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왕 장보고


밝혀진 것만 해도 몇 곳이 된다. 그것도 신라만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까지 사찰을 세웠다. 방대하고 원대한 꿈의 표현이었다. 실은 이보다 더 여러 곳에 건립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장보고는 세계를 경영하고자 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장보고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어졌다. 세월이 많이 흘러갔다. 이미 천년이 넘은 세월 속에 남아있을 것이 거의 없다. 신라에서는 역적으로 몰려 죽었다. 있었던 자료도 불태워지거나 없애버렸을 것을 자연스레 추측할 수 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순간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 이미지가 한 사람을 새로이 창조해서 상품이나 능력을 평가할 때면 이미지가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가 된다. 문화로 이미지를 전파하면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특성이 있다. 그리고 오래 지속된다.

당나라의 산동반도에 법화원을 설립하자 달라진 것은 장보고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었다. 법화원은 당나라를 오가는 사람들이 거쳐야 하는 관문이 되었다. 법화원이 처음 온 견당사에게나 승려들에게 거쳐야 하는 관문이었다. 여행자가 타지에 도착하면 느끼는 것이 막막함이다.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할 때 길을 안내해주고 쉴 수 있는 편의를 제공받으면 고마움을 느낀다. 대부분 당시의 사람들에게 타국을 방문하는 일은 일상적인 일이 아니라 일생에 한 번 경험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견당사나 정부관원의 공식적인 업무상 방문도 있었다. 승려나 유학생들도 있었다. 이들은 구도를 위한 방문이나 더 큰 세상과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 위한 선각자들이었다. 신라의 인재들이었다. 이렇게 들어오는 사람들과 당에서 신라나 일본으로 나가는 사람들도 법화원을 이용했다. 그리고 또 한 부류는 상인들이었다. 이곳은 당나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나 나가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였다. 여러 곳에서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법화원을 지나간 사람들에게 장보고는 고마운 존재였다. 편의를 제공받고, 숙식을 제공 받은 사람들에게 장보고는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보다 안내를 받은 느낌과 고마움이 생겼을 것이다. 장보고는 고도의 문화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세상에 알렸다. 삼국 모두에 저항감이 없는 종교적인 구심점을 만들었다. 여행자에게는 두려움이 늘 따라다닌다. 마음의 위안과 쉴 곳을 제공받고, 새로이 갈 길을 안내 받으면서 장보고에 대한 좋은 인식이 생겼다.

장보고는 산동반도의 법화원 같은 것을 청해진을 설진하고 나서 몇 개 더 지었다. 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신라는 물론 일본에까지 사찰을 지었다.

국제적인 감각에 문화를 받아들여 청해진의 이미지를 개선했다. 그리고 미래로 가는 길에 순풍을 받도록 했다.

- 연재 소설입니다.  다음 편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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