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슬픔이 문을 열고 나가면 기쁨이 다른 문으로 찾아 와

36. 슬픔이 문을 열고 나가면 기쁨이 다른 문으로 찾아 와

긍정이와 웃음이는 대학로에서 거리공연을 구경하고 있었다. 노인 둘이 공연하는 신파극 같은 거였다. 초록이 점령한 대학로는 활기가 넘쳤다. 점령군이 인자해 생명 모두가 반기는 봄이었다.
노천무대에서 노인 한 사람이 혼자말 하듯이 이야기 했다.

"꽃도 그늘을 만들지. 꽃그늘이라고 하지. 하늘을 나는 새도 세상에 그늘을 떨구며 날아가고. 솔개그늘이라고 하지. 그늘 없는 세상은 없어. 사람도 얼굴에 그늘이 졌다고 하지. 슬픔이 찾아온 거야."
다른 노인이 또 다시 혼자 이야기 하듯이 말했다. 둘의 공연이지만 독백 같은 대사였다.
"걱정하지마. 온 것은 가게 되어 있어. 슬픔이 문을 열고 나가고 다른 문으로 기쁨이 들어오지. 걱정하지마. 걱정 없는 게 더 걱정이야. 자식도 걱정이고, 농사도 걱정이고, 사랑도 걱정이지. 자식도 농사꺼리도 사랑도 없어 봐. 더 막막하지. 걱정하는 재미로 세상 사는 거야."
다시 첫 노인이 말을 받았다. 하지만 역시 혼잣말처럼 독백이었다.

"그럼, 그렇고 말고. 걱정을 해결하는 재미로 사는 거지. 바람이 불어도 걱정 바람이 없어도 걱정, 물이 많으면 홍수 물이 마르면 가뭄이라고 하지. 원래 세상은 모자라기도 하고 넘치기도 하는 거야."
노인의 독백에 긍정이와 웃음이는 점점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참 특별한 공연이었다. 상관 관계없이 처리되는 독백이었지만 깊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배우와 관객이 하나가 되고 있었다.
이번에는 두 번째 노인이 받아서 다시 말했다. 대상은 허공이었고, 듣는 관객은 하늘의 소리를 듣는 착각을 하게 하는 공연이었다.

"그늘도 고맙지. 그늘 없는 곳은 사막이 되고, 걱정 없는 곳은 무덤 뿐이야. 다 고마운 거야. 쓸데 없는 건 없어. 나는 누구의 눈물일 수 있지만 나는 또한 누구에게는 웃음일 수 있어."

다시 첫 번째 노인이 말을 받았다.
"살아 봐. 좋은 거야. 생긴 대로 사는 게 아름답게 사는거야. 제비꽃은 작은 키로 봄을 이끌고 오고, 목련은 키가 큰 대로 봄을 데리고 오잖아. 오는 대로 가슴 뛰게 사는 게 잘 사는 거야."
어느 새 독백은 다른 노인에게로 옮겨져 갔는데도 눈치채지 못할만큼 자연스러웠다.

"그럼, 그렇고 말고. 힘들게 사는 것도 사는 방법이야. 완성되지 않은 것도 좋은 거고. 사람도 아기가 더 예쁘고, 꽃보다 꽃몽오리가 더 가슴을 뛰게 하잖아. 완성되지 않은 대로 살아 봐. 그렇게 사는 것도 잘 사는 거야."

"그럼, 그렇고 말고. 새싹 돋는 봄이 찬란하듯 살아 있는 자체가 빛나는 게 생명이야."
대학로가 꽉 찬 듯했다. 아름다운 봄날이었다. 두 노인은 한 사람 같았고, 배우와 관객도 둘이 아니고 하나 같았다. 대사가 음악 같았다.

<긍정이와웃음이,신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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