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선이 세상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무게의 유연함

곡선이 세상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무게의 유연함

모든 직선은 품어 안지 못한다. 삶에 대하여 어루만져 줄 너그러움이 없다. 곡선은 다르다. 따뜻함과 함께 어울림을 안고 있다. 생명체에서 직선인 것들은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 풀과 나무가 직립하여 직선으로 상승하고 있지만 바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좌우로 흔들릴 수 있는 여유율을 내재시키고 있다. 나무가 좌우로 흔들릴 수 있는 폭만큼이 타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이다. 곧은 것은 그만큼 배려가 없다. 내가 세상의 중심에서 옳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순간 나와 다른 사상과 철학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내가 서기 위하여 타자도 바로 서야할 권리가 있다. 그만큼의 배려와 탄력이 척추가 휜 만큼의 여유이다. 척추가 가진 곡선은 하중을 받기에도 적당하고 탄력을 받아낼 수 있는 유연함이다.

어떠한 철학도 종교도 인류를 구원하지 못했다. 결국은 인간이 인간의 살 길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그리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모두 인간의 사유와 땀으로 이룩해야 하는 것들이다. 인간의 땀과 노고 없이 이루어진 건축물은 어디에도 없다. 인간이 땅에 씨를 뿌리지 않는 순간 인류는 멸망한다. 인간의 길은 인간이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한옥에 대한 책을 저술하면서 취재를 다녔다. 한옥마을을 걷다보면 길과 돌담이 어우러진 모습에 빠져든다. 경사를 따라 오르내리는 담장과 휘어져 굽어서 돌아가는 길이 절묘하게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담장은 돌담과 흙담 그리고 돌과 흙을 섞어 만든 토석담이나 싸리로 만든 생울타리 등 다양하다. 한옥과 만나는 길과 담은 자연스럽다. 가을 햇살에 말리는 고추와 무말랭이도 상쾌한 바람을 만지고 있다. 사람과 자연이 만나고, 또 헤어지는 거리만큼이 척추가 휘어진 각도 만큼인지도 모른다. 직선이 곡선을 받아들여 휘어진 것이 아름다운 것을 깨닫게 된다. 직선이 주는 차가움보다 곡선이 주는 여유에는 온기가 있다.

노인이 길을 걸어갈 때 휜 허리에 비치는 햇살이 따뜻하다. 늙는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온 만큼의 연륜이다. 나무가 나이테를 늘려 세상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고 살아온 만큼 키를 키우듯이 사람도 살아온 세월만큼 세상을 받아들였다는 의미이다. 산만큼 아름다워질 수는 없을지 몰라도 산 만큼은 성숙해졌어야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독립을 인정하기 위한 거리이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거리가 있어야 바람 부는 날 가지가 부딪혀 찢어지거나 부러지지 않는다. 새의 둥지가 떨어지지 않는다. 거리는 내 영역의 표시이기도 하지만 거리는 상대방의 영역을 배려하기 위한 거리이기도 하다.

저작권자 © HKBC환경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