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차 갑오 유월”
기신제를 봉행하는 집전관의 축문 읽는 낭낭한 목소리가 고요하고 적막한 아름드리 노송숲속에 울려 퍼진다.
2014년 6월 17일 오늘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갈현리 산25번지에 위치한 장릉에서 365주기 인조대왕, 인렬왕후의 기신제가 종친들과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봉행됐다.
사적 제203호로 지정된 파주장릉은 조선 16대 왕 인조와 인렬왕후 한씨의 합장릉이다.
인조는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 제위중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조호란을 겪고 삼전도에서 당나라 태종에게 항복하고 소현, 봉림 두 세자를 볼모로 보내는 치욕을 당했다. 또한 3번이나 도성을 떠나 피신해야했던 왕으로 어찌 보면 한 많은 세월을 살다간 임금이기도 한다.
인렬왕후는 효종, 소현세자, 인평대군을 낳고 용성대군을 낳은후 산후병으로 승하했다.
인조는 파주부 북쪽 운천리에 인렬왕후를 장사지내며 그 오른쪽에 미리 자신의 수릉을 마련해 두었다가 승하 후 그곳에 묻혔다. 1731년(영조7년)에 뱀등 벌레들이 석물 틈에 집을 짓고 극성을 부려 현재의 자리로 이장하며 합장했다.
장릉의 석물 배치를 보면 봉분 뒤로 담장을 쌓아 아늑함을 주었고 봉분 아래 병풍석을 세웠고 정면에 상석 2개를 놓아 2위(位)임을 나타냈으며 상석 중앙 정면에 장명등을 세우고 양쪽으로 망주석을 세웠다.
또한 봉분 주위에 석마, 석양, 석호를 각2필씩 설치하여 릉을 수호하게 하였다.
처음에는 건원릉의 석물을 본떠 십이지신상과 구름 문양을 부조한 병풍석, 장명등, 석수등을 천장하면서 병풍석 등을 만들었으나 합장으로 인해 크기가 맞지 않아 병풍석과 혼유석, 난간석, 장명등을 새로 제작했다.
이외의 다른 석물들은 모두 그대로 옮겨왔으므로 장릉은 17세기와 18세기의 석물이 공존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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