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의 후손, 문명순

조용진 기자l승인2020.04.01l수정2020.04.01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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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명순 후보 페이스북 캡쳐

문명순 후보는 제주 출신이다. 산지천과 제주목 관아官衙가 있던 관덕정에서 뛰어놀던 소녀였다. 산지천은 한라산 중턱에서 발원한 물이 흘러가는 시내다. 관덕정은 무열武閱과 사습謝習을 하던 곳으로 제주의  정치문화 중심지이기도 했다. 무열과 사습을 했다는 것은 요즘으로 하면 군사훈련과 활쏘기를 하던 곳이다. 문명순 후보는 공지에서 활달하게 뛰어놀던 소녀였다. 문명순 후보는 목포를 거쳐 서울로 이주하게 되었다.

문명순 후보의 외가는 독립운동을 하던 독립투사의 집안이었고, 친가는 좌우익의 치열한 투쟁 때에 피해를 입은 집안이었다. 어머니는 당시 목포여고를 나올 만큼 부유한 집안이었고, 아버지는 와세대 대학을 중퇴한 지식인 집안이었다. 가세가 기울어 금수저에서 흙수저로 전락한 집안에서 자랐다.

가난해서 사회진츨을 빨리할 수 있는 여상을 선택했다. 서울여상은 당시 성적우수자들이 지원하는 곳이었다. 문명순 후보의 인생가도는 수석으로 점철되었다. 마포여중에서 수석을 했고, 서울여상 수석졸업, 국민은행 입사를 수석으로 했다. 국민은행에 다니면서도 맨 앞에서 일했고, 자발적으로 뛰었다. 잠시도 쉬지 않는 노력파였다.

문명순 후보에게 따라붙은 별명이 '문사임당'이다. 문명순 후보가 인생의 이상형으로 꼽은 분이 신사임당이었고, 자연스럽게 국민은행 재직 시에 직장동료와 선후배들이 붙여준 애칭이 문사임당이었다.

문명순 후보는 금융의 전문가였다. 그리고 노동운동의 선봉에 있었다. 국민은행의 상황이 문명순을 전면에 서게 하는 촉매 역할을 했다. 당시 여성은 결혼하면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것이 정상으로 받아들여지던 때였다. 문명순 후보가 노동관계에 눈을 뜨게 된 계기는 당시 금융계의 관행에 독소요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여성은 결혼 하게 되면 퇴직을 해야 했다. 이른바 '결혼퇴직각서제'가 있어 결혼을 하면 퇴사한다는 각서가 있었다. 국민은행은 예외였지만 문명순 후보는 불공정한 관행과 싸우면서 자연스럽게 노동문제에도 관여하게 되었다. 금융과 노동문제 전문가가 된 출발점이었다.

*은행원 출신인 문명순 후보는 전국금융산업노조 수석부위원장, 문재인 대통령 후보 중앙선대위 금융경제특위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중앙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등을 지냈다.

조용진 기자  gm15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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