하는데 이 줄이 지혜다. 전체를 읽을 줄 아는 통찰력이 지혜다. 통찰력이나 직관력은 지식을 배우는 것보다 힘들다. 그리고 통찰력과 직관력을 가지면 이 세상에 넘쳐나는 지식과 정보를 하나의 사상과 철학으로 꿰어 세상을 읽을 수 있다.

마음 안에 스승을 들이는 일이 쉽지 않지만 결국은 이루어내야 할 일이다. 세상을 이해하고 파악하지 않고서 생의 의미를 깨닫기 어렵다. 공자의 말씀은 밖으로부터의 정보를 통해 배우는 공부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한 단계 더 들어가면 모자란 자기 자신을 스승으로 모시게 된다. 스승을 먼데서 찾으면 영원히 스승을 만날 수 없다. 구도를 찾아 떠난 사람도 결국은 구도 여행 중 자기 자신을 만나서 깨우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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