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선군의 묘

비운의 왕손 경선군

세밑이 얼마 남지 않은 섣달 초아흐레 날씨치고는 따뜻한 편이었지만 옷깃 사이로 파고드는 찬 기운이 온몸을 웅크리게 하는데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스산한 바람까지 불어대 나도 모르게 빨개진 콧잔등을 감싸게 만든다.

묘지가 있는 곳이 군부대 안이므로(주소생략) 소속 부대의 건장하고 듬직한 병사의 안내를 받아 야트막한 언덕위에 위치해있는 왕손 경선군의 묘를 찾았다.

경선군은 조선의 제16대(1627)왕인 인조의 친손자로 1636년 병자호란 직전에 태어나 원손으로 책봉되었으나 5세 때 부모가 볼모로 잡혀 가 있던 청나라로 보내졌다.

귀국 후 갑작스레 아버지인 소현세자가 죽고 어머니마저 폐위되어 죽었으며 귀양처 제주에서 동생 석린(慶完君)과 함께 풍토병으로 사망하였다. 묘지에 도착하니 제주에서 죽은 동생의 묘지와 나란히 모셔져 있다.

좁디좁은 산소가 잔디는 찾아보기 어렵고 망주석 하나 없이 빈약한 상석하나 달랑 놓여 있었고 묘 앞 양쪽으로 문인석이 세워져 있는데 특이하게도 관이 없는 것이 이색적이다.

또한 1m도 채 안 돼 보이는 비석이 형태만 갖춘 지대석 위에서 이수부도 없는 가냘픈 모습으로 넘어질 듯 기울어져 서 있다. 일반인의 묘지보다도 더 작은 봉분은 반쯤 허물어져 황토를 쌓아놓은 듯 왕손의 묘지치고는 너무도 초라하여 차마 글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비석의 앞면에 경선군지묘(慶善君之墓)라는 글자와 뒷부분에는 강희 4년 8월 입(康熙四年乙巳 八月 立)이라고만 간단히 새겨져 있다. 생전에도 기구한 삶을 살다간 왕손으로서 죽은 후에도 대접을 받지 못한 것 같아 서글픔이 앞선다.

참배 후 돌아오는 길은 묘지가 있는 장소가 군부대 내라는 특성도 있지만 황량한 분위기가 쾌청하지 못하고 을씨년스런 날씨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 발걸음이 무거웠다.

저작권자 © HKBC환경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