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왕 장보고


6. 황해해상무역의 출발

- 강물이 바다까지 이어진 것은 꾸준함이다.

영웅을 기다려온 바다에 장보고가 큰 길을 냈다


장보고라는 큰 인물이 탄생하게 된 것은 역사적인 산물이다. 당과 신라와의 역학적인 관계에서 탄생하게 된 인물이다. 변방의 해도에서 태어나 기댈 기반이 없는 장보고가 어떻게 삼국의 중심에 서게 되었는가는 중요한 관심사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러한 과정을 설명해주는 뚜렷한 자료를 찾아볼 수가 없다.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부족하지만 아주 작은 자료를 통해서 추정은 가능하다. 역사는 시대적인 인물을 필요로 하지만 그러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을 때만이 큰일은 이루어진다.

정치적인 면부터 찾아볼 필요가 있다. 역사 속에 한 사람이 우뚝 서기 위해서는 기반 조성이 되어 있어야 한다. 신라와 당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였다. 양국 간에는 정치, 경제, 문화로 이미 밀접한 관계가 유지되고 있었다. 신라와 일본의 관계는 껄끄러운 관계였지만 장보고 선단의 출입은 가능했다. 일본에서도 신라를 기피하면서도 장보고 선단의 도움을 필요로 했고, 장보고는 이를 받아들여 상품의 거래뿐만이 아니라 사람의 이동을 도와주었다. 장보고의 청해진은 독립적이면서도 자생적인 집단으로 성장해가고 있었다.

장보고가 나타나기 전에는 민간무역을 금지되었다. 국가 간의 거래인 조공무역만이 가능했다. 조공무역은 당과 다의 주변국 모두 상생을 위한 정치에서 나온 산물이었다. 주변국은 충성을 맹서하여 왕권의 안정을 이루어 낼 수 있었다. 당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정보와 문물을 접할 수 있어 꾸준한 발전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조공이 헌납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간의 거래였다. 조공을 받친 것보다 더 많은 양을 받아오는 경우가 더 많았다. 서로가 필요해서 거래했다고 보면 된다. 공식적인 거래였기 때문에 형식을 지켜야 했고, 정치적인 목적과 경제적인 목적이 함께 있었다. 당 중기 이후 신라와 당간의 무역거래는 관영무역에서 사영무역으로 옮겨가기 시작한다. 당은 번진들의 할거로 인해 통제가 느슨해지고, 신라는 내분으로 인한 사영무역을 단속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단과 신라의 관계는 여전히 우호적이어서 사영무역은 늘어갔다. 당의 지방 세력들은 도리어 사영무역의 활성화를 막을 이유가 없었다. 경제적인 기반을 무역에서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조정에서 765년에 설치한 압신라북해양번사押新羅北海兩蕃使는 사영무역을 관장하는 기구였다. 여기사 ‘사’使는 신라와 발해의 항해무역을 관장하는 기구다. 민간무역이 이미 활성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변화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기회는 변화하는 시기에 온다. 장보고는 자신이 가진 역량을 십분 발휘하기 위해서 정보망을 구축하고, 자신의 편으로 사람을 끌어들일 방법을 찾았다. 자신의 역량을 키우기 위하여 노력한 것이 보인다. 그리고 대내외에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킬 방법을 찾았다.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하기 4년 전에 일본을 방문한 기록에서도 보이지만 일본에 상당한 정도의 기반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그리고 적산에 법화원을 지었다. 이 두 가지의 일은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진하기 전의 일이었다. 일본을 방문하고 법화원을 세운 것은 장보고가 미래를 내다보고 설계한 것들을 실천하는 과정이었다. 장보고는 청해진을 만들기 전에 이미 상당한 능력을 가진 민간무역업자였다.

장보고는 삼국을 아우를 수 있는 역량을 가졌다. 당에서는 군중소장을 지냈고, 그곳에서 이미 민간무역을 실시하고 있었다. 일본의 경우도 위에 적은 바와 같이 일본을 방문한 기록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장보고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신의 혈육이 있는 조국, 신라를 잊을 수 없었다. 당당하고 조국을 위하여 뛸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 연재 소설입니다.  다음 편을 기대해주세요.-

저작권자 © HKBC환경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