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왕 장보고


이국땅에서 성공한 장보고는 조국을 위하여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조국을 돕고 싶었다. 해적들에게 잡혀 노예로 팔려가는 것을 목격하고는 더욱 그러한 마음이 커졌다. 장보고는 법화원을 자신의 재원으로 지었다. 성공한 사람으로 자연스럽게 각인되었다. 법화원을 통하여 오가는 신라사람과 당에 거주하는 당나라 사람과 신라 사람들. 그리고 일본에서 오가는 사람들이 유숙을 하게 되면서 장보고라는 이름은 보다 우호적인 사람으로 각인되었다. 신라의 관리와 유학승과 유학생 그리고 상인들에게 자신의 존재가 부각되었다. 장보고는 이미 성공한 사람으로 보였다.

신라의 조정에서도 이미 장보고라는 인물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고갔다. 직접적으로 도움을 받은 사람의 경우는 더욱 장보고에 대해 좋은 평을 퍼뜨렸다. 장보고는 신라에 귀국하기 전에 당에서 성공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당과 신라의 정치적인 문제는 노예문제였다. 신라의 양민들을 해적들이 잡아가 당나라에 파는 행위에 대해 여러 번 논의가 있었다. 노예문제는 당나라의 체면의 손상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신라의 조정에서는 자신의 신민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비난을 받아야했다. 당의 조정에서는 821년 평로군절도사 설평이 당의 황제에게 아뢰었다.

해적이 신라 양인을 꼬여 잡아다가 등주, 내주 지경 및 연해제도에 이르러 보비로 삼아 파는 자가 있습니다. … 엎드려 바라건대 특별히 명백한 칙령을 내리시어 지금부터는 연해 제도에서 신라양인을 꼬여 잡아 파는 것을 일체 금단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당히 정치적인 문제로 불거져있었다. 황제는 바로 노예를 사고팔지 못하도록 칙령을 내렸다.

823년에는 신라사신 김주필이 당의 황제 목종에게 상장을 올렸다. 당에 노예로 팔려와 머물고 있는 양인들이 걸림 없이 신라로 귀국할 수 있도록 하여달라는 글을 올렸다.

앞서 은혜로운 칙령으로 양인을 팔지 못하게 하여, 가고자 하는 바에 맡겨도 노약자는 바쁘며, 집이 없어 이웃 바다 마을에 기거하며, 돌아가고자 해도 길이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제도 해변 주현에 매양 배편이 있으니 마음대로 돌아가게 하고, 주현으로 하여금 제약하지 못하게 하여 주소서.

하지만 당의 황제와 신라의 왕이 노력해도 해적들에 의한 노예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821년에 칙령을 내리어 해적이 신라양인을 꼬여 잡아다가 장차 연해제도에 이르러 노비로 파는 것을 아울러 금단한 것은 비록 분명한 칙령이 있을 지라도 아직 중지 되지 않고 있습니다.

황제가 칙령을 내려 해적이 신라양민을 잡아다가 노비로 파는 것을 금지하였으나 중지 않고 있음을 말하면서 다시 칙령을 내려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제 해적에 위한 노예문제는 양국 간에 중요 현안이 되어있었다. 해적이 쳐들어와 자신의 신민들이 잡혀가는 신라조정은 물론 당나라의 조종에서도 도덕적으로나 국가 체면으로 봐 부끄러운 일이었다. 양국 간에 노력을 했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논의해야 했다. 신라조정과 당나라 조정에서 이처럼 고민하고 조치를 했음에도 해적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 연재 소설입니다.  다음 편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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