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장춘 박사의 서거 60주기 추모제를 20일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서 연다.

농촌진흥청이 추최한 이 자리에 전국의 원예특작 분야의 원로 연구자 등 200여 명이 참석하며, 추모사 낭독, 헌화, 분향, 우장춘 상 수여식 등을 진행한다.

우장춘은 1898년 일본 동경에서 아버지 우범선과 일본인 어머니 사카이 나카의 맏아들로 출생했다. 육종 연구에 몰두하던 우 박사는 1950년 우리 정부의 초청으로 귀국해 1959년까지 한국농업과학연구소장, 중앙원예기술원장, 원예시험장장을 지냈다.

한국농업과학연구소의 초대 소장으로 취임한 우장춘은 먼저 우리나라 농촌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전국 각지의 농업시험장을 시찰했다. 낙후된 농촌의 모습을 보고 품종 개발 의지를 굳건히 했다. 먼저, 우량 채소의 고정 품종을 만들어 종자를 대량 생산해서 일반 농민 손에 쥐어주고자 했다.

무와 배추에 대한 품종 개발을 시도해 마침내 1954년 진도에서 무와 배추의 원종 종자 39석(약 6,840L)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1955년에는 목표 수치에 가까운 보급 종자가 생산됐고, 1956년과 1957년에는 보급 종자의 생산 목표 수치를 넘어서 국내 자급이 가능하게 됐다.

감자 생산에도 관심을 가졌는데 당시 국내에서 수확되는 씨감자가 바이러스병으로 50~80%가 줄어드는 것을 알아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병이 없는 씨감자 원종을 생산해 농가에 보급하기 위한 채종포를 강원도 대관령에 설치했다.

정부는 뛰어난 업적을 이룬 우장춘 박사를 기리기 위해 1959년 8월 10일 숨을 거두기 얼마 전 대한민국 문화포장을 수여해 업적을 기렸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황정환 원장은 “우장춘 박사는 우리나라 농업 발전을 위해 헌신하며 농업 육종의 역사를 새로 세운 분이다. 그가 뿌린 씨앗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앞으로도 원예 연구에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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