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의 젊은 여성으로서 노벨평화상을 받게 되어 영광입니다. 제가 노벨평화상 받은 것은 그 동안의 업적 때문이라기보다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더 잘하라는 뜻인 것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노벨평화상은 끝이 아니라 출발점입니다. 노벨평화상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전 세계의 수많은 어린이를 위한 것입니다.”
열일곱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201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파키스탄의 여성인권 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Malala Yousafzai, 1997.07.12~)는 수상소감을 통해 ‘노벨평화상은 끝이 아니라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무장세력 단체인 탈레반의 여학교의 파괴 활동을 비판하고, 여성들과 어린이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주장한 그녀는 노벨상 전 부문을 통틀어 역대 최연소 수상이라는 영예를 안으며 새로운 출발점 앞에 섰다.
◆ 아버지 밑에서 교육의 중요성 깨달아
말랄라 유사프자이(이하 ‘말랄라’)는 파키스탄의 북부 스와트밸리 지역에서 태어났다. 탈레반 무장세력의 주축이 되는 지역이었으며, 그녀는 여성의 사회생활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파슈툰족에 속해 있었다.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축하의 폭죽을 쏘고,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커튼 뒤로 숨기는, 여성의 역할은 아이를 낳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곳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 지아우딘 유사프자이(Ziauddin Yousafzai)는 여성 차별을 반대하는 교육운동을 펼친 인물이었다. 그는 여자아이가 학교에 가서 교육 받는 것이 금지되었던 스와트밸리에 여학교를 비롯한 여러 학교를 세우고 ‘모든 아이들이 교육 받을 권리’를 주장했다. 말랄라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여자도 차별 없이 교육 받을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으며, 교육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게 되었다.
학교교육을 받으며 평범한 생활을 하던 말랄라에게 운명을 바꾸는 큰 변화가 찾아온다. 테러를 자행하던 탈레반세력이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축출당하며 파키스탄 북부로 거점을 옮긴 것이다. 2007년에는 스와트밸리를 본격적으로 점령하면서 자신들만의 이슬람 율법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텔레비전, CD, DVD를 금지하고 불태웠으며, 학교, 발전소, 가스관 등을 폭파했다.
지역 내에 있는 학교 400여 곳이 폭파되어 사라졌고, 날마다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2008년 말에는 모든 여학교를 폐교하라는 지시를 내렸으며 이듬해 1월부터는 여자들은 학교에 가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탈레반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잔혹하게 살해당했고, 길에는 수없이 많은 시체가 나뒹굴었다. 산다는 것 자체가 두려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 하굣길에 탈레반에 피습 당해
2009년 1월, 사람들이 공포에 떨며 침묵하는 것에 익숙해져갈 때 영국 공영방송 BBC의 우르두어 블로그에는 글 하나가 올라왔다. 말랄라가 ‘굴 마카이’이라는 필명으로 쓴 이 글은 탈레반 치하의 비참한 삶과 탈레반의 악행에 대해 고발하고 있었다. “만일 한 남자가, 즉 파즐울라(탈레반의 지도자)가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다면, 한 소녀가 그것을 바꾸는 건 왜 못하겠는가?”
말랄라는 일기형식으로 연재를 계속해 나가며 여자들의 교육 받을 권리를 위해 싸우는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소개했다. 말랄라의 글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국내외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이 물밀 듯이 쏟아졌고, 뉴욕타임스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스와트밸리에서 수업은 끝나다’를 통해 말랄라의 여성인권 활동이 소개되었다.
말랄라는 아버지와 함께 교육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모든 파키스탄 소녀가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미국과 파키스탄의 정치인들을 만나 문제해결에 힘써줄 것을 요청했고, 노숙아동의 교육지원, 탈레반에 의해 파괴된 학교 재건 등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여 일부 성과를 얻기도 했다. 말랄라가 전한 파키스탄의 참상은 유튜브와 SNS를 타고 전 세계에 퍼져나가며 큰 공감대를 형성했다.
2012년 10월 9일,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말랄라는 갑자기 들이닥친 탈레반에게 총격을 당했다. 그녀의 활동을 못마땅해 하며 살해위협을 계속 해왔던 탈레반의 보복이었다. 총알은 말랄라의 머리와 목을 관통하며 치명상을 입혔다. 현지 병원으로 즉시 옮겨진 말랄라는 두개골 일부를 들어내는 수술을 받았고, 집중치료를 위해 영국 버밍엄의 퀸엘리자베스 병원으로 옮겨졌다. 몇 번의 고비를 넘기며 수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많은 사람들의 응원 속에서 기적적으로 건강을 되찾았다.
◆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 영예
말랄라는 건강을 회복했지만, 신변의 위협 때문에 파키스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대신 가족들과 함께 영국 버밍엄에 머물며 에지배스틴 여학교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인권활동도 멈추지 않았다. 2013년 7월에는 나이지리아를 방문해 극단 이슬람 단체인 보코하람에 납치된 나이지리아 여학생 200명의 무사귀환을 호소했고, 미국 뉴욕의 유엔 총회장에서 세계 지도자들을 향해 이 세상 모든 어린이에게 무상교육을 제공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4년 10월 10일, 노벨평화위원회는 “어린이와 젊은이들에 대한 억압에 맞서고 어린이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위해 싸운 카일라쉬 사티아르티와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2014년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한다”고 발표했다. 평소처럼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던 말랄라는 교사로부터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전달 받았다.
수업이 끝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말랄라는 감사 인사와 인권운동에 대한 의지를 표명했다. 그녀의 수상소식을 접한 국제사회의 축하인사도 쏟아졌다. 코피 아난 전 유엔사무총장은 “사회발전을 위해서는 여성의 권리 확대만한 도구가 없다”며 말랄라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선정을 반겼다.
앞으로 말랄라는 ‘말랄라 펀드’를 통해 모든 어린이들이 보다 좋은 환경에서 차별 받지 않고 교육 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교육이라는 대의 아래 하나가 되어 지식의 무기를 무장한다면 이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 빈곤과 불의, 그리고 무지로 고통 받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 교육의 권리를 빼앗긴 아이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가장 강한 무기인 책과 펜을 들고 문맹과 빈곤, 테러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한 명의 아이, 한 명의 선생님, 한 권의 책, 한 자루의 펜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교육만이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2013년 7월 12일 유엔 연설 中)

글/사진 조영인 전문리포터
출처 : 위민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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