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아름다운 것은 음악을 들어서다

신이 인간에게 내린 위대한 선물은 사랑이고,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작품은 음악이다. 사랑은 실천할 때가 가장 아름답고, 음악은 가슴으로 들을 때 가장 아름답다. 나는 사실 음치다. 노래방에서 노래를 할 때면 음도 정확하지 않지만 무엇보다 박자를 맞추지 못한다. 가수 양희은이 라디오 반송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사람은 누구나 음치라고. 더불어 음과 박자를 무시하고 즐겁게 부르면 된다는 말도 곁들였다. 하지만 노래를 부를 때면 박자와 음정을 무시할 수가 없다. 소심함이 문제이기도 하고 맞추려는 마음이 노래의 흥을 망가뜨린다.

고전 번역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사서삼경』 책을 번역하기도 한 안면희 씨가 있다. 우리나라 고전뿐만이 아니라 중국고전의 상당 부분을 번역하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지금껏 만난 사람 중에 음정 박자에 가장 초연한 사람이다. 인생에 대해서도 특별하다. 비누와 샴푸를 쓰지 않고 산다. 환경을 생각해서이기도 하고 자연의 흐름에 생을 맡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 혼자 잘 사는 것은 쉽지만 같이 잘 살 수 있는 길을 선택해서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 평범해 보이는 외모지만 강단을 마음 안에 담고 사는 분이다. 술 좋아하고 사람 좋지만 노래를 할 때가 단연 돋보인다. 반주와 노래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노래 실력에 모두 감탄한다. 노래를 이렇게 부를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현장에서 보여준다. 잘 불러서가 아니다. 음정 박자를 무시하는 것은 기본이고 아예 반주는 따로 가고 마음대로 노래를 하는데 열정만은 으뜸이다. 나는 처음 노래방에서 안면희 씨의 노래를 듣고는 웃다가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너무나 일방적인 파격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담대하지 않고서 할 수 없는 일방적인 노래였다.

세상의 흐름을 벗어나는 파격이 아름다울 때도 있지만 세상과 순하게 화합하는 것도 아름답다. 음정 박자는 기본이고 자신의 감정까지 담아 노래를 부르면 감동한다. 가사가 전해주는 감동까지 선물 받으면 인생이 흐뭇해진다. 대중가요 가사가 들리기 시작하면 인생의 맛을 알아갈 때라는 말이 있다. 인생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가사가 있다. ‘아름다운 죄, 사랑’이라는 가사와 ‘웃고 있지만 눈물이 난다’ 그리고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되는 세상’ 같은 가사는 절묘한 한 편의 시다.

나는 비가 내리면 종종 집을 나선다. 나는 비를 좋아한다. 특히 한 여름날 폭우와 함께 폭풍이 부는 날이면 집을 나선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빗물이 줄줄 흘러내릴 때 쾌감이 생긴다. 몸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이 스멀스멀 느껴지는 것도 쾌감이고, 거친 바람이 불어 빗방울이 얼굴을 때리면 또한 쾌감이 생긴다. 나는 우산을 언제부턴가 잃어버리지 않는다. 우산 없이 살기 때문이다.

우산 없이 산 지는 오래 되었다. 나뭇가지 위에 지어진 새집을 보면서 사람은 너무나 편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얼기설기 나뭇가지나 풀로 엉성하게 지은 새집. 부리로 하나씩 나뭇가지와 풀을 물어다 짓는 모습을 보면 예사롭지 않다. 하지만 새집에는 바람이 불고 따가운 햇살이 여과 없이 비친다. 비가 내리면 비를 그대로 맞아야 한다. 나무 위에 지은 집에 알을 낳고 알을 품는 새. 그곳에서 알을 까고 나온 새는 더욱 가엽다. 털도 나지 않아 빨간 살이 그대로 드러난 맨살로 그곳에서 어미가 잡아다 주는 벌레를 받아먹고 산다.

나는 너무 호강하며 살고 있었다. 비 오는 날만이라도 비를 맞고 살자고. 우산 없이 살면서 나는 더 큰 것을 배웠다. 비 오는 날 자유로워졌다. 비가 주는 축복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비와 바람을 즐길 줄 알면 삶이 한결 풍요로워진다. 비가 오는 날이면 마을에 있는 산을 올라 나무 밑에 누우면 나뭇잎과 하늘과 바람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만나게 된다. 자연과 친해지면서 나는 자연스러워졌다.

사람 하나 없는 조용한 곳에서 누워있으면 나무와 바람과 햇살이 그리고 새소리가 절묘하게 시시각각 풍경을 만든다.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며 햇살을 가지고 노는 모습이 살아있음을 자극한다. 살아있다는 것이 순간 아름답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햇살이 간지러운 세상을 몸으로 느끼며 몇 시간 있어보라. 세상이 달라 보인다.

거친 바람과 폭우가 쏟아 붇는 날이 있다. 숲에 들어가 맨 바닥에 누워있으면 자연이 주는 상쾌한 자극에 문이 열린다. 마음과 몸이 열리는 것을 알 수 있다. 세포 하나하나가 긴장하며 깨어난다. 폭풍에 나뭇가지가 휘어지다 못해 꺾이고, 비는 낙숫물처럼 쏟아 부으면 세상이 전체로 휘청거리는 것을 보게 된다. 휘몰아치는 소리와 굵은 빗방울이 육체적인 감각을 깨우면 즐기면 된다. 세상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나를 힘들게 하면 견디어 내는 것이 순명이고, 세상이 나를 흔들면 세상과 함께 같이 흔들려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견디는 것도 도전해보는 것도 모두 아름답다.

비가 내리는 날, 들판을 맨발로 걸으면 비가 춤을 춘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바람을 따라 비가 쏠리는 광경은 일품이다. 거대한 자연의 군무를 즐길 수 있다. 하늘이 온몸으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자연이 주는 대로 받아들이고 즐겨라. 부드럽고 때론 격렬하게 다가왔다가 사라진다. 자연이 주는 소리는 살아있다. 비를 맞거나, 숲 속에서 누워 하늘을 보거나, 바람 부는 언덕을 찾아가거나 자연이 주는 음악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동양에서는 세상을 이해하는데 음과 양으로 나누어 이해하려 했다. 다음 단계로 오행으로 나누었다. 색깔도 오색이고, 소리도 ‘궁상각치우’로 오음이다. 신맛, 쓴맛, 짠맛, 매운맛, 단맛으로 맛을 오미五味, 덕을 나눌 때도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의 다섯 가지 덕으로 하였다. 이외에도 부자유친父子有親, 장유유서長幼有序,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붕우유신朋友有信 같이 다섯으로 나누는 음양오행설이라는 개념이 들어섰다.

이와 달리 서양은 7을 선호한다. 무지갯빛도 7색이고, 요일도 7일이다. 음계도 ‘도레미파솔라시’로 7음이다. 서양에서 7은 기독교의 성경과 관계가 있다. 세상을 창조한 것이 7일이라는데 기본을 두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에 6일 동안 일하고 마지막인 7일에는 쉬었다는 성서의 기록 때문이다.

세상을 이해하는 기본적인 분류를 동양에서는 5를, 서양에서는 7을 선호했다. 자연에 대한 경외와 이해방법도 상당부분 달랐다. 하지만 소리, 즉 음악을 듣는 감성은 다르지 않다. 5음과 7음으로 다른 듯하지만 음계를 나누는 단계가 달랐을 뿐 음악에 대한 감동은 다르지 않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 중에 최고의 작품은 음악이다. 사람에게 귀가 있어 세상은 그만큼 천국에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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