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의 (지적)양가성 - 그리다 다시 보기
‘이응’과 단추는 등가(等價)다
김일지의 이응회화를 중심으로

글쓴이: 김은지 교수(홍익대학교, 철학박사/미술사)


김일지, 이응에서 단추로(세부), 2015-8, 캔버스에 복합매체, 각각 10 x 10 cm

흔적: 회화의 기술적 본질
‘그린다’는 것은 흔적에 관한 것이다. 형이하학적 의미의 물질/재료가 남긴 흔적 즉 색과 붓질의 흔적이다. 일반적으로 흔적은 흔히 색들이 켜켜이 쌓여진 결과로 인식된다. 회화에 대한 오랜 기법적 통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흔적은 색 질료를 겹겹이 올리는 것만이 아니라, 색을 긁어내거나 떼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린다는 것은 칠하는 행위를 통해서 또 칠해진 색을 제거하는 과정에서도 이루어진다. 따라서 그린다의 흔적이란 양가성(ambivalence)의 결과인 동시에 회화의 기법 적 본질이다.
김일지의 신 작품들은 이러한 ‘그리다의 (기술적)본질’을 신작 <이응 회화>-시리즈로 극대화 해낸다. 한글의 자음 “ㅇ(이응)”은 모음 앞에서 묵음이지만, 자음 뒤 받침 일 경우는 “잉(-ing)”으로 발음된다 (예: 항아리). 즉 ‘ㅇ’은 어떤 위치에서는 (기표로만) 존재 하지만 자음 뒤 받침일 경우는 기표와 기의라는 언어적 기능을 다 해내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에 이은 크레이크 오웬스(Craig Owens)는 포스트모던 사회에 만연하는 ‘절대적 가치’나 ‘불멸의 진리’의 부재에 대해 피력했다. 김일지의 ‘이응-회화’는  ‘ㅇ’의 양면성을 회화의 기법적 본질인 흔적이 지닌 양가성을 기반으로 하여, 짐멜과 바흐친 그리고 허셀로 이어지는 이론인 - 이 (현대)세상에는 ‘단일적’ 인 것 또한 ‘절대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레고리화 해 낸다. 이 ‘이응’은 ‘단추와 단추 구멍’으로 변환되어 그리다의 본질을 새롭게 깨치게 한다. 김일지의 신작들이 흥미롭고 감동을 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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