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르 흰뺨검둥오리가 짙은 안개를 가릅니다.

암석원 작은 연못에서 휴식을 취하던 흰뺨검둥오리 두 마리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퓨웅 날아가는 소리가 제법입니다.

그렇지만 짧은 소동 이후 새들이 휘젓고 지나간 자리에는 다시 안개가 자욱하게 채워지고,

가끔 나뭇잎에 고였던 물방울들이 물 위로 떨어지며 타전을 칠뿐 순식간에 고요함이 찾아듭니다.

이런 날 산책을 하다보면 출렁이며 복잡했던 마음이 다시금 가라앉는 것 같아 참 좋습니다.

요즘 암석원에서 야생난원으로 향하다 보면 낙엽을 덮고 있는 새우난초들이 보입니다.

그 중에는 바싹 마른 줄기 위에 아스라이 매달린 새우난초 열매도 섞여 있습니다.

새우난초는 4-5월에 다양한 색깔로 꽃을 피우지요.

새우난초(Calanthe discolor)의 학명 중 속명 Calanthe는 그리스어 calos(아름답다)와 anthos(꽃)의 합성어로 아름다운 꽃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종소명 discolor는 ‘두 가지 색의’라는 뜻으로 꽃과 꽃받침의 색깔이 다른 것에서 유래된 이름입니다.

학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꽃이 아름답기 때문에 애호가들이 많고 따라서 자생지에서 수난을 당하는 일이 많은 안타까운 식물이지요.

새우난초라는 이름은 옆으로 벋어 자라는 뿌리줄기에 마디가 많아서 그 모양이 새우등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것입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새우난초 잎을 이불삼아 덮고 있던 제비꽃이 꽃줄기를 기다랗게 솟구쳐 그 끝에 보라색 꽃을 피워놓았네요.

가끔 이렇게 생뚱맞은 현상들이 눈에 뜨입니다.

새우난초 잎과 닮았지만 노란 점무늬를 가진 약난초도 낙엽 이불을 덮고 있군요.

뿌리에 항생물질이 있어서 약제로 사용한다고 하여 약난초(藥蘭草)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지요.

꽃은 5-6월에 피는데, 꽃이 필 때는 대체적으로 잎이 보이지 않고 꽃이 시들고 난 후 가을이 되어서야 새잎이 돋아 상록인 상태로 월동을 하는 재미있는 식물입니다.

반면 생기 잃은 자란(紫蘭) 잎이 비에 젖어 바닥에 달라붙듯 널브러져 있군요.

봄에 홍자색 꽃을 흐드러지게 피웠던 화려한 자태는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다만 꽃이 피었던 자리에 튼실하게 매달려있는 열매들이 그 화려함을 짐작케 합니다. 문득 뒤돌아보니 쫓아오던 안개들이 모든 사물을 삼켜버린 것 같더군요.

안개 속에 서 있는 존재들이 온전히 혼자가 되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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