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봉문·김진호·윤영원 씨의 소유였던 너와집과 이들 집에 딸린 민속유물들을 가리킨다. '너와집'이란 산간지역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소나무, 전나무 등을 길이 40~70츠, 80~110cm 폭 30cm 두께 3~5cm 정도 크기로 나뭇결을 따라 쪼개어 처마부터 시작하여 기와처럼 지붕을 이은 집을 말한다.화전민이 만들었고 지붕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무거운 돌이나 통나무로 눌러 놓았다집안에서 올려다보면 송송 뚫린 구멍 사이로 하늘이 보이지만 비가 새지 않으며 환기가 잘되고 습도도 유지되는 강원고 산골의 환경에 잘 적응된
제주에서는 한라산에 딸린 기생화산을오름이라고 하는데, 한라산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기생화산을 거느린 화산이다. 사라오름은 한라산 동북사면 성판악 등산로 근처에 있으며, 오름 정상부에 둘레 약 250m의 분화구에 물이 고여 습원을 이루는 산정호수로서 오름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다.분화구 내에는 노루떼들이 모여 살면서 한가롭게 풀을 뜯어 먹거나 호수에 물을 마시면서 뛰어노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오름에서 바라보는 한라산 정상과 다양한 경관이 아름다워 조망지점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명승지이다.
고래 등 같이 크고 아름다운 집, 선교장.선교장은 조선후기의 전형적인 상류주택이면서도 일반 사대부의 집들과는 다른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바로 궁궐에서나 볼 법한 길게 늘어진 23칸의 줄행랑과 그 줄행랑에 나 있는 두 개의 대문.집밖에 조성된 활래정과 연못, 열화당에 덧붙여진 서양식 채양.모두가 일반적인 한국 주택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것들.독특한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갖추고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집...삼백 년 역사의 숨결을 간직한 선교장은 한 채의 전통 살림집에 그치지 않고 우리 가족사의 독특한 가부장적 전통의 역사로
까막딱다구리 몸길이는 약 45cm, 날개길이는 약 25cm. 몸 전체는 검정색이다. 수컷은 머리꼭대기 전체가 붉은색인 반면 암컷은 머리꼭대기 뒷부분만 붉은색이다. 꼬리깃은 쐐기형이며 긴 것이 특징이다.서식지는 산림이 잘 발달한 지역이다. 번식은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 참나무 등 노고목이나 노거수에 하며, 둥지는 자연적 구멍 또는 스스로 구멍을 파서 만든다. 나무를 두드릴 때는 산이 울릴 정도의 둔탁하고 큰 소리를 낸다. 산란기는 4-6월이며, 한배 산란수는 3-6(보통 4-5)개이다. 먹이는 나무줄기나 껍질 속에 있는 곤충류 애벌레
소반(小盤)이란 음식을 담은 그릇을 올려 놓는 작은 상으로, 한국의 식생활에서 부터 제사의례에 이르기까지 여러 용도로 쓰이는 부엌가구이다. 이것을 만드는 기술 또는 그 장인(匠人)을 소반장이라 한다.소반의 종류는 크게 해주반, 나주반, 통영반 등으로 구분되는데 해주반은 화려한 조각이 특징으로 해주는 고려의 수도인 송도의 좌우보가 되었던 지역이므로 중앙 문화의 영향이 오래도록 전해 오던 곳이다. 이러한 지역적 영향 때문인지 해주반은 연당초, 모란, 卍자 등의 화려한 투조 장식이 많이 들어 있어 조선조의 단순 소박한 구성과는 달리 복잡
채상장(彩箱匠)은 채죽상자(彩竹箱子)의 줄임말로 얇게 저민 대나무 껍질을 색색으로 물을 들여 다채로운 기하학적 무늬로 고리 등을 엮는 기능 또는 기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언제부터 채상장이 있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채상은 고대 이래로 궁중과 귀족계층의 여성가구로서 애용되었고, 귀하게 여겨졌던 고급공예품의 하나였다. 조선 후기에는 양반사대부 뿐만 아니라 서민층에서도 혼수품으로 유행하였으며, 주로 옷·장신구·침선구·귀중품을 담는 용기로 사용되었다.
1982년 천연기념물 제322호로 지정됐던 무주군 설천면 일대는 보호구역에서 해제되고, 2002년 설천면 장덕리 수한마을은 애반딧불이, 무주읍 가옥리 가림마을은 운문산반딧불이, 무풍면 금평리 88올림픽숲은 늦반딧불이 보호구역으로 각각 새롭게 지정되었다.반딧불이는 반딧불이과에 속하는 곤충으로 '개똥벌레'라고도 한다. 반딧불이는 배의 끝마디에서 빛을 내는데 이는 교미를 하기 위한 신호이다. 빛을 낼 때까지의 시간이 종(種)마다 다르므로 종을 구분하는 중요한 특징이 된다.무주 일원에는 애반딧불이와 운문산반딧불이, 늦반딧불이
동강은 남한강 수계에 속하며 정선, 평창 일대 깊은 골짜기를 흘러내린 물들이 정선읍내에 이르면 조양강이라 부르고, 동남천 물줄기가 합해지는 정선읍 가수리부터 영월에 이르기까지의 구간을 ‘동강’이라 부른다.산자락을 굽이굽이 헤집고 흘러내리는 동강은 마치 뱀이 기어가는 듯한 사행천(巳行川)을 이루고 있으며, 전 구간에 걸쳐 깎아지른 듯한 절벽지형을 이루고 있다.유역은 4억 5000만 년 전에 융기되어 형성된 석회암층 지역으로, 약 2억 년 전에 단층운동과 습곡운동의 영향으로 현재의 지형이 형성되었고, 현재도 하천운동으로 인한 퇴적작용과
올빼미의 몸길이는 약 35㎝이다. 머리와 등은 회갈색으로 흰점무늬가 많고, 가슴과 배는 잿빛을 띠는 흰색으로 갈색의 점무늬가 많다. 구부러진 부리는 황색이고 발은 살색이다. 나무에서 생활하는 흔하지 않은 텃새로, 낮에는 나뭇가지에서 앉아 움직이지 않고 밤에 활동한다. 들쥐, 작은 조류, 곤충류를 먹고 산다.서식지는 평지의 침엽수와 활엽수, 혼효림 또는 인가 부근이나 농경지의 고목 등이며 단독 생활한다. 야행성이며 낮에는 나뭇가지에 앉아 움직이지 않는다. 둥지는 주로 나무구멍을 이용하고 때로는 매류나 까치의 옛 둥지를 이용하기도 한다
지금 이 시각, TVCF에서 1위는 누구일까? 광고관련 관계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국내 광고를 총망라해놓은 사이트가 바로 TVCF이다. TV에 방영되는 광고들은 이곳에 자동 등재가 되고 광고인 또는 광고에 관심이 많은 국민들의 투표에 의해 순위가 매겨진다.지난 8월 말 정은주 환경부 뉴미디어홍보TF팀 사무관은 “TVCF에서 지금 환경부의 공익광고가 1위를 차지했는데 어떻게 된 것이냐?” 라는 전화를 받았다. 담당자도 모르는 사이에 환경부 공익광고는 10월 1일 현재 크리에이티브 부문 10위권 안에 4편 모두 등재되어있고 우유편은
계방산에서 발원한 평창강은 영월군 서면 옹정리에서 주천강과 합류하여 서강이 되면서 동남쪽으로 흘러 청령포를 지나 영월군 하송리에서 동강과 합류한다.‘영월군을 동서로 가르며 흐른다’하여 동쪽을 동강, 서쪽을 서강으로 부른다.그러나 이는 속칭일 뿐 공식적인 하천명은 ‘평창강’이다. 이 강은 평창강 하류에 해당되는데, 동강과는 달리 유속이 느리고 하천 폭이 넓으며 강변을 끼고 많은 마을들이 위치해 있다.동강과 마찬가지로 맑은 물과 기암괴석이 신비한 모습을 자아내며, 생태계의 보고로서 각종 동식물이 서식한다.
용장사는 매월당 『금오신화』를 쓰며 머물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현재 몇 군데의 석축(石築)이 남아있어 절터였음을 짐작하게 해줄 뿐이다.절을 감싸고 뻗은 동쪽 바위 산맥의 높은 봉우리에 서 있는 이 탑은 자연암석을 아래층 기단으로 삼고, 그 위로 바로 윗층 기단이 올려져 있다. 즉 자연암석이 아래층 기단일 수도 있고 그 아래 바위산 전체가 또한 아래층 기단일 수도 있는 셈이다.탑신(塔身)은 지붕돌과 몸돌을 별도의 석재로 조성하였다. 1층 몸돌은 상당히 높은편이고 2층부터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각 층4
어릴 적부터 아토피가 심했던 딸 아이의 병을 치료하고자 시작된 캠핑.자연환경에서 흙을 밟고 자란 딸 아이는 현재는 아토피 피부가 전부 사라지고 덕분에 성격도 많이 밝아졌습니다.강연을 통해 딸 아이의 아토피 피부를 치료한 안선종씨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건강한 생활용품 사용과 안전한 음식 섭취 등 유해환경물질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방법과 잘못된 상식들을 바로잡아 주는 엄마와 아이 모두를 위한 알찬 강연입니다.
전라남도 순천 조계산 동쪽에 자리한 선암사는 백제시대 창건된 천년고찰이다.그리고 그 아름다운 풍광의 시작에는 무지개다리, 승선교가 있다.신비로운 모양 때문인지 승선교에는 다양한 전설들이 전해 내려오는데 그 이야기의 중심에 다리에 박혀 있는 용머리가 있다.그 용머리를 빼면 다리가 무너진다고 하는데... 과연 사실일까?그리고 용머리를 자세히 보면 철사에 꿰인 동전 한 닢을 물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용은 왜 동전 한 닢을 물고 있는 것일까?무지개다리에 전해 내려오는 신비스러운 이야기를 만나본다.
조선시대의 전주는 전라감영이 있었으므로 천주교회 역사에서 전동은 자연 순교지의 하나가 되었으며, 이 성당은 바로 천주교 신자들을 사형했던 풍남문 밖에 지어진 성당이다. 1891년 프랑스인 신부 보두네가 대지를 매입하고, 1908년 위돌박 신부의 설계로 착공하여 1914년에 준공했다.회색과 붉은색 벽돌을이용해 지은 건물은 두툼한 외부 벽체와 반원아치의 깊숙한 창이 로마네스크양식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성당 내부는 8각 석주 사이가 반원아치로 연결되어 있다.초기 천주교 성당 중에서 매우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힌다.
노동 개혁은 우리 딸과 우리 아들의 일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