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왕 장보고

 

장보고는 신라인들을 자국인처럼 연대감을 가지게 했다. 중국 등주에 법화원을 설립하여 정신적인 통합을 도모했다. 법화원은 종교적인 공간이었지만 조국을 떠나 사는 신라인들에게 고향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는 통로였고, 조국을 떠나 외로운 사람들끼리 정을 나눌 수 있는 만남의 장소였다. 조국 신라에서 오는 사람이 들러 쉴 수 있는 장소였고, 신라로 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꼭 들러야 하는 장소였다. 생활권의 중심지역할을 했다. 하루에 200명에서 250명이 기도를 하기 위해 모였다면 상당히 큰 규모다.

기록에 의하면 법화원에는 신라 승려가 40여 명이 있었고, 법화원의 집회에 온 사람은 어제는 250여 명이었고, 오늘은 200여 명이었다고 적고 있다. 상당히 큰 규모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평상시에 찾아오는 사람의 수가 이 정도였다면 법화원이 중심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통합을 위한 기도처로 법화원은 기능하고 있었고, 불교사원으로서의 순수 기능도 수행하고 있었다. 또한 법화원은 큰 장원을 운영해 신라관련 사람들이 오고가며 숙식의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한 마디로 종합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 단순 무역이 아닌 종합무역이었고, 물품의 이동을 단순 물품의 이동을 위한 것이 아니라 관련된 사람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충족시켜 주려 했음을 볼 수 있다. 당나라를 여행하게 되는 사람은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이었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함으로써 더 많은 이득을 얻게 된 것은 장보고였다. 장보고에 대한 좋은 평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게 하는 산실이 되었다. 법화원에 가면 마음의 안식뿐만이 아니라 어려운 점을 해결해 준다는 기대를 가지게 했고, 장보고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했다. 힘은 필요로 하는 만큼 생기게 되어있다. 물리적인 힘으로 통제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필요하게 만들어 찾도록 하는 고도의 방법을 이용했다. 물이 흐르듯 세상이 원하는 것들을 충족시켜 주었다.

 

 

법화원은 장보고의 얼굴이었다.

- 성공은 사람에게서부터 시작된다

 

신라 사람들이 당나라에서 거주하고 있는 집단은 두 부류였다. 하나는 당과 신라는 한반도를 통일한 후 고구려와 백제의 영토의 지배권을 놓고 다투다가 대동강 이남의 지역을 신라가 지배하고 북쪽의 고구려 지방은 당이 차지하는 것으로 결론을 짓고 화해를 했다. 하지만 고구려 지역에 발해가 일어서면서 신라와 당나라는 이를 견제할 군사동맹을 맺고 보다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관계로 당에 머무는 사람들은 지배층이었다. 고급관리, 군인, 유학생, 구법승 같은 상류층에 속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또 하나는 하층부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살길을 찾아온 온 사람들로 해운업과 무역업, 상업, 조선업 등이었다. 이들은 공동주거지역을 형성해서 신라인들의 자치제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주로 상업활동을 하며 집단사회를 구성하고 있었다. 장보고와 정년은 하층집단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신라방이나 신라촌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하층부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장보고를 정점으로 뭉쳤다. 이들은 흡수하는 장보고의 능력은 탁월했다.

- 연재 소설입니다.  다음 편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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