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역사유적지구’가 7월 4일(현지시각) 독일 본에서 진행된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에 회의에서 등재가 결정됐다.이번 결정으로 대한민국은 12건의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한 국가가 됐다.백제역사유적지구는 공주 공산성, 공주 송산리 고분군, 부여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부여 능산리 고분군, 부여 정림사지, 부여 나성, 익산 왕궁리 유적, 익산 미륵사지로 구성됐다.백제역사유적지구는 세계유산 등재기준 10가지 중 ‘특정 기간과 문화권 내 건축이나 기술 발전, 도시 계획 등에 있어 인류 가치의 중요한 교류의 증거’, ‘문화적 전통 또는 문명에
드디어 한국의 12번째 세계유산이 결정되었습니다.백제역사유적지구가 어떤 곳인지 동영상으로 만나보세요!
고려 후기의 승려 일연이 ‘나라 안의 명산 가운데서도 가장 좋은 곳으로 불법이 길이 번창할 곳’으로 꼽았다는 오대산.그 산자락에 자리한 월정사는 사찰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 펼쳐진 전나무 숲으로도 유명하다.평균 수령 80년 이상의 전나무 1,700여 그루로 구성, ‘천 년의 숲’으로도 불리는 이 숲길을 따라 올라가면 고려의 화려했던 불교 문화와 조우하게 된다.고려 초기 석탑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평창 월정사 팔각구층 석탑과 사리장엄구가 바로 그것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인 서삼릉, 그곳 한 구석에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진 비석들이 있다. 묘비처럼 늘어선 54기의 비석, 이것은 태실비였다.전국 명산에 묻혀있던 조선시대 왕족의 태실비, 그런데 그 태실비들이 왜 이 왕릉 한쪽에 모여 있는 것일까.그리고 그 비석의 표면에 도려낸 듯 남아있는 상처는 무엇일까. 산 자의 안녕을 빌던 태실비가 죽은 자를 위한 왕릉 한 편에 모여진 사연 그 속에 담긴 아픈 역사의 단면을 들여다본다.
동해 무릉계곡은 동해시 두타산과 청옥산을 배경으로 호암소에서 시작해 용추폭포가 있는 곳까지 약 4km에 달하는 계곡으로, 맑은 계류와 소(沼), 폭포와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는 계곡이다.무릉계곡이라는 이름은 조선 선조 때 삼척부사 김효원이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지며 신선이 노닐었다는 전설이 있을만큼 그 풍광이 빼어나 무릉도원이라 불리기도 한다.계곡의 입구를 들어서면 수백 명이 앉을 수 있을 만큼 넓은 무릉반석을 시작으로 학소대, 옥류동, 쌍폭포, 용추폭포 등 수려한 풍광과 마주하는데 이를 두고 사람들은 ‘동해안 제1의
무령왕릉은 1500년의 세월을 넘어 백제의 실체를 보여주는 유물들을을 간직한 채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무덤의 안 쪽에는 한사람의 무덤이라 볼 수 없을 만큼의 목관 파편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고 지석묘에는 무령왕의 어릴적 이름인 '사마왕'이 62세에 돌아가셨다는 기록이 있다.1500년의 긴 세월을 버텨왔던 목관.대체 어떤 비밀이 숨어있어 그렇게 오랜 세월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소백산의 연봉들이 눈앞의 바다처럼 펼쳐져 있는 화엄종찰 부석사에는 오래된 전설이 있다.화엄종을 영원히 수호하기 위해 스스로 땅 속에 몸을 묻은 거대한 석룡이 무량수전 뜰 아래 살고 있다는 것이다.이 전설은 부석사의 창건설화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당나라로 유학을 떠난 의상을 깊이 흠모했던 중국여인 선묘가 바다에 몸을 던진 후 용이 되었다.그 이후 의상은 선묘의 도움으로 부석사를 창건하였고 중생들에게 화엄사상을 전파해 나갔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휴업 후 수업을 재개한 중학교를 방문했습니다.박 대통령은 학교수업 재개와 메르스 확산방지를 위해 노력해 준 교직원들을 격려하고, 막연한 불안감에 위축되지 말고 정상적인 수업과 교육활동에 임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학교 보건실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은 학교 관계자들을 격려하면서, 학교가 안전한 곳이라고 하는 믿음이 생겨야 수업도 할 수 있고 학부모님들도 안심하고 자녀들을 보낼 수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예방에 신경 써 줄 것을 당부하였습니다.박 대통령은 보건교사에게 학생들이 열이 나면 어떻게 하는지 꼼꼼히 묻고, 조기에
제주 사계리 용머리해안은 오랜 기간 퇴적과 침식에 의해 그 형상이 마치 바다로 들어가고 있는 용의 모습을 하고 있다.180만 년 전, 이곳의 얕은 바다에서 화산이 폭발하면서 분출된 화산쇄설물이 차곡차곡 쌓여 층을 이루었는데, 그 지층을 다시 수만 년 동안 파도와 바람에 의해 침식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용머리해안의 해안선을 따라 산책을 할 수 있는데, 파도에 의해 침식된 갖가지 울퉁불퉁하고 기괴한 모양의 절벽이 굽이치는 파도와 함께 어우러진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형형색색 쌓이고 층층이 깎인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오랜 시간 정성
1971년... 1500년간 잠들어 있던 무덤이 열렸다.기이한 것은 이전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수만장의 벽돌로 이루어진 무덤 내부였다.과연 이 무령왕릉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떤형태를 하고 있는 것인가?이제 그 근원을 좇아 하나하나 짚어간다.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창건한 부석사의 절정은 국보 18호로 지정된 무량수전이다. 고려 헌종 7년인 1016년에 중창된 무량수전은 무심한 눈으로 보면 화려한 기교나 장식이 없는 조촐한 목조건축물이다.그러나 이곳에서는 돌계단 하나, 기둥 하나까지도 저마다의 완결성으로 빛난다. 사무치는 고마움과 아름다움으로 다시 보게 되는 웅숭깊은 공간. 지붕 추녀의 곡선 하나, 무심한 기둥하나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주마는 흔히 제주도 조랑말이라고 하며, 키가 작아서 과실나무 밑을 지날 수 있는 말이라는 뜻의 ‘과하마’ 또는 ‘토마’라고도 한다.제주도에서 말을 기르게 된 것은 고려 원종 때 원나라에서 제주도에 목장을 설치하고, 충렬왕 2년(1276)에 몽고말 160마리를 들여오면서부터라고 한다. 제주도의 제주마는 농경문화에 크게 기여해 2만여 마리에 달했으나, 시대의 변천에 따라 급격히 감소해 혈통 및 종 보존을 위하여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고고학사상 이보다 더 위대한 발견은 없었다.삼국시대의 왕릉 중 무덤 주인이 누구인지 정확히 확인된 유일한 고분!!!하지만 그 위대한 가치에도 불구하고 이 왕릉 발굴은 세계 고고학 발굴사 사상 최고의 졸속발굴로 기록이 되었다.40년 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무더운 여름 날,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탁족(濯足)을 원한다면 이곳을 권한다.화림계곡은 영남지방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안의3동(安義三洞)중 한 곳으로, 조선시대에 지어진 정자들을 많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동호정, 군자정, 거연정 등 많은 정자들이 계곡을 따라 지어져 있는데, 2층 누각 형태의 정자에서 아름다운 계곡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정자(亭子)란 대개 그런 것이다’ 하고 지나쳐버리면 그만이지만, 조성된 자리를 보면 다른 지역의 정자와는 다른 점이 있다.거연정(居然亭)을 포함한 화림동의 정자들은 대부분 넓은 화강암 암반석
올해는 광복 70주년을 맞은 해로, 영상을 통해 광복 70년의 의미와 미래 희망 메시지를 되새겨 보아요.
지난 90년에 발굴된 김해 대성동의 57호분에서 의문의 인골이 발견됐다.주 피장자의 순장자로 보이는 세구의 인골...분석결과 이들은 모두 20~30대 초반의 여성으로 일반적인 여성보다 다리근육이 발달된 특이점을 가지고 있었다.다리근육이 발달한 젊은 여성. 그들은 대체 누구였을까?그 해답은 이들의 머리맡에서 발견된 여섯 점의 투구와 예안리 57호분에서 찾을 수 있었다.이제 그 진실 속으로 들어가본다.
논산의 반야산 중턱에 가면 멀리서도 한 눈에 들어오는 부처가 있다.관촉사 너른 마당에 자리하고 있는 거대한 불상, 석조미륵보살입상이다.불상의 건립에 대한 이야기는 관촉사 사적비에 기록되어있다.968년 반야산에서 나물을 캐고 있던 여인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이의 소리를 듣고 따라가 보니 거대한 바위가 솟아 있었다.이에 광종이 백성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부처를 세우기로 한 것이다.광종의 명을 받은 혜명 스님은 백여명의 장인들과 함께 공사를 하여 37년 만에 불상을 완성하게 된다.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허리 부분을 경계로 두 장의 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