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왕 장보고


대재부에서 대마도의 관리가 말하기를 ‘먼 바다의 일은 바람과 파도가 위험하고 연중 바치는 조물과 네 번 올리는 공문은 자주 표류하거나 바다에 빠진다’ 고 합니다. 전해 듣건대 신라배는 능히 파도를 헤치고 갈 수 있다고 하니, 바라건대 신라 배 6척 중에서 1척을 나누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이를 허락하였다.

신라배는 거친 바다를 능히 헤치고 갈 수 있다고 하였다. 신라배는 무엇이 달랐을까. 한반도에는 삼면의 바다가 있었지만 삼면의 바다가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이에 적응하는 배가 필요했다. 지리․지형적 조건에 적합하고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배가 필요했다. 신라의 배는 뱃바닥이 편평해야 하고 안정성이 있어야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뗏목과 같은 편평한 선저를 가진 평저선이 지형에 맞게 발달했다. 그래야만 편평하고 넓은 갯벌ㅣ 펼쳐져 잇는 서해안과 일부 남해안에서 만조 때 해안이나 포구로 들어온 간조 때에는 배가 그대로 갯벌 바닥에 내려앉을 수 있다. 다른 나라배의 형식인 V형일 경우에는 물이 빠진 갯벌에서 옆으로 기울어진다.

한국식 배의 특징은 첫째 사각돛을 달아 올려 바람을 받아 나아간다. 순풍을 받게 되면 돛을 좌우로 활짝 펴서 최고의 속력으로 나아간다. 바람이 앞에서 불어오거나 옆에서 불어올 경우갈지자로 나아갈 수 있다. 명나라 화옥이 지은 해방의海防議라는 책에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에 대한 글이 적혀있다. <조선의 구선龜船은 돛대를 세웠다 뉘우기를 마음대로 하고 역풍이 불거나 썰물에도 갈 수 있다>고 하였다. 이는 조선시대에 사용한 돛의 운용법이 이미 고대신라에서 물려받은 돛의 운용방법임을 알 수 있다.

둘째 배의 앞부분인 선두판船頭板이 횡으로는 편편하지만 선두판 상부에서 선저까지는 원형으로 원만하게 이루어져 있어 바닷물 위를 미끄러지듯 파도를 타고 앞으로 나아간다. 이는 V자형의 배에 비해 물의 저항을 많이 받지만 커다란 파도가 칠 때 바닷물 속으로 처박히지 않고 물을 타고 올라가 침몰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신라의 배는 이외에 다른 특징이 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특징은 지형적인 면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배의 밑바닥이 편평하다는 것이다. 신라의 배는 서양배의 V자 형이나 중국의 U, V자형 선형과는 다른 독특한 배의 양식이다. 평저선 형식의 배는 우리나라의 지리지형적 조건에 가장 알맞은 배였다. 지형과 풍토에 맞는 배였다. 몸으로 바다를 익혀온 사람들에 의하여 발전되고 적응해온 배였다.

반면 일본의 배는 선수가 뾰족해 물을 가르고 나아갈 때 저항을 덜 받지만 강풍이나 풍랑이 심할 때 선수가 바다 속으로 들어가 침몰하는 약점이 있었다. 거대한 파도가 밀려올 때 신라의 배는 바닥에 편평해 파도를 타고 오르지만 일본의 배는 선수가 파도 속으로 파고 들어가 거친 파도와 먼 거리를 항해할 때는 적합하지 못했다. 그리고 황해의 바다에서는 평저선은 갯벌에 안착을 했다. 이러한 예를 보여주는 기록이 있다. 엔닌일기에 뱃바닥이 편평한 평저선이 유리한 점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글이 있다.

동서에서 밀려오는 파도는 서로 부딪혀 배를 기울이게 하였다. 키판이 바다 밑에 닿아 선박의 뒤쪽은 곧 부서질 듯하기에 돛대를 자르고 키를 버리니 배는 곧 큰 파도를 따라 표류하였다. 파도가 동쪽에서 밀려오면 배는 서쪽으로 기울고, 서쪽에서 밀려오면 동쪽으로 기울어 파도가 배 위를 휩쓸어가기를 헤아릴 수 하였다. … 스며들어온 흙탕물이 넘쳐흘러 배는 끝내 가라앉아 모래 위에 얹혀졌다.

그리고 신라의 배는 선재가 두껍고 무거우며 서체가 길고 컸다. 전투함의 경우와 먼 바다를 항해할 경우엔 적응력이 컸다. 일본의 배는 선재가 얇고 가벼웠으며 짧고 작았다. 배를 만드는 비용이 적게 들고 배의 운용이 쉬었지만 먼 바다용으로는 적합하지 못했다.

신라의 배는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진하고 신라와 당 그리고 일본을 아우르는 해상왕국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신라인의 몸에 익은 배를 만들었고, 신라의 바다를 닮은 배를 만들어 황해를 장악했다. 해상권은 강하고 바다에서 일어나는 전반적인 일들을 소화할 수 있는 배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바닷물의 흐름과 바람과 토양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배는 어느 배보다도 강했다.

- 연재 소설입니다.  다음 편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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