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오는 8월 8일은 ‘섬의 날’이다. 삶의 터전이자 소중한 자원인 ‘섬의 가치’를 국민들이 공감하고 미래세대에게 오롯이 물려주기 위함이다.

이에 맞춰 정부에서는 ‘섬의 가치 재발견’을 섬발전의 비전으로 내놓았다. 섬의 특성과 고유자원을 활용해 섬 생태계를 구축하고, 주민이 살고 싶고 국민이 가고 싶은 섬을 만들겠다는 의지다.

헌법 제3조를 보면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 영수, 영해, 영공이 정해진다.

행안부 자료에 따르면 ‘그 부속도서’로 유인도 470개 무인도 2969개가 있다. 이 중 유인도 371개는 행안부(성장촉진지역 유인도 185개는 국토부 지원)가, 무인도는 해수부가 관리한다. 거제도나 강화도 등 연륙돼 10년이 지난 섬이나 죽도, 불모도 등 인구 10인 이하는 대상에 속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작은 섬도 무려 47개에 이른다.

새로운 섬정책, 반성과 성찰에서

헌법에서처럼 섬은 ‘영토가치’에서 도드라진다. 조선시대에도 일차적으로 외적을 막기 위한 방어수단으로 섬에 관심을 가졌다. 오늘날 섬은 국가경계, 배타적 경제수역, 어로구역, 해양자원 구역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백두대간, 접경구역과 함께 우리나라 핵심 생태축으로 ‘도서연안생태축’을 꼽는다.

해양수산부가 정한 해양보호구역 12개중 11개가 섬과 주변 해역이다. 섬 주민들이 오랫동안 바다와 갯벌에 의지해 살아온 삶, 섬살이는 곧 문화요 오래된 미래다. 화산섬 제주·해녀·밭담·죽방렴·널배·별신굿·풍어제·독살·갯밭 등 섬과 어촌의 갯살림과 섬살이는 소중한 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이러한 섬이 정책대상이 된 것은 1986년 ‘도서개발촉진법’이 제정되면서부터다. 이 법에 근거해 10년 씩 세 차례에 걸쳐 30년 동안 3조 1000억원(국비 2조 2000억원)이 ‘도서종합개발계획’에 투자됐다.

그 성과로 ‘연륙·연도교 건설’, 소규모 어항개발과 관광소득 시설 등 ‘생산기반 시설정비’, 급수시설과 자가발전시설과 도로시설 등 ‘생활기반 확충’을 꼽는다. 그리고 한계로 섬의 특성을 반영한 정책수립 미흡, 주민참여를 위한 체계적 지원 부족, 정부정책 위주의 사업추진, 공공서비스와 생활 인프라 접근성 제한, 여행객 편의 증진 지원 부족, 통합계획 수립 부족을 꼽을 수 있겠다.

행안부는 섬을 관할하는 부처로 도서종합개발계획 외에 ‘명품섬’, ‘찾아가고 싶은 섬’ 등 사업을 추진했다. 해수부는 무인도서를 대상으로 보전 및 이용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문체부는 과거 ‘가고 싶은 섬 시범사업’ 이후 섬정책을 추진하지 않고 있지만 도서연안을 포괄하는 ‘남해안관광클러스터사업’을 추진했다.

국토부는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의해 성장촉진지역 유인도를 지원하고 있다. 환경부는 도서지역의 생물다양성과 중요한 생태계 및 수려한 경관을 보전하기 위해 ‘특정도서’를 지정·관리하고 있다. 이 외에도 많은 부처에서 직간접으로 섬과 섬사람을 대상으로 예산을 집행하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국내 유인도(여수 안도)의 전경.
하늘에서 내려다 본 국내 유인도(여수 안도)의 전경.

 

현재 중앙부처 섬 관련 사업을 보면, 제4차 도서종합개발계획 예산 1256건에 1조 5132억원이 책정돼 있다. 이 사업은 행안부·해수부·국토부 등 관련 부처가 독자적으로 추진한다. 많은 예산이 투입된다고 섬이 발전하고 섬사람의 삶의 질이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섬은 시쳇말로 ‘먼저 보는 놈이 임자다’라고 한다. 중복투자에 실패한 사업들이 모니터링과 관리이 사각지대인 섬에서 새로운 사업으로 포장돼 되살아난다. 생태관광, 일자리, 청년지원 등 중앙권력과 지방권력이 바뀔 때마다 변신한다. 중복투자를 막고 실제로 섬주민의 삶과 섬 자원 보전을 위한 통합계획이 절실한 이유다.

육지 중심의 ‘국토계획’을 넘어야

우리나라에는 국토개발과 보전에 관한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정책방향을 설정하는 국가 최상위 ‘국토계획’이 있다. 1972년부터 10년 단위로 수립되고 있는 국토계획은 최근 20년 장기계획으로 바뀌었다. 긴 안목으로 국토를 보전하고 관리해야 정책효율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계획수립을 위해 기초연구부터 심화연구까지 많은 연구조사가 이뤄진다. 여기에 비해 ‘도서종합계획’은 주먹구구다. 해당시군에서 올라온 자료를 정리하는 수준이다. 중앙부처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보고서일 뿐이다.

최근 일본이나 중국은 해양과 도서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일본은 이도센터를 만들어 일찍부터 도서주민의 삶과 여행객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정책수립의 허브와 포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일본의 이도센터는 섬 주민의 생활안정과 복지 증진 그리고 국민경제 발전을 위해 1966년 유인도를 가지고 있는 시정촌이 참여해서 만든 공익재단이다.

또 영토·해양자원·자연환경·다양한 문화계승·식량 안정공급 등을 목적으로 섬자원 조사연구·정책제언·강연·섬을 지킬 인재양성·홍보·섬 활성화를 위한 지원 및 정보제공을 하고 있다. 섬과 관련된 모든 정책과 정보를 제안하고 제공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에게 없는 반드시 필요한 시스템이다.

뒤늦게 출발한 중국은 해양굴기를 앞세워 ‘해도센터’를 국가기구로 구성하고 연구인력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2013년에는 ‘국가급 섬연구기관’이 발족했다. 섬개발과 보호를 위한 섬정책 수립·섬 계획 수립·자원조사·권익보호·모니터링·생물다양성 보호·생태계복원·대외교류·섬문화연구와 교육 등의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지금 50여명의 연구인력을 수년 내에 200여명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남북, 북미 관계가 개선되면서 중국과 일본의 해양정책에 대응하는 섬과 바다 정책이 수립돼야 한다. 특히 공동어로구역, 해양자원, 섬, 갯벌에 대한 공동대응이 요구된다.

바뀌어야 할 것은 섬이 아니다

남해군 앵강만 입구에 위치한 노도. 10여 가구가 모여 사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이다. 한글소설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쓴 서포 김만중이 유배생활을 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문학테마의 섬’이 만들어지고 있다.

섬 정상에 ‘사씨남정기’ 주인공을 형상화한 10여 개 조형물이 세워졌다. 심지어 중앙에 연못도 만들어졌다. 사업계획을 보니 ‘사씨남정기원’이다. 그 아래 ‘구운몽원’도 계획 중이다. 남해읍에 서포를 중심으로 한 ‘유배문학관’이 있다. 노도에는 서포가 유배생활하며 작품을 썼던 초옥 하나면 족할 듯하다.

여수에 작은 섬 ‘추도’가 있다. 한반도 마지막 공룡들이 살았던 곳으로 공룡화석이 많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곳에도 주말이면 낚싯배와 유람선을 이용해 많은 사람이 들어온다. 이들은 작은 섬에 머물며 음식을 먹고 쓰레기를 버리고 해조류나 농산물을 채취해 가기도 한다. 최근에는 공룡발자국 퇴적암이 훼손되고 반출까지 되고 있다. 이런 일은 섬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 동안 섬에 많은 여행객이 오면 섬이 발전될 것이라 생각했다. ‘도서종합개발계획’이 시작된 이후로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는 ‘섬정책’이다. 그 결과는 어떤가. 섬사람은 섬을 떠나고, 섬을 부동산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만 기웃거렸다. 등산이나 낚시를 하는 곳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크게 늘어났다.

주민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섬살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전라남도 ‘가고 싶은 섬 가꾸기’도 목표가 여행객 1200만 명이다. 역시 여행객이 많이 오면 섬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가정이다.

중앙부처나 지자체 섬정책을 보면 모두 섬을 바꾸는 사업들이다. 30여년 동안 추진되었지만 좋은 사례를 찾기 어렵다. 반대로 사업이 끝나면 섬 고유성이 훼손되고 주민갈등만 만들어냈다. 이젠 섬을 바꾸는 것은 그만 두어야 한다. 섬을 바꿀 것이 아니라 섬에 사는, 섬을 찾는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

새로운 섬 정책을 원하면 목표가 바뀌어야 한다. 정책의 수혜자를 누구로 할 것이냐는 매우 중요하다. 여행객도 국민이다. 이들에게도 행복하게 섬여행을 할 권리가 있다. 다만 섬관광의 궁극적인 목표가 섬과 섬주민의 지속성으로 바뀌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여행객이 와야 하는가가 아니라 섬의 생태와 문화가 지속되려면 어떤 여행을 해야 하는가. 어떤 시설과 프로그램이 필요한가. 그것이 섬과 주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가는 살펴야 한다.

정부가 새롭게 시행할 섬 발전 추진대책은 섬의 가치와 중요성을 국민에게 알리고 섬이 삶의 터전인 주민들에게 자긍심을 높이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섬을 알리는 것과 섬의 가치를 알리는 것은 다르다. 주민의 삶의 터전이자 최고의 여행지로 꼽히는 섬의 고유성을 지키고 보전하자는 소리가 높다.

여행객만 아니라 주민들 사이에서도 기존의 섬개발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에 유인도은 400여개에 이른다. 이들 섬을 보전하고 이용하는 최소한의 기준이라도 마련되어야 한다.

무인도서는 논란이 많았고, 여전히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무인도서를 절대보전, 보전, 이용가능, 이용 등 범주로 나누었다. 유인도서를 이렇게 구분할 없지만 최소한 섬발전의 방향과 가치를 공유할 가이드라인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법정계획으로 ‘섬종합계획’ 수립이 절실하며 도서개발촉진법 개정에 포함시켜 제도화해야 한다.

구심도심과 농촌만 아니라 섬도 재생정책이 필요하다. 다만 재생방법이 달라야 한다. ‘복원’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 섬마을만 아니라 마을 앞에 있는 마을어장, 갯벌복원, 필요에 따라 해수유통 등이 논의될 수 있어야 한다.

여행객에 매력적인 시설을 만드는 재생이 아니라 해양생태계 회복을 중시하는 재생과 복원이 진행되어야 한다. 생태계가 복원되면 자연스럽게 섬문화와 어촌문화도 회복될 가능성이 커진다. 섬다움을 회복하는 길이다. 여행객이 찾고 싶은 섬자원이다.

제주도만이 아니라 섬에서 인생2막을 준비하겠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들 ‘귀도귀촌자’를 위한 정책은 없다. 귀농귀촌이나 귀어귀촌자는 지원센터를 만들어 안내하고 있다. 섬에는 독특한 환경과 문화가 있다. 섬의 특성을 제대로 알려주고 섬살이를 준비하거나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섬주민도 이들과 나눔과 공존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도시민들에게 섬의 가치를 재인식 하도록 끊임없는 홍보와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섬의 가치를 알리는 잡지 발간도 좋은 방안이다. 섬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섬정책에 참여하는 ‘섬지킴이’ 활동과 시민모니터링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부처간 정책조율, 정책의 지속성, 주민참여, 바다와 섬 통합정책 추진, 중국과 일본이 섬과 해양정책에 종합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섬발전 컨트롤타워 필요하다. 남북, 북미 관계개선으로 그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섬정책은 다원적이며 중층구조을 띠고 있다. 어느 한 곳에서 좋은 정책을 수립하면 다른 곳은 방관자가 되기 쉬운 구조다. 그래서 섬발전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정부가 이번 대책을 통해 추진하는 ‘섬발전 연구진흥원(가칭)’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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