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왕 장보고

8. 청해진을 성공으로 일으킨 요인

- 고래를 잡으려면 새우를 미끼로 쓸 수 없다.

바다를 몸으로 익힌 신라인, 황해에 적합한 선박을 만들다

청해진을 만든 사람들은 신라인이었다. 바다를 몸으로 익힌 사람들은 바다를 장악했고, 바다를 몸으로 이해한 사람들은 바다를 다루는 일에 단연 앞섰다. 신라는 작았지만 해상강국이었다. 바다를 염원한 국가답게 해상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선부를 설치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중국과 일본보다 한 단계 높은 배를 관리할 수 있는 부서를 만들었다. 그만큼 신라는 해상권에 관심을 기울였다.

장보고는 신라인의 기질과 능력을 알았다. 당과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한반도인들은 모두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토착적인 기반을 가지지 못한 그들은 땅을 일구고, 가을을 기다리기엔 아직 정착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고향에 대한 향수도 남아있었다. 보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일을 해야 했다. 불안정한 미래를 위해서는 직접 현금과 물품이 오가는 곳이 적당했다.

신라인들은 스스로 강해야만 했다. 그들은 힘이 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했다. 상업적인 거래와 배를 만들고 수리하는 일에 손을 댔다. 모두가 힘이 들고 모험적인 일이었다. 몸으로 직접 뛰어야 하는 일들이었다. 상업적인 일은 현장에서 바로 결정하고 실행해야 했다. 많은 정보와 판단이 매번 결정할 때만다 필요했다. 한반도를 떠나 남의 나라에 사는 이들은 이일에 적당했다. 상권을 조금씩 가지게 되었다.

선박제조나 운행 그리고 수리하는 일도 이들의 몫이었다. 장보고가 출현할 즈음 세상은 뒤집어지고 있었다. 안정에서 혼란으로 치닫고 있었다. 당은 안사의 란 이루 번진 세력이 힘을 얻어 일어섰다. 중앙조정의 힘이 그들에게 미치지 않았다. 조정의 발언권은 서지 못했다. 독립적인 지방세력이 서기 시작했다. 신라도 하대에 들어서면서 내부 갈들이 커졌다. 부패와 낭비가 커졌다. 백성들은 굶어죽는 사람이 늘어갔다. 해적이 해안지방에서 신라인을 납치해서 파는 상황에 도래한 것도 이러한 일들이 원인이 되었다. 국가는 더 이상 국토를 방위하고 백성을 보호할 힘이 부족했다. 일본도 별다르지 않았다. 율령국가가 쇠퇴하면서 나당일 삼국이 공무역을 제대로 실시할 수가 없었다. 나당일 삼국이 비슷하게 중앙조정의 힘이 지방까지 미치지 못하지 물자의 공급과 배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물품이 필요했다. 물품이 오가기 위해서는 배와 사람이 필요했다. 바다는 언제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장보고는 이러한 현상을 먼저 알아챘다. 자신의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는 준비했다. 성공은 준비된 자만을 찾아간다. 청해진에 진을 마련하고는 조직을 정비하고, 배를 만들었다. 배는 바다를 아는 신라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신라인들은 바다를 알았다. 신라인들의 배는 황해 해상에 맞는 배를 만들었다. 그리고 일본까지 오가는 배를 만들어야 했다.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였지만 바다가 모두 달랐다. 황해는 간만의 차이가 크고 황하로부터 흘러들어오는 진흙의 퇴적으로 갯벌이 넓고 수심이 낮다. 밀물과 썰물에 의한 바닷물의 높이가 심한 곳은 무려 8m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남해는 수심이 깊고 섬이 많았다. 다도해라는 이름에 걸맞게 미로 같은 길을 항로로 이용해야 항해가 가능하다. 동해는 섬과 갯벌이 없는 탁 트인 바다로 깊다. 하나의 나라에 세 개의 바다는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신라인들은 이 세 곳을 오갈 수 있는 배를 만들어야 했다. 신라는 바다에 관심을 기울여온 나라였다. 고구려와 백제가 무너진 다음 고구려와 백제의 고도를 놓고 당과 한 판 싸움을 벌일 때 해군의 역할은 컸다. 신라의 수군은 당의 수군을 격파했다. 당이 신라에게 고구려와 백제 땅의 일부를 내어주고 물러간 것은 신라 수군의 역할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속일본후기에 이러한 기록이 보인다. 장보고가 활동하던 시기인 839년의 일이었다.

- 연재 소설입니다.  다음 편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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