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동 왕자의 계곡

이집트 남부 서안 룩소르에 가면 18왕조에서 20왕조에 이르는 유명한 파라오의 무덤이 있다. 투트모스 1세, 람세스와 투탕카멘의 묘가 있는 곳을 ‘King's Valley’라 부르고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면 ‘왕비의 계곡’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지하묘로 만들어진 무덤 내 대부분의 유물은 수 세기에 걸쳐 도굴의 대상이었으나 세기적 발견인 젊은 왕 투탕카멘의 묘에서 3,500여점 이상 진귀한 유물이 발견되어 전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제국주의 시대의 세기적 관심이 집중된 이집트 왕가의 묘는 나폴레옹시대에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럽인의 식탁과 패션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만큼 놀라움의 상징이었다.
이와 비견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조선왕릉이 2009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동록된 사실은 실로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조선왕조는 518년간 존속하고 27대에 이르지만 왕릉, 추존왕릉, 왕비릉을 합쳐 무려 44릉에 이른다. 정확히 말하자면 연산군과 광해군이 폐위되어 왕릉이 아닌 ‘묘’가 되므로 조선왕릉은 42릉 2묘가 될 것이다. 이만하면 단일항목(왕릉)의 수, 독창성에서나 동아시아의 지리풍수적인 측면에서 세계문화유산 등록이 오히려 늦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주로 왕릉의 분포는 파주, 고양, 구리, 남양주, 화성, 여주 등에 있고 왕자들과 비빈의 묘 역시 왕릉 주변 지역에 있지만 별도로 조성된 예도 많이 있다. 조선왕릉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동록된 만큼 별도로 조성된 왕자군과 후궁의 묘도 잘 관리될 수 있도록 제도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고양시 벽제읍 대자동은 주변에 왕릉이 위치하지 않지만 유독 왕자와 외척의 묘가 20여 기에 이를 정도로 밀집된 것은 어찌 된 일일까? 나는 이런 의문 중 특히 소현세자의 3자인 경안군 집안을 주목하여 이곳에 정착하게 된 경위에 관심을 가지고 논문(「대자사의 창건배경과 위치비정 연구」차문성, 전통문화 7호, 전통문화학교, 2009-09-01))을 쓴 바 있다. 조선 초기 왕실사찰 대자사터를 경안군 묘역에서 발견한 이후 계속적인 자료 수집을 위해 이곳을 오가면서 20여기의 왕족과 외척의 묘가 있는 이 대자동 골짜기를 룩소르에 있는 세계문화유산인 ‘왕의 계곡’에 빗대어 나는 ‘왕자의 계곡’이라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왕자의 계곡’에는 어떤 인물들이 있을까? 여지도서의「경기도 고양군여지승람 총묘(塚墓)」를 살펴보면 최영묘, 성녕대군묘, 근령군묘가 이곳에 언급되고 있지만 그 외에도 많은 왕족들의 무덤이 이곳에 위치한다. 문종의 딸 경혜공주(단종의 누나)의 한 서린 무덤은 별도로 치고 라도 왕자 묘를 중심으로 대자동의 묘역을 크게 나눠보면 태종 때의 성녕대군과 그 형제 및 자손(근령군, 온령군 형제와 자손 원천군 등), 성종대의 이성군 집안(경양군, 영평군 등), 연산군 때 두 차례 화를 입은 우산군과 자식(무풍군, 금천군 등), 인조대의 소현세자의 셋째 아들인 경안군 집안의 묘역으로 사분할 수 있다.

저작권자 © HKBC환경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