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병이다

 

 

가을에 거두기 위해

쟁기 들고 밭으로 나가는 농부의 굵은

손마디가 나를 부끄럽게 한다

우리 어머니가 밭에서 김을 매는 시간에

나는 누굴 위로하겠다고

시 한 줄에 매달리나

허리 굽은 골목길을 반만 남은 반달이

창문을 두드리는 시간에

재봉틀을 돌리며 생계를 걱정하는 빈민의 밤에

나는 또 누굴 위로하겠다고

시 한 줄을 쓰고 있나

 

시가 병이다 분명 시가 병이다

이 세상은 시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종종 병이 도진다 어쩌면 나는

남보다 나를 위로하기 위해

시를 쓰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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