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상왕 장보고대재부에서 대마도의 관리가 말하기를 ‘먼 바다의 일은 바람과 파도가 위험하고 연중 바치는 조물과 네 번 올리는 공문은 자주 표류하거나 바다에 빠진다’ 고 합니다. 전해 듣건대 신라배는 능히 파도를 헤치고 갈 수 있다고 하니, 바라건대 신라 배 6척 중에서 1척을 나누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이를 허락하였다.신라배는 거친 바다를 능히 헤치고 갈 수 있다고 하였다. 신라배는 무엇이 달랐을까. 한반도에는 삼면의 바다가 있었지만 삼면의 바다가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이에 적응하는 배가 필요했다. 지리․지형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1.15 12:48
-
해상왕 장보고8. 청해진을 성공으로 일으킨 요인- 고래를 잡으려면 새우를 미끼로 쓸 수 없다.바다를 몸으로 익힌 신라인, 황해에 적합한 선박을 만들다청해진을 만든 사람들은 신라인이었다. 바다를 몸으로 익힌 사람들은 바다를 장악했고, 바다를 몸으로 이해한 사람들은 바다를 다루는 일에 단연 앞섰다. 신라는 작았지만 해상강국이었다. 바다를 염원한 국가답게 해상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선부를 설치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중국과 일본보다 한 단계 높은 배를 관리할 수 있는 부서를 만들었다. 그만큼 신라는 해상권에 관심을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1.14 11:14
-
해상왕 장보고청해진은 무역에 기반을 둔 자치적 운영조직이었다청해진의 성격을 규정하는데 특별한 점이 있다. 신라의 군사조직이나 행정기구에 편입되어 되어있지 않았다. 독립적이면서도 신라의 허가에 의해 취득하였기에 완전히 독립적인 것도 아니었다. 청해진의 정치적인 결과물이었다. 발해를 해상봉쇄하려는 신라와 당과의 협약이 있었음을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암약이 있었다. 여기에다 직접적인 해적소탕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깊은 뜻은 숨겨놓았다고 보아야 한다. 또 다른 하나는 장보고 개인의 의중이 깊이 개입했다. 상업에 이미 발을 들여놓은 장보고는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1.11 11:55
-
해상왕 장보고7. 청해진의 출항-살아있음은 축제다. 그 축제에 참가한 이상 생을 즐겨라.청해진은 오지에 마련한 해로의 중심지였다새로운 역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신라의 청해진에서 시작된 역사는 급물살을 타며 전진하고 있었다. 청해진의 출항은 동북아시아를 새로이 열어가는 활로가 되기 시작했다. 큰 꿈이 큰 역사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중명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우선 장보고는 천해의 요새에 말뚝을 박았다. 보기에는 한반도의 남쪽에 진을 설치한 것이지만 그곳은 절묘한 곳이었다. 청해진을 배를 타고 찾으려면 리아스식 해안이 주는 해안의 들고남이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1.10 12:20
-
해상왕 장보고삼국통일과정에서 한강유역을 신라가 차지함으로써 고구려와 백제를 차단시켜 연합을 막을 수 있었고, 당과의 협공이 가능하게 한 요소가 되었다. 당과 신라가 연합하면 백제는 완전고립이 되게 되어 있었다.또한 삼국을 통일하고 신라는 함께 연합했던 당과 한 판 승부를 다시 시작해야 했다. 고구려와 백제의 땅을 당이 모두 차지하는 것은 물론 신라마저 정복하려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었다. 국제사회는 적과 동지가 오늘의 일일뿐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내일은 내일의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도 신라의 선부의 역할은 컸다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1.09 15:16
-
해상왕 장보고황해를 품으려는 신라의 끝없는 욕망-길을 여는 나라만이 나라를 일으킬 수 있다.신라는 바다와 인연을 맺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을 가졌다. 신라의 귀는 서쪽으로 열려있었다. 문명은 서쪽으로부터 들어왔다. 당연히 서쪽의 소식에 목말라했다. 가깝게는 고구려와 백제에서 문화를 전수받았지만 중국으로부터 직접 전수받으려는 욕망이 컸다. 중국으로 가는 길은 닫혀있었다. 고구려와 백제로 길이 막혀있었고, 바다를 동아서 가야 했다. 하지만 바다는 백제를 거쳐야 다다를 수 있었다. 근해가 아니면 항해가 어려운 닻배였다. 당연히 백제의 양해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1.08 14:21
-
해상왕 장보고두 나라 조정은 방안을 찾고 있었을 것이다. 적임자를 찾아야 했다. 신라와 당 모두에게 무해한 사람이어야 했다. 양국 간에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양국의 고민 끝에 찾은 사람이 장보고였다. 신라입장에서는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신라의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었다. 장보고는 이미 당의 군중소장이라는 직함을 가졌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당에서 활동을 하여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신라의 장수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당과의 관계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신라조정과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1.07 16:52
-
해상왕 장보고이국땅에서 성공한 장보고는 조국을 위하여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조국을 돕고 싶었다. 해적들에게 잡혀 노예로 팔려가는 것을 목격하고는 더욱 그러한 마음이 커졌다. 장보고는 법화원을 자신의 재원으로 지었다. 성공한 사람으로 자연스럽게 각인되었다. 법화원을 통하여 오가는 신라사람과 당에 거주하는 당나라 사람과 신라 사람들. 그리고 일본에서 오가는 사람들이 유숙을 하게 되면서 장보고라는 이름은 보다 우호적인 사람으로 각인되었다. 신라의 관리와 유학승과 유학생 그리고 상인들에게 자신의 존재가 부각되었다.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1.04 15:15
-
해상왕 장보고6. 황해해상무역의 출발- 강물이 바다까지 이어진 것은 꾸준함이다.영웅을 기다려온 바다에 장보고가 큰 길을 냈다장보고라는 큰 인물이 탄생하게 된 것은 역사적인 산물이다. 당과 신라와의 역학적인 관계에서 탄생하게 된 인물이다. 변방의 해도에서 태어나 기댈 기반이 없는 장보고가 어떻게 삼국의 중심에 서게 되었는가는 중요한 관심사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러한 과정을 설명해주는 뚜렷한 자료를 찾아볼 수가 없다.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부족하지만 아주 작은 자료를 통해서 추정은 가능하다. 역사는 시대적인 인물을 필요로 하지만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1.03 13:46
-
해상왕 장보고 신라인 역어 김정남의 청으로 구입한 배를 수리하기 위하여 도장都匠, 번장番匠, 선공船工, 단공鍛工 등 36명을 초주로 향하여 떠나게 했다.신라인들은 다를 제패하게 된 이면에는 그들이 황량한 이국의 땅에서 삶을 개척해간 개인의 인생사에서부터 신라인들 간의 유대까지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농사보다는 상업과 운송수송업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그들은 이에 관계되는 일의 영역을 넓혀나갔다. 바다는 생의 무대였다. 바다는 생활의 터전이었다. 누구보다도 당에 정착한 신라인들은 바다와 인연이 있었다. 장보고는 이러한 신라인들과 밀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9.01.02 12:36
-
해상왕 장보고 신라인들을 규합해 최초의 다국적 기업을 일구어낸 장보고-장보고를 만든 사람들은 재당신라인의 하층민이었다.신라인들은 탁월한 상업정신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척박한 곳에서 생계를 유지하게 위해 애초에 땅에 기대어 살았던 신라가 아니었다. 신라처럼 정착은 어려웠다. 스스로 선택한 삶이었든, 해적에 잡혀와 살게 된 땅이었든, 흙을 일구고 일 년을 기다려야 하는 정착된 생활방식보다는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에 손을 댔다. 당나라에서 삶을 일군 사람들은 다양했다. 고구려와 백제의 귀족출신 유민이나 견당사절단을 따라서 들어온 사람들은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8.12.31 17:01
-
당나라의 행정단위가 지방행정제도의 기초단위가 리라면 이것을 자연적으로 형성된 부락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그 위에 단위가 향으로 우리의 경우 면정도가 되는 셈이다. 그 위에 방과 촌이 있는 셈이므로 상당한 규모를 가진 행정단위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든 초주지역에 거주하는 신라인들의 수가 오천 명 정도로 이를 관할하는 총관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일본의 견당사절단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올 때, 초주에 들러서 “바닷길에 익숙한 암해자暗海者 60 여명을 고용하였다”고 적고 있다. 바닷길을 안내하는 사람인 암해자는 지금으로 보면 해기사라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8.12.28 14:00
-
해상왕 장보고법화원을 제외하고도 엔닌의 일기에는 신라인들에 대한 기록이 여러 곳에 보인다. 이 기록을 통해서 보면 장사하는 사람, 문인, 관리, 그리고 해상무역을 하는 사람, 역어 등 재당 신라인의 활동내용이 보인다. 역어는 통역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통역사가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어에 능한 역어가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의 왕래가 잦은 사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신라인들이 많은 곳은 구당신라소뿐만이 아니라 신라관, 신라원, 신라방, 신라소 같은 것들이 있었다.이들 신라인의 주체는 누구인가.백제와 고구려가 망하자 이들은 갈 곳을 잃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8.12.27 16:08
-
해상왕 장보고 5. 신라인들은 탁월한 바다의 사나이들이었다-기능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이 세상을 바꾼다. 뛰어난 항해능력과 항법 전문가, 신라인 장보고가 하고자 한 일은 역사적인 과업이었다. 이 과업을 성공하도록 한 조언자가 있었다. 신라인들이었다. 이들이 주로 정착하여 활동한 곳은 산동반도였다. 등주, 래주, 밀주가 그곳이었다. 등주는 서쪽으로 바다까지 4리인데, 중국에서 신라로 가는 큰길이다. 래주는 해적들이 신라의 양민을 납치하여 등, 래주계 및 여러 바닷실을 통하여 노비로 팔고 있다. 우리는 밀주에서 왔는데, 배에 숯을 싣고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8.12.26 16:13
-
해상왕 장보고 장보고와 관련이 있는 사원은 적산의 법화원을 제외하고도 완도의 법화사, 제주도의 법화사, 절강성 천태산의 국청사 그리고 일본 교토의 적산서원 등이 종교적으로나 정신문화적으로 모두 장보고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다국적 경영을 위해 사찰을 세우고 그를 이용한 대외적인 업무를 수행했다.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하게 된 첫 목적이 해적의 퇴치였지만, 해적은 바다를 장악하게 되면 해적은 별도의 노력이 없이 사라졌다. 장보고는 세상을 크게 보았다. 국제무역이었다. 국제무역을 하게 되면 효과는 상상외로 확대된다. 교역선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8.12.24 12:11
-
해상왕 장보고 세상의 모든 출발은 자신에게서 나오지만, 세상을 연결해주는 것은 사람에 의해서다. 왕은 왕을 만난다. 재상은 재상끼리 만나 세상을 이야기 한다. 노비는 노비의 세계를 공유한다. 장보고는 군중소장직을 그만두고서야 세상과 소통하는 새로운 길을 만났다.신라인들은 종사하는 일도 다양했다. 신라인들은 황해의 해상무역뿐만이 아니라 연안무역을 했다. 운하와 강을 이용해서 내륙으로 들어가는 길도 열어놓고 있었다. 신라인들이 가장 모여 살던 곳은 산동반도 일대이다. 이곳이 당시 황해해상무역의 본거지였다. 당대의 신라, 발해 일본과의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8.12.21 14:50
-
해상왕 장보고 신라인들이 거주하였던 곳은 양주, 해주, 초주, 연수현 등이었다. 이 일대를 묶어서 강초지구라고도 한다. 엔닌일기에 따르면 초주와 연수현에 신라방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경제의 대동맥인 교통의 중심지였다. 기록에는 없지만 전체적인 정황으로 볼 때 남중국인 명주, 항주, 소주 등에도 신라인들이 모여 살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신라초, 신라암, 신라진 같은 신라관련 지명들이 남아있는 것으로도 확인 할 수 있다. 이곳들은 신라인들이 상업과 해운업을 하기에 적당한 곳이었다.신라인들이 상업과 해운업에 종사하게 된 이유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8.12.20 12:00
-
해상왕 장보고 장보고는 신라인들을 자국인처럼 연대감을 가지게 했다. 중국 등주에 법화원을 설립하여 정신적인 통합을 도모했다. 법화원은 종교적인 공간이었지만 조국을 떠나 사는 신라인들에게 고향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는 통로였고, 조국을 떠나 외로운 사람들끼리 정을 나눌 수 있는 만남의 장소였다. 조국 신라에서 오는 사람이 들러 쉴 수 있는 장소였고, 신라로 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꼭 들러야 하는 장소였다. 생활권의 중심지역할을 했다. 하루에 200명에서 250명이 기도를 하기 위해 모였다면 상당히 큰 규모다.기록에 의하면 법화원에는 신라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8.12.19 11:02
-
해상왕 장보고 신라인들은 고향을 떠나있으면서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버리지 못하고 신라의 풍습을 그대로 지니고 살았던 듯하다. 경을 읽거나 예참禮懺을 할 때는 모두 신라풍속을 따르며, 황혼의 2시의 예참만은 당조의 풍속을 따른다. 모두 신라말을 쓴다. 엔닌의 일기에 적혀있는 신라사원에서 풍경을 적은 글이다. 이들은 신라를 떠나서도 신라인이었다. 삶의 뿌리는 당에 내리고 있으면서도 신라인의 풍속과 언어를 그대로 쓰며 살았다. 고향에 대한 의식은 버리지 못하고 끈을 연결하고 싶어 했다.이러한 신라인들을 연결한 사람이 장보고였다. 최초의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8.12.18 13:03
-
해상왕 장보고 산을 넘으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그러나 새로운 세상은 장애물을 건너야 한다. 강이면 건너야 하고, 더 큰 산이면 넘어야 한다. 두려운 자는 건널 수 없다. 넘을 수도 없다. 모험을 두려워하는 자는 성공이란 고지에 도달할 수가 없다. 바다는 두려운 존재였다. 장보고는 바다를 건넜다. 삼국을 하나로 묶어 상권을 형성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거대한 작업을 완성하기 위해서 신라인들을 하나의 연결망에 들어오도록 하는 작업을 실행했다. 신라인들과의 연결은 엄청난 부수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원대한 조직망이
대하소설 장보고
신명 작가
2018.12.17 12:29