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왕 장보고

 

5. 신라인들은 탁월한 바다의 사나이들이었다

-기능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이 세상을 바꾼다.

 

뛰어난 항해능력과 항법 전문가, 신라인

 

장보고가 하고자 한 일은 역사적인 과업이었다. 이 과업을 성공하도록 한 조언자가 있었다. 신라인들이었다. 이들이 주로 정착하여 활동한 곳은 산동반도였다. 등주, 래주, 밀주가 그곳이었다.

 

등주는 서쪽으로 바다까지 4리인데, 중국에서 신라로 가는 큰길이다. 래주는 해적들이 신라의 양민을 납치하여 등, 래주계 및 여러 바닷실을 통하여 노비로 팔고 있다. 우리는 밀주에서 왔는데, 배에 숯을 싣고 초주로 간다. 신라인인데 수는 10여 명이었다. 신라인 정객의 수레를 고용하여 바다를 다라 밀주로 갔다. 밀주 제성현 대주산 교마포에서 숯을 싣고 초주로 가는 신라인 진중의 배를 만났는데, 배 삯을 비단 5필로 하였다.

 

산동반도 일대인 등주, 래주, 밀주에 대한 신라인들의 활동기록이다. 중국의 기록과 일본승려 엔닌의 기록이다. 이들은 숯을 굽거나, 운송업에 종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신라인의 구체적인 이름까지 적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산동반도는 황해 해상무역의 요충지였다. 신라인들이 활동한 근거지였다.

또 하나의 근거지는 강초지구인데 양주, 해주, 초주, 사천, 연수현 등이었다. 강초지구는 당시 중국의 가장 점화한 교통의 요충지였다. 황하의 양자강을 잇는 대운하가 남북으로 놓여있어 당나라 사회와 경제를 움직이는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국제무역과 연안무역이 모두 발달해 있었다. 동쪽으로 신라와 가까이 있어 신라인이 산동반도와 더불어 출입이 잦은 지역이었다. 강, 운하, 바다를 끼고 촌, 진들에 많은 수의 신라인이 집단으로 모여 살고 있었다. 특히 양주는 당시 광주와 함께 당나라의 2대 무역항이었다. 양주는 해외 각처에서 오는 외교사절들이 당의 수도였던 장안으로 여행하는 첫 번째 관문으로 입출국소속을 하고, 사정단 일행 중 장안으로 가는 사람들과 상품 등을 통제 감시하던 곳이었다.

라이샤워는 양주에 대해 언급하면서 신라인들에 대한 활동에 대해 의미있는 논문을 쓴 바 있다.

중근동中近東의 무역상들은 양주보다 동쪽이나 북쪽으로 가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그 대신 이 지점에서 신라인들은 알려진 세계의 동쪽 끝까지 무역의 발을 내딛었다.

신라를 비롯한 중국 동부와 일본 사이의 무역은 대부분 신라인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중국에 의해 주도된 서양항로의 해상실크로드가 중추적인 해상항로였다면 황해를 중심으로 한 신라인들의 항로는 소비자에게 직접 전달하는 연결항로역할을 했다. 한중일의 삼각지대에서 유독 신라인이 삼국무역을 주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 연재 소설입니다.  다음 편을 기대해주세요.-

저작권자 © HKBC환경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