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족 부부 통해 알아본 부부의 의미

부부의 연, 혹자는 몇 천 겁의 인연으로 봅니다. 인연이 실이라면 세계를 돌아 만나는 실은 더 길고 큰 실패에 감겨 있겠죠? 

도쿄에 살던 열일곱 살 소녀, 나라 사토코 양은 수학여행으로 한국 땅을 처음 밟았습니다. 인연이란 실은 그때부터 이어져 있었을까요?

평생을 한국에 머물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고 하는데요. 단지 자매학교 친구와 대화하고 싶었던 바람으로 인사말을 익히다 한국어가 재미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요. 흥미는 이어져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했고 한국서 일할 기회가 생겼답니다.

바람에 연 날리듯, 실 따라 다다른 곳은 청주였습니다. 그 무렵 청주에 살던 한 남성, 회사에 새로 들어온 일본산 기계 설명서를 읽어야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운명이었을까요? 일본어 학원서 1년 동안 선생님과 수강생으로 만났다고 합니다. 

사토코 씨 부부의 다정한 여행사진.
사토코 씨 부부의 다정한 여행 사진.

 

첫 시작은 메일이었습니다. 그에게서 일기를 첨삭해달라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그러길 몇 차례였을까요? 일기는 편지로 바뀌었고, 그 안에는 달콤한 고백이 들어있었다고 하네요. 그날 이후, 호칭은 선생님에서 사토코 씨로 달라졌답니다.  

“아무리 한국에 대해 알고 있었다 해도 산다는 건 다르잖아요. 처음에는 시부모님 말씀을 잘 알아듣기가 어려웠어요. 물론 문화가 다르기도 했고요.”

이제는 김밥도시락 정도는 간단하다는 사토코 씨.
이제는 김밥 도시락 정도는 간단하다는 사토코 씨.

 

1년 반을 사귀다 2001년 결혼한 사토코 씨. 평생 함께할 결심은 그의 성실해 보이는 느낌에서 굳혔다는 데요. 이제는 두 아이의 엄마가 돼 한국말이 더 익숙하고 주변에서 진짜 외국인 맞느냐고 할 만큼 적응을 잘 하고 있어요.

3년 전 알게 된 일본인 여성들과 밴드를 만들어 모임을 주도하며 정보교환도 하고 있답니다. 명절 음식은 물론 김치나 잡채 같은 한식도 척척. 두 아이를 키우며 바쁘지만, 교회에서 봉사를 하고 스터디를 하거나 비누를 만들며 알찬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나라 사토코 씨 가족사진.
나라 사토코 씨 가족사진.

 

“이제는 외국이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들어요. 더욱이 좋은 제도가 생겼다니 반갑네요.”

얼마 전 결혼기념일에 받은 귀걸이가 기억에 남는다며 수줍게 웃는 그녀 미소에서 귀걸이 보다 사랑스러운 빛이 반짝거렸습니다. 5월 20일은 세계인의 날, 21일은 부부의 날인데요. 

행정안전부는 지난 3월 20일부터 외국인 배우자(등록을 한 외국인 또는 국내 거소 신고를 한 재외국적동포)도 다른 세대원처럼 주민등록표 등본에 표기하도록 했습니다. 다문화가정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입니다.

기존에는 저 밑에
기존에는 저 밑에 따로 적혀있어 이질감을 주었다.(출처=행정안전부)

 

올해 3월 20일 부터 개선된 주민등록등본 양식.(출처=행정안전부)
올해 3월 20일 부터 개선된 주민등록등본 양식.(출처=행정안전부)

 

지금까지는 주민등록표 등본이 필요할 때마다 한국인 배우자를 동반해 주민센터에 방문해야 했고, 이름도 주민등록표 등본 하단에 별도로 표기됐었습니다. 이제는 물론 외국인 배우자가 본인이 표기된 등본 발급을 온라인(정부24)을 통해 신청할 수도 있습니다.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 중 ‘다양한 가족의 안정적인 삶 지원 및 사회적 차별 해소’를 발표한 바 있는데요. 다문화가족, 취약·위기가족 등 다양한 가족서비스 확대로 가족 삶의 질 및 사회통합 제고를 위해 한 발짝 다가간 셈이죠.

빛바랜 오래 전 사진은 또 다른 뭉클함을 준다. 몽골식 전통의상을 입고 찍은 몽골인 낫산과 한국인 남편.
빛바랜 오래 전 사진은 또 다른 뭉클함을 준다. 몽골식 전통의상을 입고 찍은 몽골인 낫산 씨와 한국인 남편.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고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을 찾은 몽골 여성 낫산 씨 역시 회사에서 만난 한국인 남편과 살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부장님에서 자기로, 결국 애기 아빠가 됐다고 웃는데요. 두 아들을 낳고 서울에 사는 그녀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처음에는 문화차이가 컸어요. 말은 통해도 밥은 해본 적 없어 어려웠죠.” 몽골인 여성들이 열 명 정도 모이는 모임이 있지만, 모두 일을 하느라 좀처럼 만나기 쉽지 않다고 해요. 주민등록 등본제도가 변경된 사실을 알려주자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또한 이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한국에 와서 좋은 사람을 정말 많이 만나 즐거웠어요.”   

다키유카리
한국이 정겨워 좋다는 다키 유카리 씨.

 

30여 년 동안 한국인 남편과 살며 세 아이의 엄마로 이민자 네트워크 등 다문화 관련일로 바쁜 다키 유카리 씨. 13년째 봉사를 하며 살고 있는데요. 유수와 같은 세월 속에서 더욱 부부 사이가 돈독해졌다고 해요. 주민등록표 등본 표기에 대해 말하자 반가운 기색이 돌았습니다. 

“반가운 소식이네요. 많은 분들이 알게 되면 좋겠어요. 저도 주변 친구들에게 말할게요.”   

씨실과 날실이 만나 우리가 됐다.
씨실과 날실이 만나 우리가 됐다.(출처=Pixabay)

 

먼 길을 찾아와 날실과 씨실로 만난 옷감은 부부가 아닐까요? 하나의 실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서로 만나 옷감을 만들면 무궁무진한 재료가 될 테니까요. 

만들다보면 엉키기도, 설키기도 하겠죠. 비록 동색 뿐 아니라, 어울리지 않는 색이 만난다 해도 결과물이 만들어진다는 건 같지 않나요?   

포근한 이불, 화려한 드레스… 쓰임은 다르겠지만 모두 부부가 만드는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어떤 완성작을 만들게 될까 두근거리지 않으세요? 

실 하나로 무엇이 될까. 망설였던 지난 날은 너와 만나 새로워졌다.
조그마한 실 하나로 무엇이 될까. 망설였던 지난 날은 당신과 만나 새로워졌다.(출처=Pixabay)

 

지난 세월은 오롯이 서로를 위해 지구 한 바퀴 4만 킬로를 돌고 돌아 만난 에움길이었습니다.   

룸메이트면, 소울메이트면 어떻습니까? 한 울타리에 함께 서있는 부부라는 지지대가 삶에서 더없는 행복입니다. 물론 이 행복 안에서 그렇지 못한 계층까지 감쌀 수 있어야 더 성숙하겠죠?  

5월 가정의 달, 행복을 주는 사람에게 한마디 건네 보면 어떨까요? 

“사랑해, 당신으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김윤경 otter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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